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이라는 벼랑 끝 위기에 몰린 C&그룹의 임병석 회장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90년대 후반 해운업계에서 혜성처럼 떠오른 임 회장은 1984년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 5년 동안 배를 탔던 마도로스 출신이다.
이 ‘바다사나이’는 1990년 서른의 나이에 종자돈 500만원에 4500만원을 빌려 어렵게 법인을 설립했다. 훗날 쎄븐마운틴그룹의 모태가 되는 칠산해운이 바로 그것이다. 회사명을 자신의 출생지인 전남 영광 칠산 바다에서 따왔을 만큼 임 회장은 고향과 바다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끝내 워크아웃 신청
1997년 말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는 임 회장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운업은 경기 흐름이 중요한데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물동량이 늘 것으로 보고 오히려 공격 경영에 나섰다”고 회상했다.
환란의 파고를 공격 경영 전략으로 뛰어넘은 임 회장은 유서 깊은 해운 전문기업인 세양선박을 2002년 인수하면서 해운업계의 ‘무서운 별’로 떠올랐다.
이후 임 회장은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한리버랜드, KC라인, 진도, 우방, 생활경제TV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M&A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연이은 인수합병으로 사세를 불린 임 회장은 2006년 그룹 CI를 C&으로 통합했다. 영어 알파벳 ‘C’ 발음이 바다를 뜻하는 단어 ‘sea’와 같아 해운업이 기업의 뿌리임을 각인시키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한다는 상징으로 ‘and(&)’를 붙인 것이다.
임 회장의 사업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선사업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그러면서 C&그룹을 해운·조선·건설·레저문화 등 4가지 축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조선업 진출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C&중공업은 8만1000dwt급 캄사라막스 벌크선 57척과 18만dwt급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3척 등 총 60척의 선박을 수주했지만 시설자금 조달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것이다.
진도에프엔과 C&중공업 철강사업 부문, 그리고 신우조선해양 등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고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 했지만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자산 매각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그룹 전체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건설사인 C&우방마저 미분양 사태로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지자 채권 금융단에 SOS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임 회장의 그룹 경영권 향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워크아웃 기업들의 기업개선 관례를 보면 채무동결→대주주 감자→출자전환→이사회 재구성→매각 등의 순서로 진행돼왔다. 결국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가는 게 보통의 순서다.
경영권 유지 고비
C&그룹은 C&중공업을 비롯해 그룹의 대표적 상장사 중 하나인 C&우방 역시 워크아웃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임 회장의 실질적인 그룹 경영권 행사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 C&그룹 관계자는 “이제 막 워크아웃 개시 결정이 났을 뿐인데 경영권 향배를 얘기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임 회장과 함께 호남쪽 대표 CEO로 꼽히는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의 앞길에도 먹구름이 일고 있다. 계열사 사장과 그룹 임원을 시켜 회삿돈 1000억원을 빼돌린 백 회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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