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회장 어머니의 자식교육법 전격 공개 제 7탄 - 신창재 회장 편
재벌회장 어머니의 자식교육법 전격 공개 제 7탄 - 신창재 회장 편
  • 정리=이범희 기자
  • 입력 2009-07-14 14:05
  • 승인 2009.07.14 14:05
  • 호수 794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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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울타리’ 교보생명 어머니 유순이
교보생명의 울타리가 되었던 고 신용호 창업주와 아내 유순이 여사

유교 문화권에서 어머니의 이상형은 단연 맹자의 어머니 ‘맹모’를 꼽는다.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한 것은 물론, 공부를 중도 포기한 아들에게 베틀의 실을 끊어 경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기업인들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떻게 자녀들을 키웠기에 한국 최고의 CEO로 만들었을까. 다른 위대한 보통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는 어떻게 다를까. 최근 출간된 (한결미디어 펴냄)은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 한성실 여사를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을 길러낸 어머니들의 가르침을 연재할 예정이다. 다음은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어머니 유순이 여사의 이야기다.

중국에서 한창 사업을 벌이고 있던 스물여섯 살의 총각 신용호(호는 대산·교보생명 창업회장· 1917~2003)에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위독’이라는 전보가 배달되었다.

그런데 허겁지겁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위독하다던 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것 아닌가. 깜짝 놀란 대산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아버지의 말이었다.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 네 나이도 이제 스물여섯 아니냐.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장가를 들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너를 결혼시키려고 전보를 친 것이다” 대산은 중국에서 벌여놓은 사업 때문에 당장은 결혼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한 아버지에게 결혼을 못하겠다고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았다.

신부는 대산의 어머니와 같은 문중인 문화 유 씨로 올곧은 성격을 지닌 처자였다. 예의범절이 바른 유순이 처자와 대산은 이리하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신랑은 사모관대를 하고 신부는 족두리를 쓰고 올리는 전통혼례로 식이 거행되었다.

결혼식을 치르고 꿈같은 신혼의 나날은 1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사업체가 있는 중국으로 향해야 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을 맞이했다. 대산은 중국에서 귀국하게 되었다. 1주일의 신혼 기간을 보낸 후 3년만의 재회다.

귀국 후 대산은 사업과 결혼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정신없이 일에 열중했다. 하지만 운이 없어서인지 운영하는 회사마다 모두 단명으로 끝나는 어려움을 겪었다.

내조하는 입장에서는 남편의 어려움을 마음속으로만 같이 나눌 수밖에 없었다. 유 여사는 사업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어도, 남편의 일이 순리대로 진행되기를 항상 기도했다. 남편이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집안일에 더욱 정성을 다했다. 무엇보다 집안의 분위기를 평안하고 화목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교육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안 분위기 편안·화목 노력

그러나 남편의 사업이 계속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가정의 현실은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집은 물론 손목시계에 이르기까지 가재도구를 다 팔아치워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다. 유 여사는 겨우 이불만 챙겨 좁은 셋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편이 공사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얻어 쓴 고리채는 눈덩이처럼 쌓여갔고, 빚 독촉에 한숨조차 쉴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남편 대산은 모든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1958년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창립했다.

대산은 이렇듯 경영인으로서는 역경을 극복한 성공사례로 꼽히지만, 가장으로서는 독선적인 점이 많았다. 이런 남편이니, 유 여사가 가정을 꾸리기 위해 받는 생활비는 그야말로 최저 가계 운영비가 고작이었다. 돈을 더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남편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부족한 돈을 얻어내야만 했다.

유 여사가 자식들을 키우며 특히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우애를 들 수 있다. 어머니로서 자식들에게 친형제뿐 아니라 삼촌과 조카 사이에도 서로 존중하고 정성스럽게 대하는 우애를 특히 강조했다. 자식들의 배우자를 정할 때에는 재산이나 집안 같은 외양보다는 사람 본위로 결정했다.

장래성이 있는 사람인가, 자기 일에 얼마나 소신껏 임하는가, 자기 분야에서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 제목인가를 우선시했다. 자식들 뿐 아니라 조카들 결혼에도 유 여사는 숙모라기보다 부모의 마음으로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2003년, 유 여사는 60여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유 여사는 장남 창재(교보생명 회장)을 비롯해 차맘 문재(문보장 대표), 장녀 영애, 차녀 경애 등 2남 2녀를 훌륭하게 길러낸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다. 자식뿐만 아니라 조카 다섯과 조카딸 둘까지 거느리고 교육시키느라 젊은 시절 많은 고생을 감내하기도 했다.

유 여사는 신혼이래 계속 이렇게 많은 식구와 더불어 살았으며, 한국 전쟁 때는 열세 식구가 같이 살기도 했다.

혼자보다는 남과 더불어 사는 것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 자식들에겐 어머니의 이런 삶 자체가 큰 교육이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자료제공:한결미디어]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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