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회장 일가의 이상한 주식거래 ‘숨겨진 내막’

2006년 9월, 아주 이상한 거래가 세상에 알려졌다. ‘태광그룹과 홈쇼핑 3사간’에 오간 거래다. 때는 2001년 8월의 일이다. 당시 태광산업은 회사가 100% 보유한 천안방송 지분 67%를 GS홈쇼핑, CJ홈쇼핑,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에 내다 팔았다. 방송법상 대기업의 종합유선방송(SO) 소유 지분 규제에 따른 것이다. 그로부터 약 4년 후 방송법 규제가 완화되자 태광그룹은 계열사인 전주방송을 내세워 홈쇼핑 3사에 매각한 천안방송 지분 전량을 되사왔다. 그것도 4년 전과 동일한 주당 2만원(총 66억원)에 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어찌된 일인지 단 몇 일만에 유야무야 묻히고 만다. 천안방송 매각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집중 추적했다.
천안방송 매각을 둘러싼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태광그룹과 홈쇼핑 3사 간 편법적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다. 2001년 태광산업이 천안방송 지분을 팔 당시와 2005년 11월 홈쇼핑 3사로부터 지분을 다시 사올 때까지 케이블TV 시장은 급성장했다.
회사 가치 상승 불구 4년전 가격으로 거래
실제 2004~2005년 사이 인수합병(M&A) 된 SO의 평균 가입자당 가치는 6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 기준에 따르면 천안방송의 가치는 적어도 1710억원에 달한다. 그런 천안방송을 어떻게 4년 전과 같은 가격(66억원)에 사올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두 번째는 홈쇼핑 3사로부터 지분을 산 주체가 태광산업이 아닌 계열사 전주방송이라는 점이다. 전주방송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과 그의 아들 현준(14)군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회사다. 사실상 개인회사나 다름없다. 천안방송의 지배권이 4년여만에 한 차례 손바꿈 과정을 거쳐 태광산업에서 이 회장의 개인 회사로 넘어간 것이다.
쉽게 말해 오너일가가 100% 지분을 가진 전주방송이 1710억원에 달하는 천안방송을 단돈 66억원에 ‘꿀꺽’한 셈이다.
여기서 문제는 태광산업의 부적절한 태도다. 태광은 전주방송이 천안방송 지분을 인수한 22일 후 천안방송 지분 33%(99억원)에 대해 유상증자 했다.
이에 당시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홈쇼핑 3사가 동일한 시점과 동일한 가격에 태광산업과 거래한 점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고, 시장 추정가격의 6%에 불과한 헐값에 매도한 점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태광을 맹공했다.
이어 장 교수는 “SO사업자가 홈쇼핑의 채널권을 결정하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을 고려해도 이는 태광산업과 태광산업의 대표이사이자 전주방송 소유주인 이 회장, 홈쇼핑사들간에 밝혀지지 않은 편법적 관계가 존재했음을 의심케 한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이상했던 거래는 며칠 후 언론에서 그대로 묻혀버렸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검찰이나 방송위 등 그 어떤 국가기관의 제재도 없었다. 단연 대중의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혀져갔다.
‘떼돈’ 포기한 홈쇼핑사들, 왜?
이런 와중에 지난 12월 2일 당시 태광산업과 홈쇼핑 3사간 거래에 참여했던 핵심 관계자 A씨를 어렵게 접촉할 수 있었다. A씨의 진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1년 천안방송 지분을 매각할 당시 태광산업과 홈쇼핑 3사간 약정을 한 게 있었다. 바이백옵션으로 나중에 동일가로 지분을 도로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지분 파킹을 한 것이다. 홈쇼핑사들이 천안방송을 매입한 자금도 흥국생명에서 태광이 대출받은 것이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태광 그룹 계열사다.) 4년 3개월간의 대출 이자도 태광에서 지불했다. 홈쇼핑사는 금전적 부담이 없었다. 또 홈쇼핑 3사는 태광으로부터 홈쇼핑송출수수료(10억원 이상)를 깍아주는 대가를 받았다. 일종의 프리미엄인 셈이다. 당시 홈쇼핑사들은 태광이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것이라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A씨의 증언을 정리하면 정부 규제로 인해 SO 계열사를 팔게 된 태광산업은 ‘을’의 위치에 있는 홈쇼핑 3사에 지분을 파킹하고, 이후 태광산업이 아닌 오너일가에게 천안방송을 넘겼다. 말 그대로 오너입장에선 ‘누워서 떡(1000억원) 먹은’ 셈이다.
하지만 이는 태광산업이나 홈쇼핑 3사 주주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 게다가 태광산업의 경우 ‘대주주에 대한 부당 신용공여금지’ 위반 혐의도 걸린다. (흥국생명은 지난 2004년 대주주인 이호진 회장에게 125억원의 불법 대출을 해준 혐의로 기관경고를 받고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태광그룹 측은 “천안방송 매입건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마이웨이’ 입장을 고수했다.
이와 관련 태광그룹 측 관계자는 “몇 년이나 지난 얘기가 왜 이제와 또 다시 거론되는 지 알 수 없다”며 “전혀 그런(대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관계자는 매입가와 매각가가 같았던 이유에 대해 “거래 당시 계약에 환매조건이 있었다”며 “홈쇼핑 3사가 당시 가지고 있던 천안방송 지분은 각각 20%가 채 안됐다. SO시장에 대해서 안다면 이해하겠지만 SO는 지분 50%가 넘지 않을 경우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태광 측 입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당시 태광산업이 가진 천안방송 지분 또한 50%에 훨씬 못 미치는 3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안방송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기위해선 검찰수사, 방송통신위원회, 금융감독원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