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자제 각종 비리로 도덕적 해이 “창업주가 무덤에서 통곡한다”

최근 재벌가 자녀들의 비리가 도마에 올랐다. 현재 비리에 엮여 검찰수사를 받는 재벌가 자재들은 한둘이 아니다. 수개월째 고구마 넝쿨 캐듯 줄줄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재벌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결국 횡령, 주가조작 등 각종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재계 일각에서 재벌가 자제들의 이런 도덕적 해이가 선대 창업주의 명예를 깎는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애경그룹이다. 10월부터 비자금 의혹에 꾸준히 시달려 오던 애경그룹은 지난 12월17일 채형석 부회장이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비자금·횡령 의혹 애경 2세
고 채몽인 애경그룹 창업자의 세 아들 가운데 장남인 채 부회장은 2006년 그룹 총괄부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취임, 사실상 애경그룹 총수 역할을 맡아 왔다. 불과 취임 2년 만에 구속이다.
회사 측은 대외적으로 “각 부문 경영자가 있기 때문에 경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애경그룹은 선대 회장들의 애착이 각별했던 기업이다. 1970년 창업주 채몽인 회장의 임종하자 부인인 장영신 회장이 애경그룹을 이끌어왔다.
바로 국내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 1호다. 그녀의 자서전 ‘밀알 심는 마음으로’에 따르면 장 회장은 “자랑스런 아버지의 아들로 키울 것을 결심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아버지의 기업을 잘 지키고 있다가 성년이 되면 물려주겠다고 다짐했다”라고 회고한다. 실제 애경그룹은 순조로운 성장 끝에 경영승계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 회장의 분투는 장남의 구속으로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고스란히 횡령 사건 등에 연류 됐기 때문이다. 현재 채 부회장은 2005년과 지난해 2차례에 걸쳐 회사 공금 20억원을 빼돌린 혐의와 (주)나인스에비뉴의 분양자 중도금 명목으로 은행 대출 자금 6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같은 해 대한방직이 소유한 7만9000㎡의 토지 매입 협상에 특혜를 주는 조건으로 설범 대한방직 회장에게 15억여원을 전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구속된 한국도자기 3세
채 회장이 구속되기 하루 앞선 16일에는 한국도자기 3세 김영집씨가 구속됐다. 그는 한국도자기 창업주인 고 김종호 회장의 차남 김은수 전 로제화장품 회장의 아들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의 범죄 혐의는 횡령과 배임 외에 사기, 증권거래법 위반 등 12가지에 이른다. 검찰의 공소장만 수십쪽에 달할 정도다.
김씨는 코스닥 상장사인 엔디코프와 코디너스를 인수한 뒤 경영과정에서 횡령과 배임 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2년 전 인수한 엔디코프의 지분을 작년 4월 처분한 뒤 코디너스의 경영권을 확보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100억원 가까운 회사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사실 김씨의 이름은 그 이전부터 코스닥 시장에서 널리 알려졌다. 지난 2005년 코스닥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증권가의 ‘큰손’으로 불렸다. 이후 비트윈, 엔디코프, 코디너스 등의 벤처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대표이사직을 맡고 재벌가 자제들과 함께 코스닥 시장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자기는 6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장수 기업중 하나다. 지난 1943년 창업한후 창업주 김종호씨를 거쳐 김동수 회장, 현 김영신 사장까지 3대를 이어 온 가족 기업이다. 재계에서는 도자기 한 우물을 파며 부채 없이 기독정신을 바탕으로 정도경영을 해오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회사나 오너 일가가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적도 한번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전통도 김씨로 인해 유명무실 해졌다는 것이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김씨와 구체적 연관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너 3세라는 이유만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됐기 때문이다.
주가조작 논란 한국타이어 2세
한국타이어 그룹 3세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도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조 부사장은 김영집씨와 마찬가지로 엔디코프와 코디너스 등 2개 업체에 투자하면서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 등 주가조작 의혹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태다.
조 부사장은 현재 엔디코프 주식을 처분한 상태다. 하지만 코디너스지분 5.7%(39만주)는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어 김씨(8.29%)에 이어 2대주주에 올라 있다. 유상증자 당시 코디너스의 주가는 1만원대 초반이었지만 이들의 참여 이후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김씨가 2006년 엔디코프와 코디너스(당시 엠비즈네트웍스)를 인수할 당시, 조씨는 함께 지분 투자를 했다. 때문에 둘은 단순한 친분을 넘어서 사업상 협력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이 코스닥 상장사 주가조작 의혹의 한 축이었던 김씨를 구속한 만큼 결국 또 다른 축인 조 부사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조 부사장은 재벌 2~3세 주가조작 사건의 실마리가 된 LG가 3세 구본호씨와도 연결돼 있다. 조 부사장이 단순히 김영집 씨와의 친분만이 아니라 재벌 2~3세 테마주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장본인임을 추측하게 해주는 단서다.
코디너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발표 며칠 뒤인 8월27일, 구본호 씨가 인수한 동일철강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발표한다. 구본호씨가 1만2574주, 조현범 부사장이 4192주 등을 인수하는 내용이다. 8월 초까지 5000원에 불과하던 동일철강 주가는 유상증자 발표 후 급등곡선을 그리면서 다음달인 9월에는 10만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동일철강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성공하지 못했다. 금감원이 ‘부적격 의견’을 낸 때문이다. 이와 관련 증권가 전문가들은 “재벌가 2~3세들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소식만으로 주가가 폭등하는 양상에 감독당국이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 부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이자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의 조카라는 점은 적잖은 부담이다.
