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회장 자식교육 방법 전격 공개 - 현대그룹 편
재벌회장 자식교육 방법 전격 공개 - 현대그룹 편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9-06-02 10:47
  • 승인 2009.06.02 10:47
  • 호수 788
  • 2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장부 스타일, 남다른 인생경험 전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유교 문화권에서 어머니의 이상형은 단연 맹자의 어머니 ‘맹모’를 꼽는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한 것은 물론, 공부를 중도 포기한 아들에게 베틀의 실을 끊어 경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기업인들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또 어떻게 자녀들을 키웠기에 한국 최고의 CEO로 만들었을까. 최근 출간된 <한국 최고 경영인을 길러낸 어머니의 힘>(한결미디어 펴냄)은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 한성실 여사를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을 길러낸 어머니들의 가르침을 연재할 예정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15년 11월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산골마을에서 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정봉식씨와 어머니 한성실 여사는 모두 부지런한 농부였으나 살림은 늘 쪼들렸다.

한성실 여사는 이름처럼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였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몸소 실천한 여인이었다. 어머니의 결연한 의지는 정주영 회장 마음속에서 세상사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는 용기와 성실함으로 자라났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교훈이었던 셈이다.


인생경험 전수

한성실 여사는 누구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밭을 매도 남보다 앞장서나가야 직성이 풀렸다. 활동적이고 인심도 후한 편이었으나 성격은 불같았다. 자식들 눈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근면과 억척스러움을 지닌 분으로 각인됐다.

다른 사람들이 닷새 걸리는 스무 자 한 필의 명주를 한성실 여사는 이틀에 짜냈을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다. 나름대로 목표를 정해 놓고 반드시 그것을 이뤄야 베틀에서 내려왔다.

잠시도 쉴 틈 없이 일을 달고 사는 어머니의 모습에게 정주영 회장은 인생을 어떻게 개척해나갈 것인가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정주영 회장에게 어머니의 일상은 자연스레 사업현장의 공기단축을 가르쳐주고,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의미를 체득하게 해주는 경영교육의 장이 되었다.

그 당시 모든 사람의 생활이 그러했듯이 한성실 여사의 삶도 매우 검소했다. 자식들의 밥그릇에 붙어 있는 밥풀까지도 한 알 한 알 떼어 먹었다. 행여 자식들이 배부르다는 말도 함부로 못하게 했다.

“세상에 배가 고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한스럽겠느냐. 하늘이 벌을 주실 소리다.”

이처럼 정주영 회장은 어려서부터 농부의 수고를 겪어봤고, 쌀 한 톨을 아끼는 어머니의 교육 속에서 자랐다. 정주영 회장이 커다란 부를 이룬 뒤에도 검소한 삶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것도 어머니의 이러한 산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밥 먹고 단잠 자고/ 우리 정주영이/ 동서남북 출입할 때/ 남의 눈에 잎이 되고/ 남의 눈에 꽃이 되어/ 걸음마다 열매 맺고/ 말끝마다 향기 나고/ 천인이 만인이/ 우러러보게 해주시옵소서…”.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어머니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한성실 여사의 자식사랑은 유난했다. 그중에서도 정주영 회장에 대한 정성은 더욱 더 두드러졌다.

정주영 회장에게 밥을 먹이면서, 길쌈을 매면서, 재우면서도 한성실 여사는 하루 종일 운을 붙여 중얼거렸다.

“나는 잘난 아들 정주영이를 낳아놨으니/ 산신님은 그저 내 아들 정주영이/ 돈을 낳게 해주시옵소서.”

큰아들을 애지중지하는 것이 오랜 관습이기는 하나 나머지 다섯 아들과 딸을 젖혀두고 오직 큰아들 잘되기만을 비는 어머니의 모습은 다른 자식들 눈에 편애로 비쳐졌다. 그러나 이 같은 한성실 여사의 지극한 바람은 훗날 정씨 가문을 큰아들 중심으로 똘똘 뭉칠 수 있게 했다.

정주영 회장의 남다른 효심도 어머니 한성실 여사에게서 나왔다. 한 여사는 정주영 회장에게 효성 지극한 아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중한 병에 걸리자 얼음장 속에서 잉어를 구해다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었다는 옛이야기였다. 정주영 회장에게 사람살이의 근본이 효에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주변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출발선이 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익혀주기 위한 교육이었다.

한편 한성실 여사는 1946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한국전쟁 와중에 중풍으로 드러눕게 됐다. 그러던 1953년 1월 피난지였던 부산에서 사랑하는 자식들 곁을 떠났다.

[박지영 기자] pjy0925@dailysun.co.kr

[자료제공:한결미디어]


박지영 기자 pjy0925@dalysu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