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출범 KB금융지주 ‘낙하산 인사’ 논란

오는 9월 출범하는 KB금융지주에 초대회장으로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확정된 후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황 회장 낙점은 예상 밖의 결과였다. 1등 은행장(강정원)을 제치고 경쟁관계였던 전직 맞수은행장을 회장에 앉혔기 때문. 하지만 내정은 기정사실화 됐고, 은행권은 ‘황영기 선장’ 체제의 ‘KB금융지주호’가 순항할지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황 내정자가 회장이 되기까지 넘어야할 난국은 많다. 국민은행노조는 황 회장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당장 국민은행 주가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 가격을 밑돌면서 주식매수에 따른 자금 마련 및 주가부양책 마련도 시급하다. 지주회사 출범이 늦어지면 회장 취임도 순조롭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영기 내정자가 현 MB정권과 밀월관계에 있다는 점은 지주회사 출범까지 적지 않은 대내외 잡음을 예고하고 있다.
강 행장이 회장이 될 것처럼 여겨졌던 지주회장 인선에 황영기 변수가 떠올랐을 때부터 금융권에서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지 않겠느냐’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몸담았던 황 전 회장의 ‘정치적 배경’을 떠올린 것이다.
당장 국민은행 노조는 지난 10일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이사회에 대해서도 스스로 관치를 자초했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KB금융지주 회장 내정과 관련해 9일부터 'KB국민은행 주권쟁취 투쟁'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황영기 인선 정치적 배경
노조 관계자는 “황영기씨의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을 ‘이명박 정부의 금융권 알박기’로 규정한다”며 “삼성 일가의 탈세에 책임이 있는 인사가 KB금융지주의 회장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 경제 자문위원을 역임했던 인물이 KB금융지주 수장이 된다는 것은 KB국민은행마저 정권의 관치와 삼성을 비롯한 대재벌에 봉헌하려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은행 이사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를 일축했다.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은행에 정부 입김이 작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된 국민은행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하루 종일 4명(황영기 전 회장, 강정원 행장,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 정동수 전 국민은행 이사회의장)의 최종후보를 면접한 뒤에도 결론을 모으지 못하고 결국 격론 끝에 표결까지 간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부동표’이던 5명의 표심이 황 전 회장에게 쏠렸다는 후문이다.
표심을 이끈 비결은 황 전 회장의 탁월한 프리젠테이션과 ‘회장-행장 분리’ 명분. 황 전 회장은 어떻게 조직을 꾸려나갈 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책임을 질 지 등에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강 행장을 뺀 3명의 후보 모두 회장-행장 분리론을 주장한 것도 최종 낙점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KB금융지주회사는 향후 ‘황-강 투 톱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연임된 강 행장은 2010년 11월까지 3년 임기를 보장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회장 탈락에도 불구하고 은행장직은 계속 유지하게 된다.
지난 4일 국민은행 이사회가 황 전 회장을 공식 후보로 선임한 직후, 강 행장은 “황 회장 내정자를 적극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 행장은 황 내정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도 건넸다고 알렸다. 강 행장은 “회추위 결정을 존중하고 황 전 회장과 힘을 합쳐 지주사 전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원만한 협력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황-공격형, 강-안정형 리더십
황 회장 내정자의 공격 스타일과, 강 행장의 안정적 캐릭터는 상호보완적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경영전략을 놓고 대립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직책상으론 지주회장이 상급자이지만, 지주 전체 자산의 98%를 장악하고 있는 은행장의 실제 파워도 만만치 않다.
신한지주의 라응찬 회장처럼 지주회장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질 경우 별 문제가 없지만, 연배나 조직 내 뿌리로 볼 때 황 회장 내정자에게 라응찬 회장의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 금융계 고위인사는 “내부지지를 받는 강 행장의 협조여부가 황 회장의 향후 지주회사 운용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공식적인 선장은 한명이지만 걸출한 조타수를 태운 KB금융지주호(號)의 앞날은 당장 회장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조직 내부의 알력 추스르기와 경쟁사들 모두가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외환은행 등 인수합병 전쟁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순항할지 표류할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회추위가 황 내정자의 손을 들어준 것은 조직의 안정 보다는 변화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지주 체제의 시너지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회장과 행장을 분리해야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은 얻은 데다 황 내정자의 공격적 성향을 앞세워 향후 본격화될 금융권 M&A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금융권 M&A 경쟁 신호탄
우선 진작 부터 군침을 삼켰던 외환은행이 론스타와 HSBC의 계약 파기로 다시 매물로 나올 경우 인수전에 또 다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우리금융, 산업은행, 기업은행 민영화 과정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낼 전망이다.