대통령 취임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자칫 조 부사장이 측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부상할 수 있어서다. 검찰은 향후 조 부사장이 재벌가 자제들과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코스닥 기업에 관한 내부 정보를 이용했는지를 추궁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사면초가 몰린 두산 4세
두산가에서 박중원 뉴월코프 대표이사는 적잖은 골치로 대두했다. 박 대표가 주가조작 사건에 갖은 혐의를 받고 있는 탓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표와 함께 기소된 선병석씨는 2006년 9월 사채 15억원 등 종자돈 50억원으로 뉴월코프를 사들이고 두산가 자제 박씨가 회사를 인수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공시, 주가를 띄운 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320억원을 모았다. 이들은 이렇게 모인 돈 일부를 이듬해 7월 다시 IS하이텍을 인수하고 주가를 띄우는 데 썼다. 또 같은 해 12월부터는 같은 수법으로 덱트론의 주가를 조작하고 회삿돈을 횡령했다. 이렇게 3개 회사에서 연쇄적으로 빼돌린 돈은 모두 456억원에 달했다. 횡령한 돈은 상당부분 개인 용도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표는 본래 부모(박용곤 전 두산그룹 회장, 현 성지건설 회장)로부터 물려받았던 경영수업에 실패한 뒤 빈털털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름만 빌려주고 주가를 띄워 돈을 타내며 개미들을 울린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이 불거지자 두산그룹 측은 박 대표를 일컬어 “두산그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이라고 해명하는데 여념이 없다. 행여나 두산가와 얽히는 것을 사전에 끊는 셈이다.
그의 부친의 박용오 회장의 성지건설을 통한 재기에도 적잖은 부담을 줬다. 박 대표는 지난 7월 구속되기 직전 성지건설 부회장을 사임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6일에는 허위 공시로 손해를 본 주주들이 전직 회사 임원진을 상대로 1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박 대표의 처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셈이다.
투자 귀재에서 범죄자로 LG 3세
LG가의 구본호씨는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M&A를 통해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불과 2년만에 1000억원 이상을 챙긴 인물이다.
레드캡투어 대주주인 구씨는 주가조작 혐의와 함께 대우그룹 구명로비의혹의 핵심인 조풍언씨와 비정상적 자금거래까지 더해져 충격이 적지 않다. 구씨는 2006년 미디어솔루션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내부자 거래와 시세 조종을 통해 165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고, 주가 조작에는 조풍언씨의 돈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주당 7000원에 20만주를 샀다가 4만원에 팔아,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구씨는 또 레드캡투어 주식 20만주를 조씨 회사인 글로리초이스차이나에 넘긴 뒤 주가가 뛰면서 조씨는 막대한 차익을 거뒀다.
구씨는 올 6월말 증권거래법 위반 및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체포된 후 김우중 대우구명 로비사건 연루 혐의로 7월초 구속됐다.
LG그룹 측은 그룹과 직접적 연관이 없고 다만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6촌관계라는 것을 들어 선긋기를 분명히 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구씨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LG그룹의 투명성에 악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다.
재벌 자재들의 범죄는 당분간 재계의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재벌가 자제들의 인맥관계에 따라 다른 재벌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그야말로 재벌가의 수난기다. 재벌가 후손들이 이처럼 각종 비리에 연류 되는 이유는 재벌가의 도덕적 해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 일각의 지적이다. 창업주가 피땀을 흘려 기업을 일궜지만 정작 자제들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불로소득을 챙기며 범죄에 빠져든 셈이다.
부의 대물림도 모자라 개미 등을 쳤냐는 원성이 메아리처럼 뒤따른다.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도덕 불감증’ 재벌 자제들을 향해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벌가 사모펀드로 지배권 확대 쉬워진다
“재벌 사금고 전락 불보듯 뻔한데”
재벌들이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기업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일반지주회사도 금융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게 되는 등 금산분리 원칙이 더 완화된다. 그러나 재벌 PEF에 쳐져 있던 빗장이 사라지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금융사가 대기업의 사금고가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8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대기업 계열사가 설립한 PEF에 대해 금융·보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5년간 제한없이 행사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PEF를 비롯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의 계열사는 모두 금융·보험 자회사에 대해 보유지분 규모와 상관없이 의결권을 15%로 제한하고 있다.
공정위는 또 일반지주회사 소속 PEF도 지주사 관련 규제 대상에서 모두 제외하기로 했다. 대기업 집단 소속 회사의 PEF 운영이 훨씬 용이해진 셈이다.
이처럼 제조업체가 금융회사를 거느리게 될 경우 금융회사의 자금을 제조업 경영에 동원할 우려가 있어 재벌의 사금고화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주회사 전체에 대한 사전·사후 감독장치가 없는 공정거래법상의 일반 지주회사에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할 경우 감독 소홀에 따른 금융불안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가 이뤄지면 재벌들이 사모투자펀드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게 되는데, 사모투자펀드가 투자한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까지 풀어주면 재벌의 지배력 확장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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