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가 장남의 이상행보

효성가(家)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효성ITX를 상장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최근엔 정보기술(IT)·콘텐츠 분야 비상장기업을 잇달아 인수합병(M&A)하면서 회사 규모도 제법 부풀렸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곤 안 건너’는 그간의 효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에 일각에선 “이 기회에 장남으로서의 능력을 아버지 조석래 회장에게 제대로 인식시키려는 것 아니냐”며 ‘대세 굳히기’에 들어간 것으로 추측했다. 조현준 사장의 발 빠른 행보를 뒤쫓아 봤다.
조현준 효성 사장의 공격적인 행보에 재계가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엔 어떤 IT사를 먹어치울 지 궁금해 하는 모습이다. 실제 조현준 사장은 이번 한 해에만 IT기업 다섯 곳을 비롯해 콘텐츠기업 두 곳을 인수·합병했다.
조현준 사장이 인수한 IT회사는 △골프업체 제이슨골프와 △전광판 의료기기 제조업체 럭스맥스 △반도체 관련업체인 럭스맥스네트웍스 △전자상거래 결제업체인 인포허브 △시스템개발공급업체 바로비젼 등이다.
또 조현준 사장은 크레스트인베스트먼트사를 사들이면서 이 회사 자회사였던 △연예기획사 나무엑터스와 △꽃엔터테인먼트도 손에 넣었다. 나무엑터스는 문근영·김태희 등 스타급 연예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연예기획사까지 M&A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조현준 사장은 지난 7월 자신이 최대주주로 군림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업체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옛 키투넷솔루션)를 통해 제이슨골프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자본금 5000만원의 제이슨골프는 골프연습장을 비롯해 골프용품, 전자상거래를 주 사업으로 하고 있다.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의 이번 M&A는 신규 사업 진출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제이슨골프 주주들로부터 7000주를 14배수(주당 7만1428원)인 5억원에 사들여 지분 70%를 확보했다.
조현준 사장의 공격성은 이쯤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이슨골프를 먹어 치운지 딱 한 달 만인 8월 초에도 전광판·의료기기 업체인 럭스맥스와 반도체 광원 업체 럭스맥스네트웍스 지분을 전량 사들였다. 이때 든 비용은 모두 42억원 가량이다.
조현준 사장의 공격적 M&A는 한 달 간격으로 이뤄졌다. 조 사장은 또 지난달 초 시스템개발공급 상장업체인 바로비젼을 잇달아 인수했다. 조현준 사장은 지난 9월 효성ITX와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를 통해 바로비젼을 인수해 이 회사 지분 57.17%를 획득했다.
효성ITX는 컨택센터 및 컨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서비스 업체로 조현준 사장이 지분 37.63%를 소유, 최대주주로 있는 곳이다.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 역시 조 사장이 현재 8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포스트 조석래’ 잰걸음?
조현준 사장의 공격적인 행보에 재계는 놀란 눈치다. 효성그룹이 보여 왔던 기업문화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효성그룹은 M&A시장에서 ‘돌다리만 두드리다’ 항상 기회를 놓쳐왔다. 그만큼 신규 사업 진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다.
실제 조현준 사장의 아버지인 조석래 회장은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와 대우정밀(현 S&T대우) 인수전에서 참패의 아픔을 맛봤다.
2004년 M&A 시장에서 최대어로 통하던 대우종기를 두산그룹에 넘겨주고 2005년에 대우정밀은 S&T그룹에 넘겨줬다. 이를 두고 중견그룹의 한 임원은 “효성가의 조심성은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고 꼬집기도 했다. 조심성 때문에 거듭 고배를 마셨다는 얘기다. 이에 효성그룹은 번번이 ‘규모에 비해 통이 작다’는 얘길 들어왔다.
이에 따라 재계 일각에선 “장남 조현준 사장이 아버지에게 제대로 한방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효성그룹은 아직 후계구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 장남 조현준 사장은 그룹의 무역·섬유부문을, 차남 조현문 부사장은 중공업부문을, 막내 조현상 전무는 전략기획부문을 맡고 있다. 3형제가 각자 그룹의 주요 역할을 수행하면서 ‘조용히’ 경영수업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주)효성 지분율도 3형제 모두 엇비슷하게 갖고 있다. 조석래 회장이 지분 10.20%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조현준 사장이 6.94%, 조현문 부사장이 6.56%, 조현상 전무가 6.55%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구도에서 보면 조석래 회장이 세 아들을 경쟁시켜 장자가 아니더라도 경영자로서 더 적합한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 점에서 장자인 조현준 사장이 뭔가 아버지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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