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은 옛말, 친구 같은 회장님 ‘인기 짱’

재벌 총수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최근 재벌 총수들은 무소불위 권위를 버리고 직원들과 만나 격 없이 어울리는 스킨십 경영에 나서고 있다. ‘상명하복’식의 지시와 명령에 익숙해 있던 직원들도 처음엔 당황하다 점차 익숙해지는 모양새다. 전통적 기업문화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업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재벌총수들의 스킨십 경영을 들여다봤다.
“예전에 회장님이 위인전에나 나오는 인물 같은 느낌이었다면 최근에는 집안의 가장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한 재벌그룹 직원의 말이다. 이 직원은 총수가 스킨십 경영을 선보이고 나서, 신뢰와 친근함이 생겼다고 말했다. 까마득한 상사라기보다는 믿고 의지되는 가장 같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 탈권위 열풍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벌그룹은 경직된 분위기가 특징이었다. 오너경영제 자체가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전제로 하는 탓이다. 그러다보니 일방적 지시가 주를 이뤘고 총수의 발언에 반대는커녕 반문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경직된 분위기의 단점 때문일까. 요즘 재벌총수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빌딩 최고층의 넓은 사무실에 은거(?)해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근엄한 회장님'이 권위의식을 버리고 ‘직원들 속으로’를 외치며 이들 곁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라면 ‘계급장’을 떼고 같이 동화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탈권위적인 분위기의 재벌 총수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최 회장은 간혹 야구장에 등장해 SK야구단의 경기를 응원한다. SK야구단 모자와 점퍼까지 입은 채 중앙 귀빈석이 아닌 일반석에 앉아 빨간 막대풍선을 들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
최 회장은 재벌그룹 총수 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축에 낀다. 그래서인지 그는 권위보다는 오히려 친근한 총수에 가깝다는 평이다. 특히 매년 초 신입사원들과 함께 대화의 장을 만들어 직접 챙긴다는 점도 최 회장 스킨십 경영의 일환이다.
이 자리에서는 “회장님 풍채가 좋으신데 팔씨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라는 요구가 불쑥 튀어나와 졸지에 팔씨름 경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최 회장도 신입사원들에게 싸이월드의 사이버머니 도토리를 100개씩 선물해 신세대와 눈높이를 맞췄다. 최근 최 회장은 계열사를 직접 방문하면서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느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스킨십 경영으로 이름이 높다. 박 회장은 매달 열리는 맥주파티에 참석해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모든 테이블을 일일이 돌면서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자리에서 직원들의 이름, 기수, 입사연도를 기억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신년 산행이나 음악회 등 회사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박 회장은 예의만 지킨다는 전제 하에 상하 간에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고, 회사 정책에 대해 언제든 부담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편이다.
이재현 CJ 회장의 탈권위 행보도 돋보인다. 그는 좀처럼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책상에 걸터앉아 얘기를 하고, 직원들과 남산에 올라 자유토론도 한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신입사원들과 함께 연극도 하고 춤도 춘다고 한다. 때문에 재벌 총수 같지 않다는 평가마저 듣는다.
이런 영향으로 CJ는 복장도 자유롭다. 1999년부터 국내 대기업에서 최초로 자율복장제를 실시하고 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며 청바지를 입고와도 된다. CJ그룹에서 직위 호칭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회장이든 사장이든 부장이든 모두 ‘~님’으로 부른다. 예컨대 이 회장의 여비서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이 회장을 ‘이재현님’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젊은 재벌 총수들만 스킨십 경영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친근한 재벌 총수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구 회장은 실무와 관련해 ‘CEO와는 멀리, 직원들과는 가깝게’를 모토로 삼는다.
실제 구 회장은 계열사 CEO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한다. CEO 대부분은 매년 6월과 11월에 각각 한 번씩 이뤄지는 컨센서스 미팅에서만 구 회장을 독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직원들과는 스스럼없이 마주한다. 특히 현장을 방문해서 직원들과 식사를 하기를 즐긴다.
긍정적 효과 있을 듯
경영 아이콘으로 부상하는 스킨십 경영이 주목받는 것은 그 효과 때문이다. 재벌 총수들의 스킨십 경영이 만들어내는 동질감은 활기차고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데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은 어느 한 사람의 스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단독 콘서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소임을 잘 수행할 때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재계 한 전문가는 “재벌가 로열패밀리와 일반 직원들 사이에 교감의 폭을 넓혀 가려는 시도로 보인다”면서 “이들의 스킨십 경영이 구성원들에게 새 바람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측면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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