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일가 와신상담 끝에 반기 드나

일명 장하성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이하 장하성펀드)가 태광그룹과 대립하고 있어 그 속사정에 이목이 집중된다. 이미 장하성펀드와 태광그룹이 2006년 기업구조개선 문제로 갈등을 벌였지만 이듬해 태광그룹이 승복하면서 화해한 바 있다. 하지만 그간 조용했던 태광그룹 안팎에서는 장하성펀드와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어왔다는 평가다. 최근 장하성펀드는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에 대한 장부열람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태광그룹과의 2차전에 포성을 울렸다.
장하성펀드와 태광그룹의 2차전이 시작됐다.
장하성 펀드는 지난 11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가족이 보유한 회사에 대한 지원성 거래가 계속되고 있고 소액주주들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장부열람 소송을 제기했다.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이사회 의사록 열람과 함께 태광시스템즈, 동림관광개발 장부 열람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하성 펀드는 이어 “2006년 태광그룹과 지배구조 개선에 합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태광산업 등은 어떠한 적극적인 노력도 하고 있지 않아 중요한 부분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기업가치와 주주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은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3년간 복수 칼 갈았나
이번 장하성펀드와 태광그룹의 갈등은 재계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 중 하나다. 2007년 태광그룹이 장하성펀드에 패배한 이후 3년이나 이들의 관계는 원만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006년 8월부터 출시한 장하성펀드는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의 지분을 인수해 투명한 이사진을 구성하는 등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의 경영진과 투명 경영을 조건으로 주식 매입을 통해 경영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장하성펀드 출범 후 데뷔작이 바로 태광그룹이었다. 태광그룹의 기업구조 개선은 곧 장하성펀드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문제인 셈이다. 문제는 장하성펀드가 현재까지 태광그룹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점이다.
태광그룹 핵심 계열사 태광산업 주가는 장하성펀드의 요구조건을 받아드린 2007년 2월 12일 기준 79만7000원을 기록 했지만 막상 현재(9월 17일 종가기준)는 76만6000원으로 하락한 상태다. 대한화섬 주가도 2007년 2월 12일 기준 12만9000원에서 현재 7만900원까지 하락했다.
물론 환율상승, 금융위기 등 굵직한 경제 이슈가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기업 개선 효과’는 커녕 손실만 보게 된 것이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태광그룹의 주가 관리를 위해 장하성펀드가 또다시 이슈를 생산한다는 해석도 분분하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태광그룹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장하성펀드 측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태광그룹이 장하성펀드와 맞서기 위한 준비를 꾸준히 갖추기 위해 시간벌기식 합의를 했으리라는 지적이다.
사실 2006년 1차전 당시 장하성펀드의 집요한 공격은 태광그룹으로서는 골칫거리였다. 장하성펀드는 지난 2006년 8월 태광그룹에 대해 “좋은 회사 임에도 지배구조가 문제가 있는 회사”, “자산운용 전반이 잘못 돼 있다”고 일침을 가하며 포문을 열었다. 또 회사측에 소액주주 권리의 개선, 독립적인 이사회 운영, 회사와 그 계열사들 간 거래 투명성 개선, 배당금 증액, 주주이익을 저해하는 유휴자산의 매각 등을 요구했다.
대한화섬이 그 뒤 두 차례 장하성펀드의 명부 열람 요구를 거부하자 펀드측은 그룹의 핵심인 태광산업 주식도 보유하고 있다며 압박에 들어갔다. 또 장하성펀드는 법원에 대한화섬 주주명부 열람 허용을 요구하는 가처분소송을 냈고 법원은 11월 초 장하성펀드의 손을 들어줬다. 또 장하성 펀드측은 이 과정에서 태광산업 이사회에 케이블TV회사와 그룹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모든 사태가 정리된 것은 2007년 2월 열린 태광산업의 주주총회서였다. 당시 태광산업은 장하성 펀드의 요구사항이었던 전성철씨의 사외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신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등이 모두 승인됐다.
당시만 해도 태광그룹은 순순히 패배를 시인하는 것처럼만 보였다. 실제 창사 이래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기업설명회(IR)을 열었고, 사외이사도 대폭 선입됐다. 외형상 장하성펀드와 태광그룹의 갈등은 물밑으로 잠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장하성펀드와 태광그룹의 2라운드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일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이미 1패를 경험한 태광그룹이 장하성펀드와 재차 대립각을 세웠다는 것은 그만한 준비 없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차전 승자는 누가되나
이미 장하성펀드와 태광그룹과의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실제 장하성펀드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태광의 경영진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갈등의 구체적인 내역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장하성 교수는 “부당 지원성 거래에 대해서는 소송 결과가 나오면 알게 될 것”이라며 “이번 소송은 최초 장하성펀드가 수익에만 눈이 멀었다는 오해를 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태광그룹과 장하성펀드의 갈등 2라운드가 어떻게 풀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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