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구조조정하는 자, 경영자 자격 없다!"
불황 겪는 재계가 집중하는 일본전산 ‘불황 성장기’독특한 경영론으로 화제 “위기에 진짜 인재 보인다”
“직원들을 혹독하게 가르치지 않고, 경기가 어려워질 때 구조조정 운운하는 사람은 경영자 자격이 없다” 일본기업 나가모리 시게오 일본전산(日本電産) 사장의 말이다.
최근 경기악화를 맞아 일본 기업 ‘일본전산’을 다룬 책 <일본전산 이야기>가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일본전산은 일본 내에서도 독특한 기업문화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일본전산이 오일쇼크, 일본 10년 불황을 돌파한 ‘불황에 강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국내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일본전산 경영비법을 짚어봤다.
최근 불황을 맞이한 재계의 표정이 어둡다. 위기극복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직원들의 표정에는 ‘구조조정’의 공포가 어둡게 서려있다. 재계 1위 기업 삼성그룹조차도 불황에 적잖은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겪는 체감 불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근 재계에서 일본전산(日本電産)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전산은 일본에서 ‘유독 불황에 강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황에 성장한 기업의 비밀
최근 국내 불황은 일본의 ‘10년 장기 불황’에 비견되고 있다. 1990년대 말 당시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유례없는 불황을 맞이하게 된다. 금융과 가계, 기업을 가리지 않고 줄줄이 무너져 밖으로 나앉던 시기다.
하지만 이 불황에 오히려 성장한 기업도 있다. 바로 일본전산이다.
1973년 사장을 포함해 단 네명의 직원이 시골의 창고를 빌려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계열사 140개에 직원 13만명을 거느린 매출 8조원의 기업이 됐다. 이 성장의 비결은 재벌의 지원도 아니었고 문어발식으로 사업분야를 늘려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창업과 동시에 오일쇼크를 맞았고 가장 활발히 성장한 1990년대에는 일본열도를 뒤흔든 ‘10년 장기 불황’의 한 가운데 있었다. 일본전선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전선은 기업이 줄줄이 망하던 이 불황에 10배가 넘는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일본전산이 초기부터 이름을 날린 것은 아니었다. 일본전산의 성공신화는 소위 ‘삼류’라고 불리는 범재들이 만들어냈다. 명문대학 출신이나 해외파는 고사하고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크고’, ‘화장실 청소 잘한다’는 이유로 뽑힌 이들이 모여 생면부지의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을 만들어낸 것이다.
때문에 나가모리 사장의 ‘인재론’에서는 학벌이나 능력을 보지 않는다.
나가모리 사장은 “인재는 어려울 때 힘을 발휘한다. 누가 우리 사람인지도, 어려울 때 비로소 알게 된다”고 했다.
또 그는 “스피드가 5할이다. 중노동이라 할 만큼의 노력이 3할이다. 능력은 1할5푼. 학력은 고작 3푼, 회사 지명도라야 2푼 값어치일 뿐이다. 이것이 불황을 이기고 돈 버는 기업의 전략 안배다”라고 밝혔다. 즉 기업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직원의 노력과 속도라는 것이다.
일본전산의 모토는 ▲즉시한다(Do it now) ▲반드시 한다(Do it without fail) ▲될 때까지 한다(Do it until completed)는 세가지다. 저돌적이고 무식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표어는 바로 나가모리식의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직원을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나가모리 사장의 리더십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근무 중 일분 일초도 쉼 없이 직원들 혼내기에 바쁘다고 한다. 그의 경영철학도 ‘호통 경영’이다.
그런데도 일본전산의 이직률은 업계에서도 낮은 축에 속한다. 애정과 인자함이 ‘리더십’이 되는 최근 기업문화와는 정 반대의 이론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호통을 애정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는 “칭찬만 하면 바보만들기 십상이다”라며 “제대로 크는 사람은 혼나면서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그의 주변에는 꾸중에 침울해지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꾸중을 듣게 되면 자신을 질책하면서 ‘발전적 반발심’을 가지고 일에 더 덤벼들게 되더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경영론
나가모리 사장은 “누군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을 때, 그것을 지적하고 확실하게 혼낼 수 있는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는 조직이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물론 호통만 쳐서 될 일은 아니다. 호통 경영은 탄탄한 조직 문화 위에 새워진다.
호통경영의 핵심은 첫째, ‘한번 실수하면 끝장’이나 ‘낙오자가 되면 다신 기회가 없다’는 위기감은 오히려 역효과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부활하고 다시 올라 설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상대를 혼낸다는 것이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충분한 관심과 좋은 점을 찾은 후에 혼내는 것이 필수다.
셋째, 상대에 따라 혼내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 개인의 환경이나 성격, 소질과 장단점을 파악해 적절한 표현과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 회의석상에서 혼내야 할 경우와 사무실에서, 혹은 단 둘이서 혼내야 할 경우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나가모리식 경영은 결과적으로 일본전산을 성공반열에 올려놓는데 가장 큰 이유가 됐다.
나가모리식 경영은 이제 세계에서 인정받는 리더십이 됐다. 그는 월스트리스저널이 뽑은 ‘존경받는 CEO 30인’에 이름을 올린 몇 안 되는 경영자다. 그와 이름을 나란히 한 사람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렌 버핏,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내로라하는 명사였다.
〈일본전산 이야기〉를 집필한 김성호 솔로몬연구소 대표는 “어려운 경영 이론 따윈 필요없었다”며 “우리에게도 ‘한강의 기적’이 있었지만 아직 중요한 것이 결여돼 있다. 일본전산에서 나는 그 불덩어리를 보았다”고 말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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