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마다 열풍처럼 부는 잡셰어링의 진실

이명박 정부의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30대 기업이 대졸 신입 임금을 최대 28% 삭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임금 삭감을 통해 일자리를 더욱 창출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노동계 및 시민단체에서는 정작 임금을 깎아야 할 고임금자는 내버려 둔 채로 사회적 약자인 대졸신입의 월급에 손을 댔다고 반발하고 있다. 잡셰어링을 두고 벌어지는 재계 논란을 짚어봤다.
최근 경기 악화로 청년 백수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악화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실업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제시한 해결 방안이 바로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이다. 근로자 임금을 삭감해서 일자리 나누자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 잡셰어링은 그 방법과 효과를 두고 시작부터 적잖은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고통을 분담할 대상이 바로 대졸 초임이라는 점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국내 30대 그룹은 지난 2월 26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를 열고 기업별로 대졸 초임이 2600만원을 넘으면 28%의 대졸까지 깎기로 했다.
대졸 초임이 2600~3100만원인 기업은 0~7%를 깎고 3100만~3700만원인 기업은 7~14%, 3700만원 이상인 기업들은 14~28%를 삭감하게 됐다. 2600만원 이하의 기업도 전반적으로 하향 조정할 계획이다.
초임 삭감에 배부른 사람들도
이같은 삭감조치에 시민단체, 노동부 등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대졸 신입 연봉 삭감으로 배 불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단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올해도 어김없이 ‘배당금 잔치’를 벌인 재벌가 오너들이다. 재계관련 사이트〈재벌닷컴〉에 따르면 현금배당을 실시한 573개 12월 결산 상장사 공시를 분석한 결과 재벌그룹들은 올해도 배당금 잔치를 벌였다.
100억원 이상 현금 배당을 받은 대주주만해도 7명이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는 410억원을 받아가 재계 배당금 순위 1위로 올라섰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271억원으로 2위, 180억원을 받은 이재현 CJ 회장이 3위로 올랐다. 그 뒤로 148억원을 받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148억원, 구본무 LG그룹회장이 136억원, 정몽진 KCC 회장이 112억원으로 4, 5, 6위를 차지했다. 끝으로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은 100억원을 배당받아 7위를 차지했다.
기업의 수익이 주주의 이익이 되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들의 배당금만 줄여도 대졸 초임의 급여를 삭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기업이 수익을 재투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배만 채우고 있다”며 “위기가 닥치자 배당 삭감, 중지 결정을 내리기는 커녕 앞다퉈서 임금 삭감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해만 하더라도 국내 주요 상장기업들은 무려 10조6000억원을 현금배당했다. 그 가운데 5조원이 외국인에게 돌아갔다. 1억원 이상 현금 배당을 받은 사람만 153명이었고 100억원 이상 현금배당을 받은 재벌총수들도 8명이나 됐다. 과도한 배당으로 인해 경제위기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배당금을 대폭 줄여가며 위기 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실적악화로 어느 정도 예견되기는 했지만 그 규모는 국내보다 훨씬 크다. 지난해 4분기만 해도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기업 가운데 무려 288개 기업이 배당을 중지하거나 줄였다. 임금삭감, 경비절감에 앞서 주주도 희생에 동참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기업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아직 미비하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FN)가이드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12월 결산 주요 기업 277곳의 2008년도분 배당성향은 17.9%로 전년 20.7%에 견줘 2.8%포인트 낮아졌을 뿐이다. 배당성향은 기업의 당기순이익 가운데 전체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결국 대졸자 초임을 삭감하는 것조차도 고스란히 주주의 이익으로 돌아갈 가능성까지 있다. 인건비가 절감된 생산자금은 고스란히 기업의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만만한게 대졸 초임(?)
대기업 임원 고액연봉까지 감안하면 잡셰어링의 취지는 더욱 무색해진다.
