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성소수자 여군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해군 간부 2명에 대해 고등군사법원이 2심서 무죄 판결을 내려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계기로 군 내 여군의 처우와 군사법원의 적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해당 사건의 전모를 일요서울이 파헤쳐 본다.
가해자, 피해 여군 성소수자 사실 알게 되자 ‘남자 맛’ 알려 준다며 ‘합리화’
고등군사법원, 해군법원 1심 10년·8년 ‘실형’ 뒤집고 2심서 ‘무죄’ 판결 내려
고등군사법원(이하 군사법원)이 가해자로 알려진 해군 간부 2명에 대해 2심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시민단체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여성민우회, 군관련성소수자인권침해·차별신고및지원을위한네트워크, 군인권센터, 녹색당 등 16개 단체는 지난 26일 서울시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차별·남성주의적인 군 문화 ▲고등군사법원(이하 군사법원)의 불합리한 판결 등을 비판했다.
여군, 전체 5% 불과…
‘동료’ 아닌 ‘성적 대상’ 삼아
이들은 대다수의 구성원이 남성인 군의 특성상 여군은 군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여군포럼 김은경 대표는 “고등군사법원 재판부는 폭행 또는 협박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 무죄를 선언했다”며 “이는 군 내 여군의 위치와 소수자성, 군의 계급, 공동체, 명예로 인해 피해자들이 성폭력 앞에서 취약해지는 지점을 무시한 결과”라고 일갈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여군의 수와 군대 내 여군 대상 성범죄는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면서 “1999년 내가 전역할 당시 여군 숫자는 1000명이었다. 지금은 만 명”이라며 “군사당국은 여군의 수가 늘면 성범죄도 더 늘어날 것을 예측해 강한 예방책을 마련하고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군 대상 성폭력은 늘 군의 뼈아픈 문제로 제기돼 왔다. 이에 관해 김 대표는 “최근 3~4년 새 군이 제도를 많이 마련해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며 “이에 용기를 내 (피해자들도) 더 많이 신고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방향은 긍정적이나 여군의 처우 개선을 위한 여전히 과제는 많이 남았다. 김 대표는 남군들의 인식 변화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는 “전체 군에서 여군이 5% 비중을 차지하는 이상 (여군들은) 늘 고립된다”며 “남군들이 여군을 동료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여성 동료들과 전우애를 나누는 경험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해당 사건 역시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발생했단 해석이다.
이와 더불어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성소수자라는 점을 악용했단 사실도 쟁점이 됐다. 사건이 벌어진 2010년 당시 가해자 중 한 명이자 피해자의 직속상관이었던 A소령은 피해자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를 악용해 ‘남자 맛’을 알게 해준단 빌미로 자신의 범죄 행각을 합리화 했다.
이에 대해 군관련성소수자인권침해·차별신고및지원을위한네트워크 이종걸은 “군대의 성폭력 조장과 은폐는 고질적 문제”라며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성차별과 동성애 혐오가 만연한 군대 내 성폭력을 드러내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성소수자 군인은 성폭력에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들은 성폭력을 알리거나 그 이후 제대로 사건을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또한 많은 성소수자 피해자가 가해자의 아웃팅(outing·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이 없이 밝히는 행위) 협박, (사회의) 왜곡된 통념에서 기인한 2차 피해를 경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범죄자 상대 실형 선고율,
일반 1심 20%이나 군사법원 ‘11%’
이번 군사법원 판결은 가해자들이 해군 법원에서 맡은 1심에서 각각 10년과 8년이라는 실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 2심서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해 더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이로 인해 일반 1심법원에 비해 성범죄자 상대 실형 선고율이 현저히 낮은 군사법원의 실태도 도마에 올랐다. 군인권센터 방혜린 간사에 따르면 군사법원에서 성범죄자를 상대로 실형을 선고한 비율은 11퍼센트(148건)에 불과하다. 반면 일반 1심법원은 같은 사안에 대해 20퍼센트대의 실형 선고율을 유지한다.
방 간사는 이에 대한 원인으로 군사법원이 군 수뇌부로부터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것과 군사법원 내 전관예우 행태를 지적하며 “이번 고등군사법원 판결은 군대 내 성범죄가 줄어들지 못하는 이유, 특히 고위 장교 및 장성들의 군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 발생하는 이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방 간사에 의하면 군 판사, 군 검사에 대한 근무평정 권한은 군 법무실장과 지휘관이 행사한다. 이 때문에 군 판사는 수뇌부의 판단과 지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판결을 선고할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군사법원이 군인 성범죄자에게 ‘군형법’이 아닌 ‘일반 형법’ 또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특례법)’을 적용한다고 꼬집었다. 통상 군인은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다. 현행 군형법에서 성범죄 처벌조항인 제92조부터 제92조 8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이에 준하는 행동을 할 경우 모두 유기징역으로 처벌받게끔 규정한다.
하지만 군사법원이 이를 적용하지 않고 군인 성범죄자에게 일반 형법이나 성폭력 특례법을 적용해 벌금형을 내리는 편법을 쓰고 있다는 의견이다. 현행 군인사법에 따르면 군인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성폭력 범죄로 30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 받지 않는 이상 제적사유가 되지 않는다.
이는 2010년 9월 하순부터 같은 해 12월 초까지 약 두 달 간 해군 장교 2명이 부하 성소수자 여군을 대상으로 벌인 성폭력 사건이다. 당시 A소령은 직속상관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자행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성폭력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돼 중절 수술을 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조력을 받을 목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당시 함장이었던 B중령(현 대령)에게 알렸으나 그도 자신을 성폭행해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7년 후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알게 된 헌병 수사관과 법무관의 설득으로 가해자들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강간 등 치사)’ 혐의로 고소했고, 지난해 1심을 맡은 해군 법원은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10년과 8년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A소령과 B중령이 항소심을 제기했고, 군사법원은 지난 8일과 19일 이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관해 군사법원은 “피해자가 의도적으로 허위 진술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약 7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기억이 변형 내지 과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협박이 동반되지 않아 강간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 사건은 “부하 여군을 강간한 두 명의 해군 간부를 처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랐고 19만2847명(지난 29일 기준)이 동의 의사를 표했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