실제 황 내정자는 KB금융지주 회장 내정 발표직후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선적으로 전략적 M&A에 나설 것”이라며 “외환은행 인수 노력도 계속해 나가는 한편 해외 시장에도 관심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비은행 부문 강화와 지배구조 개선 등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재편과 국제화 역할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이에 따라 벌써 부터 국내 금융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견하는 전망도 팽배하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재임시절 3년 만에 자산규모를 100조원 이상 불리며 금융권에 자산 확대 경쟁을 촉발시켰던 황 내정자가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경우 이번에는 금융시장의 M&A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황 내정자가 몸담았던 우리금융은 물론, 신한, 하나 등 경쟁사들은 벌써부터 긴장하는 모습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황 전회장의 KB금융지주, 우리금융과 하나금융 간에 향후 금융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M&A 주도권 잡기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라며 “증권과 보험 등을 두루 거친 황 전 회장의 전력을 놓고 볼 때 비은행 부문에서도 무한경쟁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황 내정자와 강 행장은 미국계 은행인 뱅커스트러스트(BTC) 출신이다.
두 사람은 1983년부터 7년 정도 같이 일했다. 당시 30대였던 두 사람의 업무는 다소 충돌하는 분야였다.
강 행장은 리스크(위험)관리, 황 내정자는 영업부문이었다. BTC는 본사가 파생금융상품 손실로 1999년 도이체방크에 인수되면서 이름이 사라졌다.
김성태 대우증권 사장, 임기영 IBK투자증권 사장, 이원기 KB자산운용 대표, 이찬근 하나IB증권 사장 등이 BTC 출신이다.
# “황영기 회장 신뢰성 결격”
경제개혁연대, 비자금 조성·관리의 주역 맹비난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한성대 교수)는 지난 4일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에 대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 인사”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국민은행 이사회에서 결정한 황 후보가 경영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 경영자는 경영 능력 그 이상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특히 “황 후보는 삼성증권 사장 출신으로 삼성특검 수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비자금 조성·관리의 주역이라는 의혹을 받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자문을 맡는 등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2004~2006년 황 후보의 무리한 규모 확장 위주 경영전략은 현재 우리은행에 많은 경영불안 요소를 제공했다”며 “지주사 체제 전환으로 조직 재구성과 경영전략 재수립의 차원에서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KB금융지주의 회장으로서 황 후보가 적절한 경영 리더십을 갖고 있는 지도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황 후보가 우리은행 행장 시절 ‘국내 유일의 토종은행’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채택한 바 있어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이 80%에 이르는 KB금융지주의 경영자로서 과거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뒤집을지도 지켜봐야한다”고 꼬집었다.
##KB금융지주회장은 아무나 하니?
참여연대-도덕성 신뢰성 경영능력 부족 성명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위원장 김진방·인하대 교수)는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위해 삼성생명에 손해를 끼쳐 금감위로부터 회사에 대한 기관경고를 초래해 문책경고를 받은 점 ▲우리은행 재직 시절 삼성 비자금 조성에 관여 금감위로부터 회사에 대한 기관경고 초래, 본인은 주의적 경고를 받은 점 ▲우리은행 경영과정에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회사에 손실을 초래해 예보로부터 회사에 대한 기관주의 초래하고 본인은 성과급 감액을 요구받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금융감독법규의 위반으로 회사에 기관경고 및 과징금 부과를 초래한 점 ▲지난 대선 이명박 캠프 참여에 따른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과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황 전 회장의 추천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며, 국민은행 지주회사 회장 추천위원회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해 황영기 전 회장의 후보추천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황 전 회장의 우리은행장 재직시절인 2004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김용철 변호사 명의의 예금계좌를 개설해 주면서 금융거래실명확인의무를 위반했다. 이는 자금세탁혐의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또한, 황 전 회장은 삼성생명 전무이사로 재직했던 시절에 삼성자동차 등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과 한빛은행과의 주식스왑과정에서 이재용을 위해 스왑주식의 인수를 포기하는 등의 행위로 삼성생명에 손해를 끼쳐 지난 1999년 12월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문책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지난 2001년 초대 우리은행장 심사 시에는 문책경고를 받은 지 3년이 지나기 전에 은행장으로 취임하지 못하게 한 은행감독규정 제21조에 따라 심사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3년이 경과한 지난 2004년 황 전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취임 즈음에는 이 사건으로 참여연대로부터 고발 된 적도 있다.
김종훈 기자 f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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