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자살의 진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삼성전자 한 직원 A씨가 출장 중 사망해 논란이 일고 있다. 폴란드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 사망원인이 자살인 것으로 결론 났지만, 석연치 않은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A씨는 출국 당시만 하더라도 자살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사망 현장에서도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고인의 유족과 지인들은 “자살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상황. 의혹에 시달리는 A씨의 죽음을 따라가 봤다.
삼성전자 한 직원의 죽음이 갖가지 의혹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6월 15일 폴란드에서 사망한 A씨(3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삼성장학생으로 서울대학교를 나와 휴대폰 개발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는 소위 ‘엘리트 사원’이었다. 삼성장학생으로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기계항공공학부 석·박사 학위를 보유했다. 이미 학창시절에는 GPS무인로봇항공기 대회에서 서울대 연구팀으로 금상 1회, 대상을 3회 받아 언론에 소개된 전적도 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그런 A씨가 사망한 것은 업무차 폴란드 출장을 갔을 때다. 당시 폴란드의 휴대폰 사업 관련 문제로 6월 11일부터 출국했다. 당시 그는 폴란드의 지인에게 출장에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컵라면, 고추장, 햇반, 취미인 카메라 등을 꼼꼼히 챙겼다. 하지만 그의 출장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 됐다. 유족 및 경찰에 따르면 A씨는 15일 오후 6시경 화장실 문고리에 목을 맨 사체로 호텔 보안요원에 의해 발견됐다. 사망추정시간은 15일 새벽 6시경. 폴란드 수사기관 및 국내 경찰에 따르면 직접적인 사인은 자살이다. 문제는 이런 A씨의 자살에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A씨의 유족들은 유서는 커녕 자살 징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A씨의 유족은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다. 자살 징후도 없었고 자살할 이유도 없었다”고 하소연 했다. 현재 유족 측은 A씨의 죽음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단순히 가족을 잃은 유족의 분노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들에 따르면 A씨는 사망 전날인 14일 밤 11시 30분 경 피곤하단 이유로 먼저 호텔로 들어왔다. 이후 A씨 사망시점까지 행보는 오리무중이다. 새벽 4시에 숙소의 문이 열린 것이 호텔의 전산자료에 남아있지만 정작 외출을 한 것인지, 누가 방문한 것인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A씨가 머문 바르샤바 메리어트 호텔에는 엘리베이터 내부에만 CCTV가 설치 돼 있는데, 여기에 A씨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외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유족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유 없이 객실 문을 열었다 닫았을 리가 없다”며 “외출한 것으로 보기 힘들고, 무엇보다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A씨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사망 후 12시간이 지난 15일 오후 6시경이었다. 하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유품에는 평소에 끼던 안경이 사라졌고, 신발도 없었다. 심지어 도난품도 없었다.
하지만 이 의혹을 해결할 실마리는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폴란드 경찰 측은 유족이 현장에 방문하기도 전에 방안을 모두 청소해 버렸다.
현재 유족 측은 “A씨의 삼성카드 기록을 8월 14일 조회했더니 사망한 날짜 6월 15일에 카드사용 기록이 있다”며 “직원 말로는 호텔에서 승인 받았다가 6월 22일 승인 취소 됐다”고 말했다. 해당 카드는 A씨의 지갑에 들어있었다고 한다.
현재 유족은 타살 가능성 및 자살에 외부적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 A씨는 활발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한 후배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사진촬영, 축구 등 취미를 즐겼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 A씨가 이렇게 죽음을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A씨는 폴란드에서 이미 부검을 받았고, 국내에 A씨의 시신이 도착한 뒤에도 국립수사연구소의 2차 부검이 뒤따랐다. 두 기관의 부검결과는 모두 자살이었다. A씨의 장례는 사후 2개월 뒤인 7월 31일에서 8월 2일까지 간신히 치러질 수 있었다.
현재 삼성전자 측은 A씨 관련 의혹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이 수사기관도 아니고 경찰 조사에 따른 결과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지 어떻게 주도적으로 원인을 규명할 수 있겠느냐”며 “고인에 대해서 더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삼성전자에서 유족들에게 폴란드행 항공권, 장례비용 등을 이례적으로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족 측은 A씨의 죽음에 삼성 측에서 쉬쉬하기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A씨가 사용하던 PC나 휴대폰을 모두 회수해갔다. 정작 유족들은 패스워드가 걸려있어서 내용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회사물품인데다 업무관련 보안을 요구하는 자료라는 것이다. 결국 유족은 삼성전자 측으로부터 “PC에는 업무 관련 내용만 있었다”라고 구두로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보니 A씨의 업무와 출장 이유도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A씨가 근무한 관련 부서 관계자들은 모두 취재 과정에서 A씨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유족 관계자는 “왜 출장갔고 가서 어떤 업무를 했는지 삼성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면서 “현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망 진실 밝혀질까
이 사건을 담당한 수원경찰서 관계자는 “십수년 일하면서 이번 같은 자살 사례는 처음이다”라며 “해외출장 중 자살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 있었는지, 충동적으로 그랬는지는 고인만 알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검결과 자살로 판정된 데다가 폴란드 측으로부터 수사 자료가 넘어오지 않아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이야기다.
현재 A씨는 별 다른 빚도 없었고, 여성과의 관계도 깨끗해 자살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연 A씨 죽음에 대한 의혹이 풀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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