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대기업 손 본다
최근 추석을 앞두고 분주해야 할 재계의 분위기가 냉랭하다. 검찰의 대기업을 본격적으로 손보기 시작한 탓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행여나 다음 표적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과 두산그룹의 두산인프라코어가 비자금 조성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게다가 SK그룹, 한진그룹, 태광그룹 등도 이 검찰의 조사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대기업 관련 범죄 수사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이처럼 동시다발적인 수색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최근 검찰에서 대기업을 손보고 나서면서 재계에 비자금 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특히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대기업이 한 두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미 SK그룹을 비롯해 한진그룹, 금호아사아나그룹, 두산그룹, 태광그룹 등은 검찰의 조사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수사는 김준규 검찰 총장 취임 이후 첫 수사라는 점에서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 검찰’의 오명을 극보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만큼 대기업에 대한 혹독한 수사가 벌어지리라는 평가다.
금호아시아나, 두산 기습 압수수색
검찰이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최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과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갈등이 봉합되기도 전에 외풍을 맞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 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달 22일 금호그룹 계열사인 대한통운 부산지사와 마산지사를 압수수색했다. 현재 대한통운은 물동량이 많은 부산에서 하청업체를 통해 7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의 수사는 유례없이 전광석화 같다. 이날 부산지사 기획팀장으로 근무했던 유모 지사장을 소환해 조사하는가 하면, 지난달 24일에는 특별경제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에게는 아예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기도 했다. 이와 함께 대한통운 회계담당 직원 3~4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비자금 수사가 그룹사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대한통운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기 이전에 발생한 범죄로 그룹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조사과정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 관련 의혹이 불거질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대한통운은 불황 속에서도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며 알짜 계열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맞이했다는 점도 의혹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검찰은 해운업체 동양고속훼리가 참여정부 강무현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전달했던 뇌물의 출처가 대한통운이 불법 조성한 비자금이라는 단서를 잡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그룹 역시 사정 칼날에 가슴 졸이는 기업 중 하나다.
인천지검 특수부는 22일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6개 상자 분량의 회계장부와 입찰 관련 서류, 컴퓨터 하드디스크, 전산자료 등을 정밀 분석 중이며 본격적인 참고인 소환 조사를 곧 시작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두산인프라코어가 2007년 고속정을 건조하는 A업체와 B업체에 고속정 발전기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납품가를 부풀려 7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 임원 명의로 예치했다가 이를 인출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이 과정에 고속정 건조사업을 발주한 해군 관계자 등이 개입, 조성된 비자금의 일부가 이들에게 뇌물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두산인프라코어에 발전기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가 ‘단가 부풀리기’에 가담했는지도 수사 중이다.
이같은 수사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수사의뢰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인프라코어가 2003년부터 다수의 국책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십억원 정부보조금을 빼돌린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대상 기업 ‘덜덜’
검찰이 주시하고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SK건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검찰 뿐만이 아니라 국세청까지 일제히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검찰과 국세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SK건설이 아파트 공사에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방송사 건물 공사 수주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또 국세청은 아파트 공사과정에서의 비자금 조성에 따른 세금탈루 의혹에 대해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SK건설은 부산 남구 용호동 오륙도 SK뷰 아파트를 시공하면서 시행사인 무송종합엔지니어링과 이면계약을 맺고 시행과 시공 수익을 모두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SK건설이 이같은 방법으로 올린 추가 수익을 회계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도 SK건설이 무송종합엔지니어링과 이면계약을 통해 수익을 낮춰 신고하는 등 세금을 탈루한 정황을 잡고 두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미 국세청은 7월부터 SK건설을 비롯한 대형건설업체 정기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SK건설에 대한 정기조사 기간을 한차례 연장해 갖가지 추측을 불러왔다.
검찰은 또 SK건설이 2001년 MBC 일산 신사옥 공사 수주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MBC측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4일 뉴라이트계열 시민단체인 방송개혁시민연대는 서울경찰청에 MBC의 일산 신사옥 건설과 관련, 시공사 선정문제, 장비업체 몰아주기 계약, 시공사 법인카드 의혹과 관련 고발장을 접수한 바 있다.
현재 SK건설 측은 지난 2003년 SK분식회계사건의 여파를 떠올리며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이면합의는 존재하지 않고 이행합의만 있었을 뿐, 위법사항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편, 태광그룹도 검찰 수사 소식에 속이 편치 않을 듯하다. 최근 거론되는 수사대상 대기업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지난달 24일 태광그룹의 티브로드가 지난 1월 관련법을 피해 편법으로 업계 경쟁사인 큐릭스를 인수한 과정에 대해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3월 발생한 티브로드의 청와대 행정관 접대 사건을 수사한 기록과 인수 관련 서류 등 각종 자료를 확보해 태광그룹의 큐릭스 인수 과정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
실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2006년 12월 큐릭스의 대주주인 큐릭스 홀딩스의 지분 30%를 군인공제회가 인수한 뒤 2년 내에 태광그룹 산하 태광관광개발에 옵션을 붙여 되팔 수 있도록 이면 계약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태광그룹이 군인공제회를 통해 ‘주식분산 감추기(파킹)’ 방식으로 이미 큐릭스의 지분 30%를 사실상 보유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당시 방송법이 전국 77개 방송 권역 중 15개 권역을 초과하는 종합유선방송사의 소유·겸영을 금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가 한진그룹 계열사에 대한 내사에 착수, 부동산 취득과 증여관련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 측은 부동산 취득관련 전방위적인 조사를 펼치고 있다.
검찰 오명 벗기 위해서?
현재 검찰은 다른 대기업 계열사에 대해서도 내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대기업 수사가 예상보다 큰 규모로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사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검찰총장 사퇴와 후임 총장 후보자 낙마 등으로 사상 초유의 지휘부 공백사태를 겪었다. ‘개점휴업’ 상태였던 검찰의 최초 움직임이 대기업 압수수색으로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이번 수사는 김준규 검찰 총장이 취임한 이후 첫 번째 벌이는 재계 수사라는 점에서 시선이 집중된다. 김 총장이 최근 서울 및 수도권 검사장들을 만나 지역토착비리와 기업비리 척결을 적극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주도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일선 지검 특수부가 동시다발적으로 기업 수사를 펼치는 새로운 수사방식도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총장은 취임 당시부터 일선 지검 특수부 기능 확대 등을 수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하겠다며 개혁 의지를 천명해왔다.
문제는 비자금 수사가 정치권으로 연결되는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총장의 이같은 의지가 어디까지 미칠지 시선이 집중된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