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허영섭 회장 은둔 경영 왜?
녹십자 허영섭 회장 은둔 경영 왜?
  • 경제부 기자
  • 입력 2009-10-06 16:16
  • 승인 2009.10.06 16:16
  • 호수 806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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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백신 상용화 앞두고 자취 감춘 이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1년째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 이유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허 회장은 대내외 행사는 물론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녹십자는 국내 유일하게 신종플루 백신 개발에 뛰어들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는 상황이다. 국내 신종플루 백신을 추진한 허 회장이 결실을 눈앞에 두고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재계에 떠도는 각종 추측을 따라가 봤다.

신종플루 사태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국내 유일하게 신종플루 백신 개발에 나선 녹십자가 재계 호사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종플루 백신 상용화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허영섭 녹십자 회장이 공식석상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당초 허 회장이 전경련을 비롯해 각종 행사에 참석했던 지난해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라 갖가지 추측을 불러오고 있다.


백신 개발 앞두고 은둔모드로

현재 녹십자는 제약업계에서 유일하게 신종플루 백신 개발에 나서, 현재 막바지 임상시험 등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진행 중인 신종플루 백신 임상시험이 끝나고 정부의 국가검정을 거친 뒤 올해 안에 1200만 도수(600만 명 분)를 생산할 계획이다. 만약 녹십자가 백신 개발을 하지 않았다면 전량을 해외 공급에 의존할 판이었기에 백신 개발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녹십자의 이런 행보에는 허 회장의 의지가 작용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04년 백신사업자를 공모하면서 외국계회사와 녹십자의 합작 형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허 회장은 “백신 자급이 핵심인데 외국계자본이 주가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허 회장의 소신은 호재가 됐다. 업계에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외국회사와 합작했다면 백신을 저렴하게 국내에 공급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한창 주목을 받아야 할 허 회장이 보이지 않고 있다. 허 회장은 1년 가까이 공식석상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녹십자 안팎에서는 최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현재 그의 빈자리는 동생 허일섭 녹십자 부회장과 전문경영인(CEO) 허재회 녹십자 사장이 채우고 있다. 허 회장의 세 아들 허성수 부사장, 허은철 전무, 허용준 상무 등도 중책을 맡았다.

그렇다면 허 회장은 어째서 은둔 경영에 들어간 것일까.

허 회장은 사실 ‘은둔 경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내는 등 왕성한 대내외 활동을 펼쳤다. 전경련 회장이 교체될 때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기자간담회나 각종 언론의 인터뷰에도 자주 응해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언론에 노출된 것은 지난해 10월 초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린 ‘인촌상’ 시상식에서다. 당시 허 회장은 B형 백신 등 국민 건강을 위한 공익 개념의 제약 개발에 힘쓴 공로로 제 22회 인촌상을 수상했다.

그는 당시 “국내외 산업현장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한국이 이만큼 발전했다”며 “오늘 받은 상은 기술인들에게 더 정진하라는 격려로 여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허 회장의 행보는 오리무중이다. 그는 지난 4월 제42회 과학의 날 훈·포장 수여식에 불참했고 5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목암생명공학연구소 창립 25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7월 재계 총수들이 대거 모인 전경련 제주하계포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갖고 있던 직함마저 하나, 둘 버리는 모양새다. 허 회장은 지난해 12월 국제백신연구소(IVI) 한국후원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 7월 선임된 점을 감안하면 4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셈이다. 게다가 지난 2월엔 2003년부터 5년 넘게 갖고 있던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 자리에서 갑자기 사임했고 산기협 새 수장을 선출하는 이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같은 달 신한지주 사외이사직에서도 떠났다. 이유는 ‘일신상의 사유’가 전부였다.

때문에 현재 업계 일각에서는 허 회장이 동생이나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고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는 관측과 허 회장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 보다 무게를 싣는 것은 와병설 쪽이다.

허 회장 와병설은 지난해 녹십자가 태반 주사제 불법유통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를 당시부터 불거졌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청 국정감사에서 허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는데 당시 허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중”이라고며 불참했다. 올해 68세인 허 회장의 건강이상 이야기가 나돈 것도 이 시점이다. 특히 국감이 끝난 뒤에도 허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도 와병설에 힘을 싣는 점이다.


와병설, 단지 소문일까

하지만 반론도 있다. 허 회장의 신변에 문제가 있다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전혀 그런 낌새나 조짐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허 회장은 지난 3월 지주회사격인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로 재선임 되는 등 현재 녹십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분도 거의 변동이 없는 상황. 허 회장은 녹십자 개인 최대주주로 지분 2.92%를 보유하고 있으며 녹십자 지분 50.81%를 보유하고 있는 녹십자홀딩스도 12.37%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녹십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출근 안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궁금증만 증폭시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종플루 백신으로 국민적 영웅으로 주목받아야 할 허 회장이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라며 “갖가지 추측이 무성하지만 단지 소문에 그치길 바라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경제부]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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