지난해 삼성전자 사내이사의 평균연봉이 5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삼성전자는 퇴진한 이사 5명에 대한 퇴직금 총액과 지난해 이사 보수의 총합이 과년도 예산 책정에서 미리 정해 놓은 보수총액 350억원을 넘어서면서 올해 보수총액 한도를 200억원 늘려 550억원으로 책정, 퇴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및 SK는 지난해 이사보수로 100억원을 잡아뒀다. 잡셰어링을 주도하는 공기업도 고액 연봉은 마찬가지다. 대한주택보중 임원진은 평균연봉이 2억1580만원에 달하며, 한국철도공사 임원진의 연봉도 2억원에 이른다. 고액연봉에 대한 절감은 없이 대졸 신입의 임금만 깎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경우에는 고위임원들의 월급 반납이 이어지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는 지난 1998년부터 연봉 1달러를 고수하고 있으며, 구글의 에릭 슈미트 CEO도 4년째 1달러만 연봉으로 챙기고 있다. 탄탄한 실적을 자랑하는 에너지업체들인 킨더모건의 리처드 킨더 CEO와 듀크에너지의 제임스 로저스 CEO, 금융서비스업체인 캐피털원의 리차드 페어뱅크 CEO도 단돈 1달러만 받았다. 야후의 테리 세멜 CEO는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밝혔고, 포드자동차의 윌리엄 포드 주니어는 그마저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회사 경영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이쯤 되자 세간에서는 “왜 대졸 초임만?”이라는 목소리가 증폭되고 있다. 아직 사회에 진입하지도 않은 대졸자의 얇은 지갑을 털어 고통분담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경제단체는 국내 대졸자의 초임이 지나치게 높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물가 상승을 고려한 지난 10년(1997~2007년)간 실질 대졸 초임 상승률을 일본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25.9% 상승해 일본에 비해 15.2배에 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제일 만만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입을 모은다. 기존 노동자의 경우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서는 회사 측과 임단협상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서 삭감을 주도한다면 노동조합의 극심한 반발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졸 신입은 이야기가 다르다. 기업이 주도하는 대졸 신입 급여 조정은 구직자가 반발하기도 쉽지 않고, 노조의 문제도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26일 논평을 통해 “대졸 신입사원들에게 고통분담의 짐을 지우려는 기업들의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또 “대졸초임삭감은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신입사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부당한 차별이고 기존 임금체계와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조치”라며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다면 기업들의 고통분담 요구는 사회적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삭감만 있고 목표, 계획 없어
앞으로도 잡셰어링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잡셰어링이 어떤 형태로 운용될지 불명확한 탓이다.
전경련이 잡셰어링 방안을 발표하자 한 기업 임원은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나는 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는데 어떻게 잡 셰어링라고 할 수 있냐”라고 물었다. 실제 이날 전경련은 임금 삭감안에 대해서는 연봉 액수별로 삭감폭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하면서도 정작 이로 인해 생길 재원의 규모와 늘어나는 일자리 수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지 못했다. 심지어 구체적인 목표치도 불분명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잡셰어링이 성급하게 진행되는 감이 있다”면서 “초임을 깎아서 일자리를 얼마나 만들지도 의문이고 그 일자리가 기업에 필요할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주요그룹사들은 잡셰어링에 착수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최근 임원들이 자진 반납한 연봉 10%와 성과급 중 일부를 활용해 인턴사원 300명을 채용키로 했다. 삼성도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평균 10~15% 삭감하기로 했다. LG그룹도 대졸 초임을 5~15% 삭감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SK도 전체 임원의 연봉 자진 반납분 중 100억원 규모를 재원으로 협력업체에 1800명의 인턴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아직 대다수 기업들은 입장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조만간 정부 잡셰어링에 동참하리라는 관측이다.
전경련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채용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그룹들이 못을 박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며 “월급을 줄여도 기업들이 뽑아야 구직자들에게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대졸자 초임 삭감이 기회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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