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공들인 여수박람회 배후 사업 포기로 ‘위기’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계열 건설사인 엠코에 발목을 잡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엠코는 최근 여수세계박람회 지정 사업에 투자의사를 밝혔다가 돌연 취소했다. 웃지 못 할 상황은 그룹 최고 권력자인 정몽구 회장이 여수세계박람회 명예유치위원장으로 있다는 점이다. 정 회장으로선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코믹한 상황을 맞게 된 셈. 그룹 계열사에 발목 잡혀 울상 짓고 있는 정 회장의 현 상황을 되짚어 봤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크게 일조하고 있는 종합건설업체 엠코가 졸지에 그룹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그동안 엠코는 현대·기아차그룹 경영권 승계에 없어서는 안 될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엠코의 이러한 성장은 공교롭게도 정몽구 회장에게는 큰 재앙이 됐다.
사건의 발단은 온 국민의 관심이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에 쏠려있던 3년 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9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자금 조성으로 물의를 일으킨 만큼 재판결과와는 무관하게 개인재산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도 했다.
2007년 9월 6일 오후3시, 긴장의 순간이 다가왔다. ‘실형이냐, 집행유예냐’에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정 회장의 유죄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정 회장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여수엑스포유치위원회 명예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이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 결과였다.
실제 재판부는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민간외교에 힘써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정 회장 또한 ‘그렇게 하겠노라’며 그룹 전체를 ‘여수엑스포 유치 비상체제’로 전환,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엠코 덫 걸린 회장님
실제 칠순의 정 회장은 2007년 4월부터 매달 한 번꼴로 여수엑스포 유치를 위한 해외출장길에 나섰다. 여수유치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정 회장이 밟은 대장정은 약 13만㎞. 지구(둘레 4만km)를 세 바퀴나 돈 셈이다.
이에 앞서 정 회장은 해외지역본부장들에게 회원국들의 표심을 파악하는 한편 부동층을 최대한 한국지지로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지시했다. 또 세계박람회기구 회원국 소속의 현대·기아차 대리점 사장단에게도 ‘여수엑스포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명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 중아지역본부장 등에게는 “전세기를 타고서라도 아프리카를 훑으라”고도 강조했다. 이에 김종은 전무 등은 정 회장의 지시로 지난 10월 전세기를 빌려 중부아프리카 일대에서 유치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정 회장이 총력을 기울인 데는 법원과의 약속이 크게 작용했다. 결국 정 회장의 이 같은 노력은 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로 마무리됐다.
그로부터 3년 뒤 문제가 발생했다. 기껏 정 회장이 ‘여수세계박람회 성공적 개최’라는 밥상을 차려놓자 그룹 계열 건설사인 엠코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전남 여수시에 따르면 여수세계박람회 지원시설구역으로 지정된 여수 국동항 개발을 추진해오던 특수목적법인 다도오션시티㈜는 최근 태도를 돌변해 ‘사업참여 불가’ 의사를 밝혔다. 여수수협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도오션시티㈜는 지난 5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동항 해양관광문화 복합단지에 호텔 및 콘도미니엄으로 구성된 숙박시설, 해양관광타운을 건설하기 위해 준비해 왔지만 수협과 어민들이 최종 중재안까지 거부해 사실상 개발 계획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다도오션시티㈜ 구성원 안에 현대·기아차 그룹 계열사인 엠코가 섞여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그룹 최고 권력자인 정몽구 회장이 수년에 걸쳐 야심차게 준비해온 일에 ‘일개’ 계열사가 ‘흠집’을 낸 셈이다.
사실상 다도오션시티㈜의 사업철회 의사는 전적으로 엠코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부채비율이 전혀 없는 엠코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다. 실제 시행사인 ㈜에프엠은 엠코를 꾸준히 설득, 호텔만은 건설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엠코의 확고한 의지에 에프엠 또한 지난 6월 2일 사업 참여불가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다도오션시티㈜는 여수세계박람회를 대비해 준공업지역(어항시설)인 여수시 봉산동 96-7 일원 6만7288㎡에 특급호텔(45층·628실) 및 30~35층 아파트 655가구를 지을 예정이었다.
첫 단추부터 ‘삐끗’
재계는 다도오션시티㈜의 이번 사업철회 사태에 대해 “첫 단추를 너무 성급하게 뀐 탓”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여수 국동항 해양문화관광단지’ 조성은 처음부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여수시의회 엑스포지원특별위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특별위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수엑스포 정부지원위는 여수수협과 여수시, 사업 시행자인 다도오션시티㈜ 간 합의를 조건으로 국동항 개발 안건을 상정키로 했다.
그러나 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는 전혀 합의하지 않은 채 ‘사업 시행자와 수협간 문제해결 합의가 있었고, 지원시설 구역으로 지정되면 사업추진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거짓으로 보고, 결국 지정 승인을 받아냈다.
이러한 ‘거짓’ 승인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여수지역 각계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선 것이다.
여수시민단체 연대회의는 지난달 19일 성명서를 통해 “어민과 시민들의 의견수렴 없는 일방적인 박람회 지원시설 지정은 박람회 개최정신에 반한다”며 “정부와 여수시는 지원시설 지정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연대회의는 이어 “거친 바다와 싸우며 국동항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산인과 어민,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특히 여수시가 일방적으로 어항법에 의한 어항시설인 여수 국동다기능어항단지에 호텔과 아파트를 동시에 건립하는 해양관광문화복합단지 개발사업(이하 국동항 개발사업)을 추진해 지역사회에 파장과 후유증을 일으키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동항 개발로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여수지역 어민 천여명도 반발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국동 어항지역 사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어민 삶의 터전인 어항 단지에 공동주택을 짓겠다는 발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어민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여수시장 퇴진 범시민 운동도 전개할 것”이라고 강력 경고했다.
국동항 개발 사업철회와 관련 엠코 관계자는 “어민과 수협의 반대로 사업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다. 금주 내로 결과가 나올 것 같지만 우리로선 완전히 포기상태”라며 “조직위원회가 원만히 해결을 못해주는 부분도 없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어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회장님이 많은 고생을 하셨던 만큼 우리(엠코)도 여러모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면서도 “여수시민이 반대하는 사업을 할 순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박지영 기자] pjy0925@dailysun.co.kr
박지영 기자 pjy0925@da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