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이변은 없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을 탈환했다. 공화당이 상원을 지켜내며 나름대로 선전하긴 했지만 트럼프 정책에 속도조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의 충돌, 즉 ‘워싱턴 정치 역학’의 변화로 북핵 시간표가 늦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간선거가 끝난 직후 북미 고위급 회담이 무기한 연기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 밖에도 주한미군 주둔, 종전선언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 역시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외교도 전략적 선택 기로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위태위태했던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다.

- 트럼프 선거후 대북일성 ‘서두를것 없다’... 난감해진 文 대통령
- 하원 장악 민주당, ‘감독청문회’로 대북 정책 ‘브레이크’ 관측
미국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하원에서 다수당을 탈환하고 공화당은 상원에서 다수석을 차지한 가운데 7일 국내 정치권이 ‘기대 반 우려 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에는 선거 결과가 국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정 부분의 영향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원 졌어도 상원 가져와...
대북정책 큰 변화 없다?
최대 관심사는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 여부다. 일부는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했지만 공화당이 상원을 지켜냈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이들은 ▲현재 미국 내에서는 사우디 카쇼기 기자 사망 사건이나 트럼프-러시아 스캔들 등 다른 큰 이슈가 있어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는 점 ▲민주당이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딱히 내밀 카드가 없는 점 ▲북한이 올해 들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등 미국을 직접 위협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은 점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선(先)비핵화-후(後)제재 완화’ 원칙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중간선거 결과가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군사 옵션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ㆍ미사일 실험을 하지 못하는 현 상태를 유지시키려는 구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상원이 아닌 하원을 가져옴에 따라 언제든 북한 문제를 거론하며 트럼프 정부를 압박할 ‘키’를 쥐게 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은 입법부가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두 개의 의회로 구성되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상원이 주 정부와 주 의회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면 하원은 국민들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선 민심을 대변하는 하원이 상원보다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
하원은 비록 조약비준권, 고위직 공무원 및 재판관 승인권은 없지만 상원과 동등합 입법권을 가지며, 대선 때 선거인단의 과반수 획득 후보가 없을 경우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권한을 가진다. 또한 하원의장은 대통령 유고시에 부통령(상원의장)에 이어 계승 순위 두 번째이다.
또 미국은 거의 모든 입법 절차가 ‘하원-상원-대통령 서명’으로 이뤄지고, 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이 모든 상임위 의장을 독식하기 때문에 이번 선거 이후 입법으로 종결되는 주요 정책들에 대한 민주당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의원 개인이 노선을 결정하는 상원과 달리 하원은 소속당의 기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 세입세출위원회 등 소위 힘 있는 위원회에서 소속당의 구성원 비율을 임의로 높일 수 있다. 즉, 민주당이 북·미 정상의 비핵화 협상에서 예산이 수반되는 합의가 있으면 승인을 하지 않거나, 의회 보고 의무를 지워 행정부의 정책 속도를 늦출 가능성은 있다.
당장 민주당은 하원에서 외교위와 군사위 위원장의 권한을 활용, 북한과의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감독하겠다며 각종 청문회 증인 출석과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끊임없이 브레이크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인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위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이후 “종전 선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미국은 북측에 무엇을 제공할 것인지, 비핵화 진행 검증은 어떻게 하는지 등 세부적인 정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靑, 말 아끼며 반응 최소화
野 “대북정책 속도 조절”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정치권 역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야 모두 저마다 복잡한 셈법 속에 신중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7일 브리핑에서 “우리가 미국 국내 정치 결과에 이러쿵저러쿵 말할 게 없다”며 구체적 언급을 자제했다. 다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상, 하원을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이 하원을 민주당에 내주긴 했지만, 한반도 비핵화 여정에 큰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하는 기류가 우세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외교위와 군사위가 영향력을 가진 상원에서 공화당의 우위가 유지되는 이상,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반면 야권은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대한민국 정부와 여당의 한반도 프로세스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들 역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공화당이 선전하긴 했지만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것에 주안점을 뒀다. 그는 “언론에서는 중간선거 결과가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보도하는데 하원이 민주당 다수로 돌아갔다”며 “결국 적지 않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나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 대해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예를 들면 북한 인권 문제를 테이블에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도 이날 CPBC 라디오에 출연해 “꼼꼼한 측면에서 미국 민주당이 강한 압박을 하고 들어올 것”이라며 “대표적인 게 북한 인권 문제라든지 그런 측면에서 강한 압박을 하고 들어올 것이다. 따라서 지금 같이 그냥 일방적으로 가기에는 쉽지 않다. 굉장히 속도 조절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여야가 상이한 분석을 내놓는 가운데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권의 일정표가 다 틀어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마음만 맞으면 속도를 확 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이 지지율 호재로 기대하는 이슈는 북한뿐인데, 상황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한번 갔다가 오면 지지율이 확 올랐다. 그런데 지금 중간선거가 이렇게 되면 대북문제의 진행 속도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도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 부장의 8일 뉴욕 회담이 이틀 전인 6일 전격 취소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여당은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단순한 일정 조율로 판단하는 듯하지만 미 현지 언론은 이번 고위급 회담 취소가 양국 간 외교의 적신호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경계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회담 연기는 북미 간에 상대방에 대한 요구와 기대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정점을 이뤘던 양측 간 외교가 ‘모래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mired in quicksand)’고 분석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달리 북한은 여전히 핵물질을 개발하고 있으며, 30~6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미 정보당국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先비핵화-後제재 완화’
기조, 더 강경해질 수밖에...
정치권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민주당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검증’이 선행된 후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기자회견에서 “서두를 게 없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면서 “나는 (대북) 제재 문제들을 해제하고 싶다”라며 “그러나 그들(북한) 역시 호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결국 자신의 임기 내에 ‘업적’을 남기기 위함이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한 대통령 이란 타이틀은 그의 재선가도에도 날개를 달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는 달랐다. ‘과속’은 없었다. 북미 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긍정적인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늘 ‘선(先)비핵화-후(後)제재 완화’를 주장했다.
하원이 민주당을 장악한 현 상황이라면 이 같은 ‘선 검증’ 기조는 더 강해질 것이 자명하다. 당장 민주당은 외교위와 군사위 위원장의 권한을 활용 북핵 청문회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 이전부터 미국은 문 대통령의 ‘과속’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당시 강경화 장관의 ‘5.24 해제 검토’ 발언은 미국으로부터 ‘승인’이라는 단어까지 들으며 외교적인 굴욕을 자초했다.
통상 ‘승인’이라는 단어는 외교적 결례로 여겨져 사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시 문 정부는 ‘굴욕 외교’ ‘미국의 속국’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장밋빛 미래에 취한 나머지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해 여론의 불안감이 확산됐다.
만약 중간선거 이후에도 문 대통령의 ‘과속 스캔들’이 계속된다면 이는 결국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핵, 북미 관계는 물론이고 한미관계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 언론 매체 복스(Vox)는 “한국이 한·미 관계를 해칠 뿐 아니라 북한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한국이 대북 제재 완화 조치를 하면 이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해체를 위한 대북 압박 캠페인이 산산조각이 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