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전조는 초고층빌딩에서 시작된다”

최근 재계에 초고층빌딩 열풍이 불고 있다. 롯데그룹의 제2롯데월드를 시작으로 초고층빌딩 건설에 대한 움직임이 이는 것. 상암동 서울라이트, 용산 드림타워를 비롯해 지난 2월에는 현대·기아자동차도 서울 뚝섬에 110층짜리 빌딩 사업계획서를 성동구청에 제출했다. 이로써 서울에 건설되는 초고층빌딩은 총 네 곳에 이른다. 하지만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적잖은 우려가 감돌고 있다. 초고층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경제위기가 일어났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심지어 초고층빌딩을 건설했던 이들은 뒤끝(?)이 안 좋았다는 점에서 ‘바빌론의 저주’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재계에 불고 있는 초고층빌딩 괴담을 추적해봤다.
하늘에 더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이 바로 이같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경우다. 인류가 최초로 세운 이 고층건물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했지만 결국 천벌을 받아 무너지고 만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경우로 비유되는 대목이다. 이 해묵은 신화가 최근 재계에 다시 거론되고 있어 시선을 끈다. 500m 넘는 초고층빌딩이 들어설 때마다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는 징크스 ‘바빌론의 저주’가 나도는 것이다.
초고층빌딩의 이상한 징크스
사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초고층빌딩이라고 부를만한 건물은 드물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3차 G동(69층, 261m)이다. 그 뒤를 이어 목동 하이페리온(69층, 256m), 여의도 63시티(63층, 249m)이 각각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빌딩 순위는 조만간 크게 바뀔 예정이다. 초고층빌딩을 향한 재계의 열망이 뜨거운 탓이다. 이미 롯데그룹의 제2롯데월드(112층)가 사업승인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편 지난 2월 현대·기아자동차 역시 뚝섬에 110층 가칭 GBC(Global Business Centre)타워를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또 이미 서울 마포구 상암동DMC지구의 서울라이트(133층)와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드림타워(150층)가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상황이다. 서울에서만 100층 이상의 초고층빌딩이 4곳에 이르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적잖은 우려가 거론되고 있다. 이른바 ‘바빌론의 저주’가 그것이다. 초고층빌딩이 결국 경제악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 ‘바빌론의 저주’의 핵심이다. 이같은 우려를 단순한 괴담으로 치부할 것은 아니다. 이미 도이치뱅크의 증권에널리스트 앤드류 로렌스는 1999년 ‘초고층빌딩과 경제위기’라는 연구보고서를 제출 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보고서에서 “초고층빌딩이 완공될 시점에 경기위기가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전세계에서 지난 100년 동안 몇 차례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는데, 이 모두가 세계 1위의 초고층빌딩이 세워진 뒤에 발생했었다는 것이다. 단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그 시기와 사례가 석연치 않다.
1929년과 1930년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각각 뉴욕에 들어선 시점에 공교롭게도 대공황이 발생했다.
1970년대 중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시카고 시어스타워가 세계 최고 빌딩으로 올라선 이후 오일 쇼크가 발생, 미국 경제는 초유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199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페트로나스타워(451.9m)가 시어스타워의 기록을 경신하자 아시아에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 현 세계 최고층 빌딩인 타이베이금융센터가 완공된 2004년에 대만과 중국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쯤 되자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초고층빌딩 지수’로 각 나라의 경재불황 시기를 예견하는 웃지 못 할 경우까지 생겼다.
바빌론의 저주 때문일까. 거시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초고층빌딩이 무사할리도 없다. 해외의 경우 초고층빌딩을 설립한 회사들은 한번쯤 위기를 겪었다. 런던 카나리워프에 유럽 최고층 빌딩을 지은 부동산회사 O&Y는 부도를 냈고,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20년간 개발회사에 막대한 손해 안겨줬다. 세계 최고층빌딩 버즈두바이를 짓고 있는 에마르(Emaar)도 미국 자회사가 부도를 내는 등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 일본 오사카의 초고층빌딩 코스모타워도 임대가 되지 않아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지 오래다.
국내 초고층빌딩을 향한 우려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미 63시티를 지은 대한생명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경영위기로 인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바 있다. 행여나 해당 기업을 향해 ‘바빌론의 저주’가 내릴까 우려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바빌론의 저주’가 단순히 징크스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100층 이상의 건물을 지으려면 각종 첨단기술에 특수 자재가 사용돼 건축비가 2~3배 증가한다.
또 초고층빌딩이 될수록 보통 60대가 넘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사용하지 못하는 공간도 무시할 수 없다. 유지 관리비도 비싸다 보니 임대료는 높아지기 마련, 완공 후 몇 년간 텅 비는 경우도 있다.
황금알 낳는 닭은 못돼
초고층빌딩이라는 상징성은 분명 큰 매력이지만 몸값에 걸맞는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특히 초고층빌딩 완공시기가 2015년 이후로 몰려있어 공급과잉 우려가 심각하다는 점도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이유다. 그밖에 교통문제, 환경오염, 재해방지 대책 등 각종 논란이 꼬리처럼 따라 붙고 있다.
과연 국내기업들은 ‘바빌론의 저주’를 벗어날 수 있을까. 업계 한 관계자는 “각종 행정절차도 쉽지 않고 교통 평가 등 수많은 과제가 있지만 고층빌딩이라고 해서 무조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 풍수지리 전문가는 “모든 기는 땅으로부터 비롯되는데, 땅에서 멀어지는 고층빌딩일수록 기운을 받기 힘들어진다”면서 “고층빌딩이 좋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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