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회장 일가의 이상한 주식거래…매매대금 흥국생명서 대출

지난 1월 5일 오전 11시 30분께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안면이 있던 A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말 〈태광일가 천안방송 지분편취 의혹〉을 취재하면서부터다.
새해인사로 시작된 ‘안부전화’는 그로부터 1시간 째 계속됐다. “천안방송 지분파킹과 관련된 내부문건을 최근 입수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온 까닭이다. 여기에 천안방송 전 대표의 양심선언문도 곁들여졌다.
기자로선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서 기자는 모두 두 차례에 걸쳐 본 의혹을 추적해 왔다. 하지만 끝이 보일 듯 보이지 않아 답답함만 더해져갔다. 당시 본 의혹을 최초 제기한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분파킹 의혹과 관련) 당시 일련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의심되는 부분도 있었다.하지만 건의(확인)할 입장이 아니었다. 어쨌든 난 당시 투자사의 고문 입장이었다. 입장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며 한숨만 내쉴 뿐 ‘딱 부러지는 답변’은 회피했었다.
이렇듯 여러 의혹만 남긴 채 취재를 접을 때 쯤 A씨로부터 ‘단비’같은 소식이 전해온 것이다. 〈일요서울〉이 단독 입수한 태광그룹 내부문건을 토대로 ‘태광일가 천안방송 지분파킹 의혹’을 하나 둘 추적해 봤다.
천안방송 Y 전 대표 지분파킹 관련 양심선언문 단독입수
Y 전 대표 “안양방송서 기획안 내려와 사업계획 세웠다”
내부문건 “LG·CJ홈쇼핑 소유 타 SO주식과 천안유선주식 스왑”
LG·CJ·우리홈쇼핑·녹성, 태광 재매각과 관련 이면 계약
흥국생명이 우리홈에 주식매각대금 대출…이자는 태광이…
지난 1월 8일 늦은 6시께, 서울 마포구 공덕동 〈일요서울〉 본사에서 A씨를 만났다. A씨의 한 손엔 제법 두툼한 서류봉투가 들려있었다.
앞서 전해 들었던 대로 A씨가 들고 온 누런 서류봉투 안엔 A4용지 7장 분량의 태광그룹 내부문건(3차 SO승인 관련 천안유선방송 지분매각 안)과 천안방송 전 대표 Y씨의 양심선언문(A4 3장 분량)이 들어있었다.
내부문건 단독입수
‘태광일가 천안방송 지분파킹 의혹’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6년 9월. LG홈쇼핑(현 GS홈쇼핑)·CJ홈쇼핑·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녹성테크 소유의 ‘천안유선방송’ 지분을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되사면서부터다.
앞서 태광산업은 2001년 8월 회사가 100% 보유한 천안유선방송 지분 67%를 LG홈쇼핑(20%)·CJ홈쇼핑(20%)·우리홈쇼핑(20%)·녹성테크(7%) 네 곳에 고루 내다팔았다. 방송법상 대기업의 종합유선방송(SO) 소유 지분 규제에 따른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4년 후 방송법 규제가 완화되자 이호진 회장은 계열사인 전주방송을 내세워 홈쇼핑 3사 등에 매각한 천안방송 지분 전량을 되사왔다. 그것도 4년 전과 동일한 주당 1만9675원이었다. 천안방송 매각을 둘러싼 지분파킹 의혹도 여기서 비롯된다.
실제 이호진 회장이 천안방송 지분을 판 2001년 때와 되산 2005년은 케이블TV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2004~2005년 사이 인수합병(M&A) 된 SO의 평균 가입자당 가치는 6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 기준에 따르면 천안방송의 가치는 적어도 1710억원에 달한다.
주목해야 할 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호진 회장은 1710억원에 달하는 천안방송 지분을 어떤 ‘꼼수’로 4년 전과 동일한 가격에 되살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혹시’했던 게 ‘역시’로
천안방송을 둘러싼 숱한 의혹들은 A씨가 가져온 내부문건을 통해 일부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A4용지 1매 분량의 본 문건은 2001년 7월 30일 한국케이블TV안양방송의 J본부장이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3차 SO승인 관련 천안유선방송 지분매각의 건〉이란 제목의 ‘기안용지’는 제일 먼저 ‘태광산업이 30대 대기업군 포함에 따라 방송위원회의 3차 SO 허가를 받기 위해선 천안유선방송 지분을 처리해야만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 본 문건에는 이호진 회장이 천안방송 지분분산을 어떻게 분산해야 하는 지도 서술돼 있었다.
