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망해도 우리 기업만 잘나가면 돼”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가계가 시름에 앓고 있다. 하지만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 매는 틈에 달러 환투기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얌채 기업들도 있다. 최근 재계 유수의 기업 H사와 S사가 바로 그곳. 금융권을 통해 알려진 이들의 행각은 가히 충격적이다. 외화 유동성 위기가 극에 달한 10월 은행에 하루단위로 막대한 이자를 받아가며 달러놀이를 해왔던 것이다. 이를 비난하는 국민의 원성만 높아지는 상황이다. 최근 경제상황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환란기라고 불린다. 물가상승에 유가상승에 환율까지 상승하며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 매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틈을 타 자기 배만 불리는 대기업들도 있다. 국가 경제가 힘들거나 말거나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이 나돌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들은 수출을 통해 벌어온 달러를 은행에 일수를 벌였다. 금융권을 통해 알려진 이 대기업들은 바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H사와 S사다.
국가 위기는 돈 벌 기회(?)
대기업들의 얌체 행보는 환율상승과 동시에 우려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8일 “국가가 어려울 때는 개인이 욕심을 가져선 안 된다”며 “환투기 등을 점검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이런 대통령의 경고는 H사와 S사에게 ‘씨’도 먹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융권을 통해 전해진 H사와 S사의 행각은 세간의 위기감을 무색케 한다.
이들은 하루단위로 은행을 바꿔가며 달러를 예금시켰다. 금융가에 따르면 이들은 마감 직전에 “달러를 이자 많이 주는 은행으로 예금을 돌리겠다”고 통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두 회사의 외화예금을 받기 위해 시중 은행은 이자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두 회사는 하루 콜 금리로 6~7%의 높은 수준의 이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하루단위 단기 외화예금금리가 0.5% 수준임을 감안하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셈이다.
그럼에도 당시 거래를 주도했던 은행들은 직접적인 언급을 꺼려한다. 행여나 대기업에 눈 밖에 났다가는 거래가 끊기기 일수라는 설명이다. H사, S사와 외환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은행 관계자들은 “해당 고객과의 거래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해당은행 관계자는 “사실 고객과의 거래내역, 거래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현행법상 고객정보 유출에 해당된다”면서 “행여나 고객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은 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은행의 침묵 때문일까. H사와 S사는 모두 그와 같은 거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H사 관계자는 “은행과 어떤 거래를 했는지 알 수 없다”면서 “일수 단위 예금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실 돈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계좌를 옮기는 것은 고객의 권리 아니겠느냐”면서 “이윤을 추구해야 할 기업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했다. S사 관계자도 “거래를 따내지 못한 은행이 음해를 하는 듯하다”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H사와 S사와 거래에 관한 뒷말은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두 회사가 노골적으로 이자율 높은 곳에 달러를 넣겠다고 말하며 경쟁을 부추긴 것으로 안다”면서 “모은행에서 달러를 끌어오기 위해 고리 이자에도 눈물을 머금고 끌어올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당시 은행의 외화예금은 최악의 상황 이었다”면서 “이런 상황에 H사와 S사가 고리의 이자를 받았다는 것은 사실상 은행 부실을 주도한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금융권의 소식에 세간의 H사와 S사를 보는 시선은 썩 곱지 않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국민들이 환율로 고통 받을 때, 국가의 근간이라는 대기업이 이 같은 일수놀음을 했다는 것이 정말 어이없다”며 “국가의 위신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결국 악질적 환투기 이상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보유 달러를 매각해서 환율을 끌어내려야 할 상황에, 혼자서 배불려 보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인터넷 일각에서는 이들 업체에 대한 불매운동의 기류마저 보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10월 당시 외환고 부족으로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됐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IMF 때 당시만 해도 국민들의 공적자금이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투자됐다”면서 “국민의 혈세를 먹었던 기업들이 환율이 뛰자 혼자 살겠다고 국민을 버리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보유한 달러를 환매하긴 커녕 환투기에 이용하면서 환율 상승을 더욱 앞당긴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얌체 행보 처벌받나
현재 시중 은행 관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정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작 은행에서 유통하지도 못할 돈을 하루단위로 예금해 이자를 받았다는 것은 은행의 건전성 평가를 하는 측면에서도 혼돈을 야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현재까지 이 사례를 적발하진 못했지만 차후 시장교란과 관련 조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정작 쓰지도 못할 달러들이 마감 직전까지만 입금돼 이자를 받는 것이 자칫 은행 건전성 평가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환율이 다소 안정세를 찾아가며 H사와 S사의 ‘달러 놀이’는 중단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간의 비판은 앞으로도 좀처럼 식지 않을 기세다.
국가적 위기에 배 불리기에 급급해 비판을 받는 H사와 S사의 숨죽인 행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은행 연말 유동성 확보에 소바자 민원 폭주
“이게 은행이야 사채업자야?”
은행이 연말 자기자본비율을 확대 위해 연체자금 회수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소비자의 원성을 높이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연말 결산을 앞둔 금융권이 신용경색 여파로 연체 관리에 들어가면서 채권 추심을 바짝 조이고 있다.
이에 따라 채권 추심에 시달리다 못해 금감원에 민원을 접수하고 상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올해 1~9월 금감원에 들어온 채권추심 관련 상담은 451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2% 늘었다.
은행들은 특별 전담반을 편성해 운영하거나 영업점 평가와 연계 시키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 대출 상환 기일이 도래한 개인과 기업 고객들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로 연체율이 높은 저축은행과 신용카드사 등 2금융권도 연체율 관리와 채권추심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법 추심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체율이 상승하는 추세라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과도한 채권추심은 소비자들의 피해를 낳을 수 있는 만큼 모니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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