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기존의 남경필, 원희룡 등 개혁적 소장파 의원과 합세하여 지금 한나라당을 전면적인 변화의 흐름으로 이끌고 있다. 우선 기존의 맹목적인 ‘수구 보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을 ‘무조건적 퍼주기’라고 맹비난했던 것과는 달리 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나아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에도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고 있다. 이번 6·15 행사에 박근혜 대표가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게다가 박근혜 대표는 소장파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렴하여 노무현 대통령조차 반대한 아파트 원가 공개에도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 한나라당이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대표부터 일반 의원까지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의 일부 개혁 저항 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표부터 변화와 개혁에 발벗고 나서는 이유에 대해 한 소장파 의원은 “간단하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한나라당에 퍼져있기 때문”이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즉, 앞으로 다가오는 대선이나 모든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뼈를 깎는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필패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또 다른 소장파 의원은 “영남을 본거지로 하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영남에서조차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객관적인 상수로 존재한다. 과거 이회창 전 총재는 영남에서 60%의 득표율을 보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영남권 올인 정책과, 또 영남 노동자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노동당의 활약으로 다가오는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50% 이상을 장담할 수 없다”고 당 안의 비관적 전망을 귀띔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나는 젊은 층의 투표 성향은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수구 기득권 옹호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한나라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과학적 데이터도 한나라당의 이런 변화를 유도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살기 위해 변화하는 것이다.하지만 이 모든 변화의 결정판은 바로 ‘서진 정책’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영남에 지속적인 ‘햇볕정책’을 펴 왔다. 이른바 ‘동진 정책’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지역 대선 득표율은 5%를 넘지 않았다. 이번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호남 지역에서 아예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광주에서 한 곳, 전남에서 다섯 곳 낸 것이 전부이다. 게다가 그 득표율은 1%를 간신히 넘었다. 대선에서 노 대통령과 이회창 전 후보의 차이가 50만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한나라당 승리의 관건은 호남의 득표율 제고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절박한 사정 속에서 지금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대표와 일부 영남 중진, 그리고 다수의 소장파 의원 중심으로 호남 공략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핵심 관계자는 “부산의 중진인 정의화 의원을 축으로 해서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 특위를 중심으로 호남에 대대적인 재정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고, 당직도 파격적으로 호남 출신 인사에게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서진정책에 따라 이제 정치판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안개 판도가 되었다. 우리당은 영남 올인을 목청 높여 외치고 있고, 한나라당은 그 동안 사실상 ‘버린 자식’ 취급했던 호남에 올인 중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호남을 근간으로 하는 정당에서 영남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 성공했듯이 영남을 근간으로 하는 한나라당에서 호남 후보를 내세워야 한나라당이 승리할 수 있다”는 성급한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두 번이나 실패한 대선에서 또 다시 지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한나라당을 휘감고 있는 것이다. 하여간 그 동안 지역화합하면 호남 정당이 영남을 포섭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이제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이 호남을 공략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어 국민들은 묘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동시에 누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봉 pneuma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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