문건은 이호진 회장이 갖고 있던 천안방송 100% 지분 중 67%를 △LG홈쇼핑과 △CJ홈쇼핑 △우리홈쇼핑 △녹성테크에 분산하도록 주문했다. 문건은 또 각 회사명과 함께 그 곳에 파킹할 천안방송 지분율과 주식수, 금액 등을 낱낱이 적시해 놓기도 했다.
지분분산법은 더욱 치밀했다.
기안용지 3항 분산방법에 따르면 LG홈쇼핑의 경우 △LG소유 타 SO주식 19억3995만5000원을 TK에서 취득하고, TK 소유 천안유선주식 9만8600주를 LG에 양도토록 되어 있다. CJ홈쇼핑도 이 같은 방법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타 SO지분과 천안유선주식을 맞교환했다.
반면 우리홈쇼핑과 녹성테크는 조금 더 복잡한 방법이 동원됐다.
이호진 회장과 맞교환 할 SO지분이 없었던 우리홈쇼핑의 경우는 △흥국생명에서 우리방송에 19억3995만5000원을 대출해 주면 우리방송이 TK 소유 천안유선주식 9만8600주를 사도록 강요했다.
녹성테크 또한 △안양방송에서 공사선급금 A/C으로 6억7898만4250원을 지불하면, 녹성은 이 돈으로 TK 소유 천안유선주식 3만4510주를 사는 조건이다.
특히 문건의 4항을 보면 이호진 회장과 4사간 지분파킹 의혹은 더해진다. 4항 계약조건에 따르면 “LG·CJ·우리홈쇼핑과 녹성은 TK가 원하는 시기에 원상태로 (지분을) 정리한다.”고 돼 있다.
또 천안방송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우리방송에 대해선 “흥국생명대출비용(금리포함) TK에서 부담한다.”고 똑똑히 적혀있다.
또 다른 내부문건인 A4용지 6장 분량의 〈3차 SO승인 관련 천안유선방송 지분매각 안〉은 우리홈쇼핑과 녹성테크에 대해 다른 말이 포함돼 있다. 이 문건 표지에는 “이호진 사장님까지 보고 결재”한 사항이라고 적시돼있다.
천안방송 Y 전 대표
문건에 따르면 우리홈쇼핑은 ▷안양방송에서 고려금고, 제1금융권에 분산예금(총지분금액에 110%) ▷고려금고에 16억5000만원, 제1금융권에 5억820만원 예금 ▷고려금고, 제1금융권에서 우리홈쇼핑에 대출 ▷우리홈쇼핑 대출금으로 천안중계유선 주식 매입 순으로 행동하도록 써있다. 당시 고려상호신용금고는 태광그룹 계열사였다.
한편 녹성테크는 ▷안양방송에서 고려금고에 예금 7억5537만원(총지분금액에 110%) ▷고려금고에서 녹성테크에 대출 ▷녹성테크 대출금으로 천안중계유선 주식 매입하라고 돼있다.
특히 이 문건의 계약조건에 따르면 우리홈쇼핑과 녹성테크가 대출한 비용과 금리는 전액 TK가 부담하도록 되어있다. 당시 금리는 고려상호신용금고가 6.5%, 제1금융권이 6.0%였다.
지난 1월 9일 당시 천안방송의 전 대표였던 Y씨와 어렵사리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Y씨는 “안양방송으로부터 위 내용이 담긴 기획안을 팩스로 받은 건 사실이다. 문건을 작성한 J본부장은 ‘회장님 검토가 끝난 사항’이라며 이를 토대로 사업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또 이 같은 내용은 태광 측도 알고 있다. A씨 측근이 이 건과 관련해 태광과 소송이 붙었는데 검찰 진술에서 태광 측은 모든 사실을 인정, 부인하지 않았다. 홈쇼핑 3사와 녹성테크 그리고 이호진 회장 간 거래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털어놨다. 실제 이호진 회장과 LG·CJ·우리홈쇼핑·녹성테크 간 거래는 문건에 나와 있는 대로 진행됐다.
반면 태광그룹 계열 티브로드 측은 “사실이 아닌 얘기”라며 펄쩍뛰었다.
이와 관련 티브로드 박상은 실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런(대출) 사실이 전혀 없다. 기사를 쓰든 말든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하는 지 두고 봐라. 법률적으로든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서든 할 수 있는 방안은 총 동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기자는 재차 ‘전에 얘기한 것과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며 사실 확인을 요구하자 박 실장은 “뭘 물어도 대답하지 않겠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테니 마음대로 하시라”고 짧게 답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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