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독립경영 1년 ‘명암’
삼성그룹의 독립경영체제가 7월 1일로 꼭 1년이 됐다. 삼성은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다. 숫자로 드러나는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1분기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2분기에도 나아질 것이라는 게 업계와 증권가의 중론이다. 그래도 아쉬운 구석이 없잖다. 그룹 전체를 움직이는 대규모 미래사업이 보이지 않는다. 그룹의 아이덴티티가 흐릿해져 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한 사람에게로 시선이 모아진다. 이재용(41) 삼성전자 전무다. 이 전무는 이미 삼성그룹의 ‘주인’이다. 적어도 지분 상으로는 그렇다. 이 전무의 에버랜드 지분율은 25.1%로 이 회사의 최대주주다. 에버랜드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의 핵심이다. 5월29일 대법원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 삼성에게 의미가 크다. 오너 경영의 법리적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 이에 삼성그룹 이재용호 출범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예상이 대세다.이재용은 바쁘다. 올해 들어 이 전무는 거의 매달 해외출장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거래업체들과 스킨십을 통해 향후 경영행보를 원활히 가져가려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영 전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6월17일에는 중국 최고의 IT업체인 화웨이의 경영진과 회동했다. 화웨이는 세계 3대 이동통신 장비업체 중 하나다. 중국 내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네트워크 인프라와 단말기 점유율에서 1위를 달릴 정도의 회사다.
앞으로 두 회사의 톱 미팅은 정례화된다.
삼성그룹 고위관계자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양사는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중국업체와 정기교류는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에게, 이 전무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 6월 18일에는 미국의 최대통신회사 AT&T 경영진과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자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역시 미국 내 주요 거래업체들과 스킨십을 위해서다.
앞서 이 전무는 2월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을 다녀왔다. 3월 대만, 4월 일본, 5월에는 독립국가연합(CIS) 등을 방문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이 전무는 이렇게 착착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삼성은 이미 ‘李의 남자’들로
이 전무가 해외를 도는 사이 삼성은 ‘이(李)의 남자’들이 이끌고 있다. 이 전무의 측근들은 올해 초 인사에서 전면으로 부각됐다. 최지성(59) 삼성전자 사장, 이인용(52) 삼성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 윤순봉(53) 삼성석유화학 사장 등이다. 최지성 사장은 이 전무의 ‘가정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해외 출장길의 이 전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최 사장은 반도체와 디지털미디어, 정보통신 등 삼성전자의 요직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장원기(54) 삼성전자 LCD사업부 사장과 최도석(60) 삼성카드 사장, 배호원(59) 삼성정밀화학 사장, 유석렬(59) 삼성토탈 사장, 최주현(55) 에버랜드 사장, 박오규 삼성BP화학 사장(56), 황백 제일모직 사장(56) 등도 이 전무와 함께 할 인물들로 거명된다.
재계는 이 인사를 ‘이재용 체제 가속화’로 풀이했다. 이 전무가 경영수업을 받은 지도 10년 가까이 됐으므로 이제는 3대째를 위한 ‘내부정비’를 할 때라는 목소리였다.
강렬한 ‘오너 향수’
삼성그룹은 오너 경영의 장점을 꾸준히 전파해왔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빠른 의사 결정, 강력한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오너 회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그룹 안팎에서 제기됐다. 삼성에는 오너를 향한 향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결성 1년이 흐른 사장단협의회가 내놓은 ‘중대’ 결정은 없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략기획실의 부재로 그룹 전체의 방향성이 모호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 전무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다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시기’가 남아있을 뿐이다.
김정남 기자 surrende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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