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한테 생선 맡겨 사기 당하다”

최근 광주 롯데백화점 매장 직원이 고객의 신용카드를 도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매장 직원이 단골 소비자가 맡겨둔 신용카드를 이용해 명품을 구입하고 현금서비스를 받아 잠적해버린 것. 피해액만 수억 원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은 해당 소비자와 직원간의 문제일 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이 같은 사건은 일부 소비자와 직원간의 문제일까. 취재 결과 단골 고객의 신용카드를 맡아두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영업행태는 오래전부터 유지돼 왔음이 확인됐다. 백화점이 소비자 카드 유용을 방조하는 실태를 조명했다.
백화점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정찰제다. 일반 판매점과 다르게 다소 고가이긴 하지만 깎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정작 일부 매장에서 소비자의 카드를 통해 편법 할인을 벌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단골 고객의 신용카드를 매장에 보관하면서 물품을 결제해 편법 할인을 이끌어 냈다. 문제는 이 같은 편법이 횡령 사고 등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고는 롯데백화점에서만 지난해 말과 올 4월에 두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의 핵심 내용은 하나같이 유사하다. 소비자의 신용카드를 백화점 매장에서 보관했고, 매장 직원이 이를 일방적으로 사용했다.
고객 카드 매장에 있는 이유
도대체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매장에 맡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이런 사례는 적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롯데백화점 MVG(최우수고객)인 소비자 A씨도 매장에 카드를 맡겼다. 매장에서 자신의 카드를 결제한 뒤 현금을 송금해주기 때문에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반면 이익은 많다. 무엇보다 그의 명의로 구매량이 늘어나면서 구매실적이 누적된다는 점이 가장 짭짤하다. 이는 소비자 A씨가 MVG 등급으로 오르는 데도 한 몫 할 수 있었다. 더불어 신용카드 포인트 적립이 늘어나면서 부수입까지 늘어났다.
MGV가 되면 백화점 주차장 발렛파킹이 가능하며 롯데카드 5% 에누리 상시혜택, MVG전용라운지 상시 이용, 명절·기념일 감사품 증정 혜택 등이 제공된다. 이른바 상위 1% 고객에 대한 롯데백화점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A씨가 누리는 이같은 혜택은 사실 공짜가 아니다. 매장에서 소비자 A씨의 카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매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백화점 매장에서 매상을 올리기 위한 편법 할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에 입주한 한 매장 관계자에 따르면 편법 할인은 어렵지 않다. 롯데카드를 통해 5%의 할인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해당 매장 메니저가 백화점과 합의해 할인가 10%를 더한다. 도합 15% 이상의 할인 적용이 가능한 셈이다. 다만 조건은 있다. 매장에서 맡아두는 카드로 결제해야 되기 때문에 현찰로 결제해야만 한다.
이 매장 관계자는 “백화점 케셔에게 현금을 주면, 백화점에서 신용카드 결제된 영수증을 소비자에게 발행한다”며 “이 금액을 본사에 입금하고, 다시 해당 직원에게 입금해서 카드값을 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실 소비자의 신용카드를 보유하는 매장들은 적지 않다”면서 “고가의 명품 매장 같은 경우에는 이런 식의 할인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백화점이 편법할인을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런 현금 운용은 롯데백화점 경리과에서 직접 관리를 해서 입금 한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증언이다.
문제는 이런 편법할인이 사고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최근 광주 백화점 사건에서도 그랬듯 백화점은 책임소제에서 완전히 관계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롯데 백화점 관계자는 광주 롯데백화점 사건과 관련 “신용카드라는 것이 원래 맡기면 안 되는 것 아니냐”라면서 “백화점에서 해당 직원을 고용한 게 아닌 만큼 백화점의 법적 책임은 없다”고 밝혔다. 카드를 맡기는 소비자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는 해당 직원에 대한 고발하지도 않았고, 구체적인 피해 내역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소비자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알면서도 쉬쉬하는 관행
문제는 이런 상황이 유독 롯데백화점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명품 브랜드 관계자는 “사실 백화점 매장 직원이 소비자 카드를 유용하는 사건은 종종 있어왔다”면서 “대부분의 소비자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길 원치 않고, 백화점이나 매장에서 쉬쉬하기 때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백화점이 정찰제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해결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매장 관계자는 “매출이 떨어지면 백화점에서 퇴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장은 과도한 할인을 해서라도 소비자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 과정에서 감당 못할 출혈 대신 이같은 편법을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백화점 정찰제도 유명무실한 셈이다. 무엇보다 매장의 편법 할인 과정에 소비자의 신용카드를 끌어들이면서 위험요소는 커져가고만 있다. 그럼에도 백화점 측은 이런 매장의 행동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직원 할인가로 할인되는 것은 정찰제와 상관없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면서 시스템상 “직원 할인과 카드할인은 같이 안되는 걸로 알고있다”고 일축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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