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기 주목받는 해결사 배드뱅크 “우리도 한번?”
캠코가 금융권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내 은행 부실채권 보유비율이 1.11%로 1%선을 넘어서면서 부실채권 정리의 필요성이 커진 탓이다. 이에 따라 부실을 처리하는 한국판 배드뱅크인 캠코의 역할에 시선이 모이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민간 캠코의 등장 가능성을 점친다. 금융권에서 민간 캠코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관측 되는 것. 만약 그렇게 된다면 캠코로서는 경쟁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이다. 구조조정기 해결사라 불리는 캠코에 금융계 시선이 모이는 이유를 짚어봤다.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공적자금을 조성해 금융회사들이 갖고 있는 부실채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시중은행들은 4월 말부터 44개 그룹의 재무상태를 평가해 일정 기준에 못 미치는 그룹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른바 해결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11년만에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배경을 둘러싸고 캠코에 대한 우려도 일고 있다. 금융권에서 민간 캠코 설립 의지를 내비치는 까닭이다.
외환위기 부활의 주역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기업 구조조정 추진 방향과 전략’을 보고했다. 이에 따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 정부 보증채권으로 조달하는 공적자금인 구조조정기금을 캠코 내부에 만들어 은행의 부실채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구조조정 목적의 기금을 만드는 것은 1997년 11월 부실채권정리기금 신설 이후 처음으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캠코는 저축은행과 시중은행의 부실해진 부동산 프로젝트(PF) 대출은 물론 가계·기업에 물려 있는 부실 채권도 인수한다. 은행들은 금융권 대출이 많은 44개 대기업에 대해 4월 말 재무구조를 평가한 뒤 불합격된 곳에 대해선 자산 매각과 계열사 정리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운임 하락으로 어려움에 처한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본격화된다. 정부는 캠코의 부실 채권 인수 여력을 높이기 위해 6000억원인 캠코의 자본금을 3조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캠코의 활약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에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당시 한국은 대기업의 부도가 속출하고 부실채권이 난무하는 등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정부가 부실채권 처리 전담 기구인 캠코를 설립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당시 캠코는 채권 발행과 금융회사 출연금으로 조성한 부실채권정리기금 39조4000억원을 운영하면서 111조원에 이르는 부실채권을 인수했다. 대기업 부도로 연쇄 부도에 휘청이던 은행들이 캠코의 부실정리 덕에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일까. ‘민간 캠코’의 재등장에 대한 금융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15일 금융당국과 은행장의 워크숍에 참석했던 은행 고위 관계자는 “배드뱅크 설립안을 회의에서 제안했다”며 “아직 아이디어 차원이긴 하지만 보유 채권을 현물 출자하거나 자본확충펀드를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캠코입장에서 민간 캠코의 설립을 반대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민간 캠코가 들어선 이후 캠코의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금융가의 중론이다. 캠코가 기금을 조성해 부실채권을 사려 해도 은행들이 출자한 민간 캠코가 생기면 부실채권은 이곳으로 먼저 넘겨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상황이 이렇다면 캠코는 그야말로 회생 가능성 없이 뼈만 남은 채권만 인수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철휘 캠코 사장은 몇몇 행장들과 만나 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을 캠코에 적극적으로 넘기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실제 국내 은행이 보유한 고정이하(3개월 이상 연체) 여신인 부실채권 잔액은 작년 12월 말 14조3000억원으로, 1년 전 7조7000억원의 배로 뛰었다. 하지만 은행권의 대답은 의외였다. 캠코에 부실채권을 넘기는 것보다 스스로 부실자산을 유동화시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편이 수익률 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제 몇몇 은행들은 ABS를 발행하며 부실채권을 유동화시켜 캠코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올해 경기 부진으로 부실채권이 급증해 부실정리 역할이 부각되는 데다 부실채권 헐값 매각 논란을 없애기 위한 금융권의 포석으로 풀이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민간 캠코가 생긴다면 캠코는 경쟁 입찰을 통해 부실채권을 인수하게 돼 적어도 예전과 같이 튼실한 부실채권을 독점적인 지위에 따라 인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기의 해결사
하지만 민간 캠코 설립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은행들이 현재 대규모 자금을 출자할 상황이 아닌 탓에 민간 배드뱅크가 설립될 가능성이 아직까지는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춘 캠코가 있는 상황에서 추가 설립할 필요 있는지 의문”이라며 “은행이 보유한 기업 부실채권의 가격 산정 방식에 대해 은행 간 이해관계도 엇갈릴 수 있어 설립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당분간은 캠코의 역할에 금융권의 표정이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캠코는 정부의 우회적 지원사격을 통해 부실채권을 사들일 계획이다. 특히 캠코는 올해 경기침체로 금융권 부실채권이 최대 70조원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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