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현대중공업·제일모직 MB에 찍힌 내막
두산인프라·현대중공업·제일모직 MB에 찍힌 내막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9-01-20 15:11
  • 승인 2009.01.20 15:11
  • 호수 92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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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살겠다”식 달러사재기 뻔뻔한 대기업
일부 대기업들이 ‘달러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 시중은행들의 따가운 ‘눈총’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투기적인 거래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일부 대기업들의 얄팍한 술수 탓에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의혹을 받고 있는 해당 업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고 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은 다 가릴 수 없는 법. 시중은행 외환딜러들의 증언을 토대로 ‘달러사재기’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들의 실태를 파헤쳐 봤다.

‘달러사재기’ 의혹을 받고 있는 ‘비양심’ 기업은 두산인프라코어를 비롯 현대중공업과 제일모직 등이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말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총 2억8000만 달러를 무더기로 사들였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본격적으로 ‘달러사재기’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12월 26일부터다. 시중은행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날만 2억5000만 달러란 어마어마한 돈을 한화와 맞바꿔 갔다.

26일 원·달러 환율이 1277원이였다는 점을 가만하면 두산인프라코어가 달러를 사기 위해 쓴 돈은 모두 3192억5000만원 상당이다.


두산·현대중·제일모직 “해도 너무해”

이후로도 두산인프라코어의 ‘달러사랑’은 그치지 않는다. 나흘 뒤인 29일에도 두산인프라코어는 3000만 달러 이상을 매수했다.

29일 원·달러 환율은 1260원. 이날 두산인프라코어는 약 378억원을 달러 사는 데 사용했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올 1·2·3월 상반기 제품 사용 금액 등을 결제해야하는 데 미스매치가 발생했다. 또 우리 같은 경우 현찰로 달러를 산 게 아니라 선물거래한 것이다. 말그대로 필요에 의해 산 것인데 오비이락인 꼴”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산 달러를 다시 내뱉은 이유’에 대해서는 “도의상 책임을 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경영진들이 결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대기업의 ‘달러사재기’ 현상은 두산인프라코어뿐 아니었다. 현대중공업과 제일모직도 이에 적극 동참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중은행 외환딜러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제일모직은 지난해 12월 26일 각각 4000달러 씩을 손에 넣었다.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과 제일모직 측은 “달러를 산 당일 그만한 금액을 결제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측 관계자는 “타 언론에 나온 것은 오보”라며 “필요에 의해 달러를 산 후 그만한 금액을 당일 시장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제일모직 측 또한 “이번 일은 오해에서 비롯된 건”이라며 “1월 초 해외 거래처에 결제할 금액이 있어 달러를 산 것 뿐인데 마치 사재기를 한 것처럼 보도됐다”고 억울함을 피력했다. 하지만 1월 초 언제쯤 결제일인 지에 대해서는 극구 답변을 피해 여러 의혹이 일고 있다.

제일모직에 대한 의혹은 이뿐만 아니다. 달러를 산 자금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

실제 제일모직은 지난해 11월 유동성 위기로 인해 1000억원 상당의 회사채를 발행한 바 있다. 금리도 연 8.11%로 웬만한 사채이자 뺨쳤다. 달러를 산 자금 출처에 의문이 드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대기업 ‘달러사재기’에 MB 격노

한편 ‘너도 나도’ 달러를 산 지난해 12월 26일은 공교롭게도 정부차원에서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푼 날이기도 하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에 따르면 이날 정부의 개입으로 40원 가까이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이들 기업들의 달러사재기로 인해 도로 20원가량 껑충 뛰어올랐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중공업·제일모직이 여론의 비난을 사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정부 또한 이러한 일부 대기업들의 ‘작태’에 적잖게 뿔이 난 모양새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지난해 연말 대규모 달러를 매집했던 두산과 현대중공업이 정부에 완전 찍혔다”며 “공문 형태로 내려오지 않았지만 정부에서 은행들에 롱 포지션(달러매수)을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현황을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 감사까지 내려와 매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나는 등 괴로울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실제 최근 금융감독원은 과도한 달러사재기 등 외환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를 집중 단속하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환율 불안을 틈타 실수요가 아닌 과도한 달러사재기 등을 일삼는 곳들이 있다는 정보가 있어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실수요가 아닌 투기 목적의 거래가 적발되면 해당 자료를 국세청에 넘겨 자금출처를 조사하는 등 엄중히 문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웃지 못 할’ 헤프닝도 벌어졌다. 두산그룹이 사들였던 달러를 도로 토해낸 것이다.

정부가 ‘달러사재기’ 기업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비추자 두산그룹은 즉각 전 계열사 임원회의를 열어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두산 임원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다름 아닌 ‘달러 제자리 찾기’였다.

이에 따라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중 하나인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2월 30일 계획에도 없었던 1억 달러 규모의 내고 물량을 시중은행에 풀었다. 하지만 나머지 1억8000만 달러의 행방은 아직 미지수다.

만약 두산인프라코어가 남은 1억8000만 달러를 1월 15일(현재) 장중 최고가(1349.96원) 때 팔았다면 매도 금액은 2473억2000만원. 이는 약 보름 만에 170억원 가량의 환차익을 앉아서 번 셈이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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