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 진한 형제애도 없다”

한 조세전문 변호사가 국세청 근무 경험을 토대로 세금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2003년부터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법무2과장을 지낸 고성춘 변호사는 최근 ‘세금으로 보는 세상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상속세를 놓고 형제간 다툼이 벌어진 일, 친어머니를 탈세자로 제보한 자식, 세금으로 인해 오히려 부자가 된 사람, 세무조사 로비를 했다가 더 큰 낭패를 본 사람 등 고 변호사가 실제 현장에서 겪었던 사례가 흥미진진하게 소개돼 있다. 그 내용을 살펴봤다.
“세법 진행 과정에서 억울한 납세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과세관청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 지난 7월 17일 신임국세청장의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
억울한 납세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보통 사람들은 세금이라면 무조건 어렵게 생각하거나 골치 아파 하면서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금 문제로 인해 울고 웃는 수많은 사례들을 주변에서 보게 된다.
특히 생각지도 않았던 세금 문제로 가슴 아파하면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게 되는 경우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세금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나 정보가 있었다면 이 같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정작 많은 사람들은 세금 문제는 자기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에 한 조세전문가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모아 책을 출간하였다. 그 책에는 세금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 상속, 증여세 때문에 하루아침에 원수가 된 형제들의 이야기도 있다. 또한 잘못된 과세에 따른 공매로 인하여 살던 집에서 쫓겨난 후 뒤늦게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사례 속 증여 법적 분쟁사
‘돈 앞에는 형제간의 우애도 없다’편은 재벌가에 만연한 이야기들을 사례중심으로 엮어 놓아 재계의 따가운 질타를 하는 듯 보인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A씨의 형은 아버지 재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3억원을 빌렸다. 사업자금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잘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A씨의 형은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회사가 거의 부도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A씨의 형은 A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생아. 내 명의로는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분명 되는데 말이다. 그러니 네 명의로 대출 좀 해주라. 이번 한번만 형 좀 살려주는 셈치고 도와줘라. 그러면 네 은혜 평생 잊지 않고 갚을게”
형이 사정하니 동생인 A씨는 난처하였다. 결국 A씨는 형이기에 돈을 빌려주었다. 형제애는 돈독해졌다. 이후 아버지가 형제들이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형의 돈을 변제해주고 돌아가셨다. 상속재산도 마무리해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A씨에게 두 장의 증여세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의아한 나머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니, 아버지가 A씨의 명의로 대출금을 대신 갚아준 것은 증여이므로 증여세를 고지함과 동시에 그 금액을 상속세 과세가액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세법에서 상속재산을 미리 처분하는 방법 등으로 상속세를 줄이는 편법을 못 쓰도록 세법에다 아예 여러 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A씨는 이해가 되지 않아 재차 물었지만, 전문가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이에 형에게 대납을 요구했지만, 형은 수긍하지 않았고, 돈독했던 형제애는 파국을 맞게 되었다. 은행에서 서명한 것은 A씨였고, 자신의 명의로 대출을 받은 이상 비록 돈은 형이 썼지만 그 채무는 분명 A씨에게 있다는 이유로 패소하고 말았다.
‘원수 같은 동생’ 내용도 마찬가지다. 신씨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다. 그가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다. 유흥업소는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게 통례다. 그래서 바지사장이 구속되면 가족들 생활비와 그에 대한 사례를 하게 되어 있다. 신씨는 동생과 조카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웠다. 사업은 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속에 동생이 걸렸다. 동생은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됐고, 나와 더 큰 나이트클럽을 차렸다. 이윽고 형제애는 깨졌다. 이후 동생은 형을 검찰에 탈세혐의로 고발했다. 형은 더 이상에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원만한 해결을 원했고, 그 대가로 소유한 임야를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동생이 신용불량자이기에 제수(동생의 처)명의로 소유권이전 등기를 해주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동생은 부인과 이혼을 하고 형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씨에게 고지서가 날아왔다. 국세청에서 특수 관계인에 대한 양도형식으로 편법증여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제 조사를 했는데, 신씨가 제수 명의로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것이 문제였다. 세무서는 제수가 아무런 대가 없이 신씨로부터 양도를 받을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증여세는 수증자인 제수에게 나오는 거였기 때문에 신씨는 안심했지만, 증여세를 내지 않아 신씨에게 증여세 연대 납세의무자로 지정하여 증여세를 내라는 고지서가 날라들었다. 신씨는 도저히 세금을 자기가 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침내 과세처분이 위법이라는 확인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마냥 좋아만 할 수는 없었다.
세무서장이 수증자를 동생으로 하여 다시 과세한 후 신씨에게 증여세 연대납부의무를 명하면 형은 동생이 부담해야 할 증여세를 꼼짝없이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는 “상속세 사건 등 돈 많은 사람들의 사건을 보면서 돈 앞에 인륜도 무너질 수 있다는 허망함을 느꼈다. 탈세를 하는 사람들과 그를 협박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리석게 보인다”며 “쉬운 세법과 알기 쉬운 상식들을 통해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세금 지식이 없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정작 세금 문제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 책을 통해 세금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성춘 변호사 주요 경력
·1964년생
·1987년 고려대학교 법대 졸업
사법연수원 제 28기
·2000~2001년 감사원 근무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한국전력, 수출보험공사, 주택은행,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 감사
·2003~2007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 재임
·2008년 법무법인 바른 조세팀장
·2009년 변호사 고성춘 법률사무소 개업
[경제팀]
경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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