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속 챙기기에 눈먼 은행 “고객은 봉”
외국계 은행의 도덕불감증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출 고객 정보가 고스란히 유출된 것이다. 문제가 된 곳은 한국씨티은행, SC제일은행, HSBC, 외환은행 등이다. 이 사건을 접한 대출상담사들은 ‘터질 게 터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규직이 아닌 개인사업자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실적을 위해서 소비자 정보를 넘기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는 증언이다. 게다가 그 대출마저도 잇속 차리기에 집중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국계 은행 대출 실태를 점검해봤다.경기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외국계 은행의 얌체 행보가 눈총을 사고 있다. 공익적인 금융서비스는커녕 불법마저 개의치 않는 잇속 챙기기에 눈이 멀었다는 지적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17일 고객정보 400만건을 몰래 빼내 대출영업에 이용한 시중은행 대출상담사들을 대거 적발했다. 고객의 이름과 전화번호, 대출현황, 상환기일 등 신용정보를 유출해 불법거래한 혐의로 신모씨 등 대출상담사 4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해당 금융업체도 고객 개인정보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입건됐다. 여기에는 외국계 은행, 씨티은행을 비롯 SC제일은행, HSBC, 외환은행 등이 포함됐다. 제1금융권이 보유한 고객정보가 이처럼 대량으로 유출돼,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객정보 돌리기 관행
이 사건을 두고 일부 대출상담사 사이에서는 “터질 것이 터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국계 은행이 대출업무를 지나치게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4대 시중은행은 대출상담사를 고용하지 않거나 고용하더라도 100명 안팎 수준이다.
반면 외국계 은행은 대출상담사 수가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시중 은행에 비해 점포수가 압도적으로 모자랐던 외국계 은행이 대출상담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외국계 은행은 대출상담 관련, 위탁법인과 계약을 맺어 운용하는 탓에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질 수도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대출상담사 A씨는 “대출상담사 사이에서는 키맨(key-man)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며 “이 키맨의 역할은 자신이 담당하지 않는 대출을 대출상담사들끼리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업무를 맡은 대출상담사가 상담하는 소비자가 자신의 고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금융권 대출상담사에게 연결해주고 일정 수당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A씨는 또 “관리감독이 철저하게 이뤄진다면 이같은 영업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며 “워낙 인력이동이 잦기 때문에 자체적 데이터베이스(DB)를 얼마나 보유 하느냐는 점이 대출상담 업체의 경쟁력이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대출상담업체가 은행 DB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친분 있는 직원 통한 경로 등으로 입수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번에 적발된 외국계 은행들은 모두 “보험설계사의 은행의 DB에 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은행 자체 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에 따르면 은행 측의 주장과 다르게 은행 내부 정보로 보이는 자료도 상당수 거래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적발된 한 대출상담사의 이메일에는 ‘A은행 고객정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 돼 있다. 이 안에는 의사만 따로 모은 리스트와 다시 대출 받을 가능성이 큰 고객 리스트 등이 포함됐는데, 직업은 물론 연봉, 가족관계부터 대출내역까지 포함됐다.
상황이 이럼에도 외국계 은행에서는 ‘교육 강화’ 외에는 마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사실 대출상담사 전 인원을 감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외국계 은행의 대출영업이 잇속 차리기에 그친다는 점이다.
현재 SC제일은행, 씨티은행, 외환은행, HSBC 등 외국계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달 현재 32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2조2000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은행권 대출은 12조원 늘었다. 시중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는 와중에도 외국계은행은 오히려 줄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달 말 현재 시중은행이 저신용자 대출을 취급하거나 상품을 준비하는 것이 반해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 HSBC 등은 상품 출시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다.
서민 외면하는 얌체 상혼
그럼에도 이들은 각종 대출금리 및 각종 수수료는 인상해 수익 극대화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씨티은행은 지난 18일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의 기준금리를 최고 연 0.30%포인트 인상했다.
또 미화 5만달러를 초과하는 해외송금 수수료를 20달러에서 25달러로 올렸다. SC제일은행도 타 은행에서 자기 은행으로 송금하는 외화수수료를 지난달부터 신설, 1만원씩 받기 시작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중소기업, 서민 살리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펴내는 와중에도 외국계 은행은 제 배 채우기에만 혈안이 된 셈”이라며 “외국계 은행의 각성이 없다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