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기업 분할 시나리오 시작되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최근 삼성에버랜드 경영에 참여하면서 재계가 떠들썩하다. 그동안 잠잠했던 삼성그룹의 후계구도가 점차 윤곽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특히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 속에 숨어있는 ‘후계구도 밑그림’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실상 삼성그룹 지주회사인 에버랜드에 이부진 전무가 영입되면서 삼성 분할구도가 구체화됐기 때문이다. 이부진 전무 행보에 숨어있는 삼성가 분할 시나리오를 짚어봤다.
최근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의 행보가 재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15일 삼성그룹은 이부진 전무를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전무로 영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전무는 2001년 호텔신라 기획부장으로 입사해 2005년 경영전략담당 상무, 올 초 전무로 승진한 바 있다. 여기에 겸직이라는 형태로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에버랜드 경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분가 시나리오 착수하나
재계에서는 이부진 전무의 이번 승진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쏟아내고 있다. 특히 시선을 모으는 것은 삼성그룹 분할 가능성이다. 업계에서는 이건희 전 회장이 후계경영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룹을 자녀에게 분할상속하리라는 분석이 부상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슬하에는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를 비롯해 장녀 이부진 전무,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까지 세명의 남매가 있다. 이들은 모두 삼성그룹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는 중이다.
물론 이건희 전 회장이 딸들에게 경영참여의 기회를 줬다곤 해도 그 비중은 이재용 전무와 차이가 크다. 이재용 전무는 1991년 삼성전자 총무부에서 시작해 2001년 경영기획팀 상무, 2007년 전무로 승진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각종 현황을 보고 받는 등 그룹 전반을 총괄할 수 있는 경영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삼성가 딸들의 행보는 오히려 초라하다. 이부진 전무와 이서현 상무는 각각 호텔신라, 제일모직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경영수업 과정이 자녀들의 후계구도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결론적으로 재계 전문가들은 이들의 경력이 각각 다른 만큼 삼성그룹의 ‘남매 공동경영’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기업 분할이 가장 합리적인 상속 방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이부진 전무의 에버랜드 진입이 시선을 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인사를 통해 이부진 전무가 향후 호텔신라와 함께 에버랜드의 리조트 및 서비스산업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밑그림만 본다면 이재용 전무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그룹의 주력인 전자와 금융업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또 이서현 상무가 제일모직을 비롯해 그룹의 섬유, 화학부문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이같은 후계구도 전환은 더욱 가속도가 붙으리라는 것이 삼성 안팎의 전망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미 이재용 전무가 올해 말 인사에서 계열사 사장을 맡는 형식으로 경영 전면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리라는 뒷말까지 나돌고 있다.
관측대로 이부진 전무는 차후 상속받을 에버랜드를 장악하라는 특명을 받은 셈이다.
연말 인사폭풍 예고
이를 위해 에버랜드로 이부진 전무의 측근들의 이동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차기총수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실제 삼성그룹은 매년 1월에 하던 임원 인사를 올 12월로 앞당겼다. 임원인사 뒤엔 직급체계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조직 재정비도 이뤄질 전망이다.
한편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에버랜드의 필요에 의해 전문가를 영입한 것”이라며 “후계 구도나 재산 분할과는 관계가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런 삼성그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을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삼성그룹은 삼성특검 등 상속과 관련 의혹으로 상속 움직임이 정체된 상태다. 이건희 전 회장이 그동안 지체됐던 후계구도 정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재벌총수 등기이사 비율 28%에 불과
우리나라 주요 재벌기업 소속 계열사에서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곳이 70%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돼 시선을 끈다. 31개 민간재벌의 917개 계열사 중 28%만이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것이다.
지난 16일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재벌총수 일가는 개인당 대개 5개 이하의 계열회사에만 이사로 등재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계열사의 비율은 동부와 효성그룹이 10% 미만, SK, LG, CJ, 금호아시아나, 한화, 신세계그룹 등은 20% 미만인 것으로 분석됐다.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재직 중인 계열사의 비율이 70% 이상인 기업집단은 현대와 한진중공업, 세아그룹 정도다.
삼성과 현대중공업 그룹은 단 한 곳도 없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은 회사와의 거래 시 이사회의 사전 승인을 얻어야 하는 거래 상대방의 범위를 등기 이사 및 그의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그들이 지배하는 회사로만 한정하고 있다.
정작 회사와의 거래가 빈번한 지배주주 일가는 규율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우리나라는 기업의 경영권 유지 및 승계를 위한 불법적 사익추구 행위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며 지배주주 일가 중 누군가가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는 경우에만 규율대상이 되는 현재의 상법 개정안으로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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