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냐 금연이냐, 그것이 문제”

최근 재계에 금연열풍이 한창이다. 금연 분위기는 수년 전부터 조성됐지만 최근 금연 움직임은 각별하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취임 이후 “전직원 금연이 불만이면 소송을 제기해라”라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일부 기업에서 ‘끊거나 아니면 퇴사하거나’의 문화가 생겨나는 것. 비교적 금연 강도가 적은 기업들도 금연펀드를 통해 포상을 주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재계에 유행처럼 번지는 금연열풍을 짚어봤다.
“담배 피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최근 기자가 만난 한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금연 열풍이 재계 구석구석 퍼져나가면서 애연가의 고초가 눈에 띄게 늘었다. 금연 건물이 대다수인 건 차치하더라도 실외에서 조차 흡연을 금지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혈액검사를 통해 흡연자를 가려내겠다는 기업까지 나타났다.
다소 과격한 방법이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환영의 목소리도 들린다. 본인 의지로 끊기가 쉽지 않은 만큼 회사의 정책이 금연에 큰 공헌하리라는 평가다.
실제 담배의 폐해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다. 본인과 주변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주머니를 털어가는 담배값까지, 득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박형
퇴사하던지 담배 끊던지
금연열풍 중심에 놓인 곳은 바로 포스코다. 포스코의 금연운동은 지난 2월 취임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31일 “혈액검사를 해서라도 금연 여부를 가려내겠다”며 “담배 피우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가지 못한다”고 ‘전 직원 금연’을 선언했다. 포스코는 간부 직원은 4월 말까지, 일반 직원들은 연말까지 서서히 유도해 직원 6000여명이 모두 금연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만약 금연을 하지 못한다면 인사상 불이익도 가해질 예정이다. 포스코 일부에서는 “너무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정 회장은 이미 ‘퇴사’, ‘소송’ 등까지 언급하며 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는 상황이다. 정 회장은 이미 지난 2003년 광양제철소 부소장 시절, ‘금연 제철소’를 선언할 정도로 금연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다.
강도 높은 금연 정책에는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빠지지 않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직원 금연은 고 박성용 명예회장 시절부터 시작됐다. 1986년 임직원이 담배값에 해당하는 푼돈을 모아 ‘금호건강복지기금’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금연운동을 벌인 것이다.
박성용 회장은 “담배를 피울 권리는 개인의 자유지만 흡연자를 승진시키지 않는 것도 나의 자유”라며 임원 승진 항목에 금연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런 금연 풍조는 박삼구 현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취임이후 본격적으로 정착됐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입사와 동시에 금연서약을 해야 하며, 금연을 실천한 임직원에게 가족의 확인서명이 담긴 서약서를 받아오게 하고 있다. 집에는 ‘금연 진척도’를 붙여야만 한다. 사옥은 물론 사옥 밖에서도 담배 필 공간이 없다.
당근형
끊으면 짭짤한 포상금
채찍이 안 되면 당근이라는 말처럼 기업에서도 금연에 대해 태도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금연펀드다.
하나은행에서는 지난해부터 실시된 ‘보상형’ 금연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주로 펀드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데, 금연을 선언한 직원이 일정 금액을 펀드로 내면 회사가 1년 뒤 금연 여부를 판정해 금연 성공자에게 돈을 불려 돌려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어설프게 금연을 위장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펀드 만기가 되면 신청자의 모발을 채취해 국립암센터에서 니코틴 함량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금연펀드에 가입한 직원 82명 중 39명이 성공했다.
그밖에 굿모닝신한증권, 대구은행 등의 금융권도 금연펀드를 조성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례 때문일까. 제조업체에서도 금연펀드 조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상그룹을 비롯, 아모레퍼시픽, SK텔레콤 등이 금연펀드를 시행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4월 1일 CJ그룹의 계열사 CJ헬로비전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금연 펀드 등 다양한 금연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결정해 시선을 끌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연펀드는 회사 측에서 큰 무리수를 두지 않고도 직원들끼리 펀드가입으로 적절한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회사 측이 펀드를 지원하면서 금연에 성공한다면 200% 이상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반면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는 ‘무조건 금연’이라는 강요보단 금연 및 건강관리를 도와주고 있어 시선을 끈다. 어디까지나 건강관리 차원에서 자발적 금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건강관리형
직원 건강관리 차원에서
한화그룹 계열사 한화석유화학은 지난해부터 임직원 건강 챙기기에 돌입했다. 사내 곳곳에 신체 발달 지수 측정기를 구비해, 절주와 금주 등의 목표를 선정해주는 방식이다.
직원들의 신체 발달 지수 측정 결과를 총무팀에 제출토록 해, 이를 토대로 팀별, 개인별 신체 발달치수를 측정, 포상하게 된다. 더불어 몸 상태에 따라 의료기관을 통해 처방된 체력관리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SK C&C는 건강 증진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금연 집중 지원제’를 실시하고 있다.
‘금연 집중지원제’는 건강검진 유소견자에 대한 1대1 맞춤형 지원을 강화한 것이다. 프로그램 참가 직원의 담배 피우는 습관 등에 대한 의존도 검사는 물론 폐에 축적된 일산화탄소 측정 등의 진단을 통해 니코틴 패치, 껌, 사탕 등을 처방을 내린다.
이같은 재계의 금연 열풍은 각양각색이지만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금연제도를 시행중인 업계 한 관계자는 “금연은 회사 차원에서 깨끗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줄 수 있고 직원들의 건강관리에서도 긍정적이 있다”면서 “흡연을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반발도 있지만 금연하고 나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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