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알파걸’ 시대가 온다
재계에 ‘알파걸’ 시대가 온다
  • 강필성 기자
  • 입력 2009-08-25 11:58
  • 승인 2009.08.25 11:58
  • 호수 800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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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경영 DNA 딸들이 이어가나
(왼쪽부터)정성이 이노션 고문 · 정지이 현대U&I 전무 · 이부진호텔신라 전무 · 김은선보령제약 회장 ·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

성공한 CEO는 경영철학이 남다르다. 보통 사람과 다른 계산에 냉철하고, 시대를 읽고, 행동에 과감하게 옮기는 경영자 DNA가 있다. 유교적 사고의 사회에선 보통 남자 중심으로 가계가 승계된다. 최근 재계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라는 사회적 흐름따라 가계를 딸들에게도 물러주는 풍토가 생겨나고 있다. 경영권을 승계받은 딸들은 아들들 못지 않은 경영 능력을 발휘하며 재계에 흐름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른바 알파걸로 불리는 재계의 여성진출을 들여다 봤다.

흔히 일선 경영 현장을 ‘전쟁터’라고 말한다. 오늘날 재계에서는 그만큼 치열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재계 경영자 대부분이 남성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같은 여성의 불모지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재벌가 여성들이 대거로 기업 경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재벌가에서 ‘여성’이란 늘 내조의 역할을 맡아왔다. 흔히 재벌가에서 ‘올바른 자녀교육’, ‘뒷바라지’ 등을 미덕으로 삼는 것도 전통적인 여성관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같은 여성관이 변하고 있다. 최근 재벌가 여성들은 뒤질세라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재벌 딸들의 ‘경영 러쉬’

재벌그룹에서 여성 진출이 특히 두드러지는 곳은 바로 삼성가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는 재계 ‘여성 파워’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경영전략을 담당하면서 신라면세점 확장 사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유통 부문은 호텔신라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교적 빠른 기간에 성장했다.

이건희 전 회장의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도 패션부문 기획담당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범 삼성가인 신세계그룹의 여풍도 거세다.

이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이미 재계에 몇 안되는 여성 회장 중 하나다. 그래서일까. 이명희 회장의 장녀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도 경영일선에서 남자 못지않은 기량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는 디자인에 대해 월등한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데 호텔 리뉴얼, 외식당 인테리어 디자인을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총괄 부회장은 이미 재계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경우다. 그는 이사 5년, 상무 6년을 거친 여성 기업인에게 있어서는 ‘고참’ 축에 속한다. 현대가에서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의 장녀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시선을 끈다. 직접 경영을 하는 직책은 아니지만 직원들, 광고기획 담당자와 어울리며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노션은 향후 현대차그룹 관광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정성이 고문의 역할에 시선이 모이고 있다.

또 다른 현대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이 현대U&I 전무도 재계의 화재를 몰고 다닌다. 정지이 전무는 특히 최근 현정은 회장 방북에 ‘그림자 수행’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중이다. 특히 그는 현정은 회장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대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영승계와 관련 갖가지 추측을 무성케 하고 있다.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딸인 장선윤 롯데쇼핑 상무도 경영일선에서 돋보이는 인사들이다.

그밖에 재벌그룹의 조현아 대한항공 상무는 이미 기내식 사업본부장을 비롯해 그룹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의 각자 대표를 맡고 있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의 장녀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도 재계에서 돋보이는 여성 회장이다. 김 회장은 올 초 취임 이후 조직문화 혁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큰 딸인 현정담 동양매직 상무보는 2006년 입사 이후 초고속 승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재벌가 여성의 재계 진출을 보는 재계의 시선이 썩 고운 것만은 아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성의 경영이 점차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대상이 재벌가 자녀에 국한돼있고 일반 여성 전문경영인은 거의 없다. 소위 말하는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벌가 소속인 그들을 경영실적을 문제 삼아 문책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탠다. 위험부담 없이 단기간 고속승진으로 경영자에 오른 이들을 ‘경쟁을 해쳐나왔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이같은 열풍이 상속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 전문가는 “재벌 내부의 분쟁을 막기 위해 자녀들에게 기업 일부를 분할 상속하는 경우로 봐야한다”라며 “기업을 존속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차원의 경영수업으로 봐야지 여성진출 측면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실제 일부 재벌가에서는 딸 대신 사위가 경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현재현 동양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알파걸 시대 도래

그럼에도 업계 일각에서는 재벌가 여성의 기업경영이 알파걸 열풍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 여성은 “여성 경영자가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일반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아직까지 남성이 지배적인 기업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경영을 선보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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