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신세계-현대, 문화마케팅 ‘전쟁’

국내 백화점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 그리고 현대가 항도 부산에서 질펀한 ‘문화마케팅’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업계 3위의 신세계백화점이 1위 롯데백화점의 아성인 부산에서 국내 최대의 복합쇼핑몰 ‘신세계 센텀시티점’을 개점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자 그 파편이 엉뚱하게 현대로 번져버린 것. 신세계의 고품격 아카데미가 고객들로부터 인기를 끌자 부랴부랴 신세계의 문화센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한 현대의 ‘조급함’이 ‘고객제일의 명품백화점’ 이란 이미지에 먹칠을 해버린 것이다.
돈 안되면 폐쇄
지난 4월25일 토요일 오후, 현대백화점 부산점의 스포츠센터 회원들이 꽹과리와 북 그리고 ‘수영장 폐쇄 적극 반대’ 피켓을 동원해 백화점 주변을 맴돌며 시위를 벌였다. 일방적인 스포츠센터 폐쇄에 대한 자발적인 항의였다. 10여 년 동안 대부분이 우수 고객이었던 이들은 “3월31일까지도 회원 가입을 시켰는데 어떻게 그 다음날 ‘폐쇄’를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있느냐”며 말로만 떠드는 ‘고객제일’이란 상술에 배신감을 토로했다.
60대 후반의 한 회원은 “나이 제한도 없고, 수영장의 시설이 좋아 애용하며 우수고객으로 대접받아 왔는데 뒤통수를 맞은 심정”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 2007년 1월3일 취임 일성으로 “고급 백화점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며 철저히 고객을 위한 맞춤 백화점이 되겠다”고 한 이기용 점장의 공허한 말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대의 한 관계자는 “수영장이 있던 공간에 기존의 8층 문화센터를 이전하여 전시회, 고객 발표회 등 다양한 문화이벤트 진행이 가능한 이벤트홀, 키즈 전용 강의실, 쿠킹 전용 강의실을 신설하여 보다 더 다양한 문화체험 기회를 확대하고 유아휴게실, 클럽라운지, 여행사 등 고객 서비스 공간과 휴식공간을 확대하여 최고의 시설로 고객에게 제공할 것이다”며 “수영장 폐장은 부산점을 이용하는 수많은 고객의 의견을 반영해 다수 고객의 편의를 확대하기 위함과 한정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반영, 문화 콘텐츠를 강화하여 고객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고객 편의 공간을 확대하는데 중점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수영장 폐장과 문화센터 리뉴얼 등의 부산점 진행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점에서 기획하고 진행하지만 최종 결정은 경영진에서 한다”고 밝혀 본사차원에서 밀어부쳐 벌어진 사단임을 암시했다. 이들 750여 스포츠센터회원들에게 물어준 위약금만도 1억 7000여만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의 문화센터 때문
현대의 이같은 조급증을 부추긴 것은 바로 ‘전국 백화점업계 1위 점으로 키우겠다’는 신세계의 문화센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 게다가 올해 말로 오픈할 롯데의 광복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
‘문화마케팅’ 전쟁을 촉발시킨 주인공인 신세계 아카데미. 3300㎡(1000평) 규모에 최고의 시설을 갖춘 문화센터를 활용한 서비스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소수의 특별한 회원들을 위한 커리큘럼과 각 분야의 정상급 강사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인문, 사회, 예술뿐만 아니라 쿠킹, 육아, 교육 에코에 이르기까지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친 다양한 컨텐츠를 구사하고 있다. 특히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역원과 함께하는 서양문명 탐방’ 강좌와 미술과 영화의 만남 강좌는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3월3일 오픈한 신세계 센텀시티점은 세계 최초로 쇼핑과 온천이 결합된 ‘동북아 랜드마크’를 표방하고 있다.
연면적 29만3909㎡(8만8907평), 매장면적 12만6447㎡, 지하 4층, 지상 14층의 초대형 복합쇼핑몰이다. 국내 최대 규모 백화점(8만3042㎡)에, 휴양형 온천시설 ‘스파랜드’와 사계절 실내 아이스링크, 비거리 90야드·60타석의 천장 개폐형 실내 골프연습장, 국내 최대 규모(27m×11.5m) 스크린을 갖춘 씨지브이(CGV) 영화관, 교보문고, 회원제로 운영되는 ‘트리니티 스포츠클럽&스파’ 등 6대 핵심 시설(4만3405㎡)을 갖춰 관광상품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롯데의 통합마케팅 전략
신세계로 인한 센텀시티 상권구축으로 ‘윈윈’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롯데도 지난달부터 부산지역 백화점을 총괄하는 ‘부산지역장’이란 직책을 새로 만들고, 부산의 3개 점포 연계서비스를 통한 통합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등 신세계와 한판 전쟁을 벌이고 있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서면점, 동래점, 센텀시티점을 연계한 다점포 통합마케팅으로 고객들에게 혜택을 늘릴 계획”이라며 “고객층 분석을 통한 개인 맞춤형 마케팅을 실시하고 고객의 취향에 따른 이벤트 진행으로 만족도를 한층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롯데는 신세계 센텀시티가 국내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자, 올 12월 개장 예정인 롯데백화점 광복점을 대역전의 기회로 삼아 반격을 노리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광복점도 신세계 센텀시티처럼 복합쇼핑몰로 완공되면 신세계 센텀시티와 비슷한 규모가 될 것”이라며, “광복점이 완공되면 부산에 많은 매장을 갖고 있는 롯데 쪽으로 분위기가 쏠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센터 회원과의 소통부재로 데미지를 입었다”고 시인한 뒤 “750명도 중요하지만 연간 3만2000여명의 문화센터 고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문화센터의 효시가 원래 현대”라며 “오랜 전통과 경험 속에 축적된 노하우로 고품격 문화센터로 거듭나 역전당한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 ‘쿠킹’에서부터 ‘댄스와 영화 그리고 문학’에 이르기까지 사계의 권위자를 초빙한 이들 3사의 ‘문화마케팅’ 전쟁이 “부산의 문화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며 부산 시민들은 싸움 삼매경에 푹 빠져있다.
정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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