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통분쟁 물밑잠복 “돈은 피보다 진하다”
적통분쟁 물밑잠복 “돈은 피보다 진하다”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8-07-17 09:41
  • 승인 2008.07.17 09:41
  • 호수 65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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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앙숙형제들’ 현 주소
정몽구·정몽준(윗줄) 김승연·김호연(가운데줄)박용오·박용성

꽁꽁 얼어붙었던 재계에 봄날이 찾아왔다. 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던 오너 형제간의 미묘한 갈등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모양새다. 피비린내 나는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 돌연 화해무드로 돌아선 대표적 기업은 범 현대가와 한화가. 그동안 두 재벌가는 그룹 적통성 문제를 놓고 형제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여왔다. 반면 시대에 역행하는 그룹 형제들도 있어 눈에 띈다.

실제 두산가 형제들은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재계 ‘앙숙형제’들의 현 주소를 따라가 봤다.


현대가 MK의 동생사랑

그룹 적통성 문제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쳤던 범 현대가의 맏형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동생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최근 행보가 심상찮다.

지난 7월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현대차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를 자비로 구입해 정 의원 부부에게 선물했다.

한편 제네시스를 선물 받은 정 의원 부부는 곧바로 증여세를 내고 명의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차는 정 의원의 부인인 김영명씨가 타고 있으며, 정 의원은 평소 애용하던 기아차 미니밴 ‘카니발’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 18대 총선 당시에도 정 의원에게 제네시스 판촉 차량 한 대를 제공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선거 유세에 활용하고 이왕이면 신차 홍보도 해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번에 선물한 제네시스는 화해의 성격이 크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작고 이후 ‘불화’로 치달았던 범 현대가를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겠다는 정 회장의 확고한 의지가 담긴 메신저인 셈. 실제 범 현대가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이른바 ‘왕자의 난’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조카며느리 현정
은 회장 간에 벌어진 ‘시숙의 난’ 등 일련의 불미스러운 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후 정 회장과 정 의원도 서로 발길을 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해빙의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3월 선친이 작고한 후 처음으로 제사에 참석해 정 의원 등 일가족과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정 명예회장의 7주기를 맞아 경기도 하남 창우리 선영을 찾은 자리에서 시아주버니 정몽구 회장을 두고 “현대가의 정통성은 정몽구 회장에게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화가 16년 앙금 ‘훌훌’

한화가에도 ‘재결집’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실제 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동생 김호연 빙그레 전 회장은 유산분배를 놓고 31차례나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며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최근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4·9총선이라는 우연찮은 계기를 통해서다.

재계에 따르면 김호연 전 회장은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지난 3월 직접 한화 본사 회장실을 찾아왔다. 형님에게 출마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김승연 회장 또한 이날 동생을 살갑게 맞이하며 “선거법상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많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이후 김승연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한 달 뒤인 4월 초 동생의 충남 천안지역 선거사무소를 방문, 함께 공주의 선영을 찾아 제를 올리기도 했다. 한화 창업주이자 선친인 고 김종희 전 회장의 묘 앞에서 우애를 다짐하는 가족행사를 치른 셈이다.

반면 재계는 두 사람의 관계회복에 김승연 회장의 ‘스타일 변화’를 꼽았다. 지난해 폭행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김 회장이 ‘독주형’에서 ‘경청형’으로 바뀐 게 두 사람을 잇는 동아줄이 됐다는 것. 동생에 대한 부드러워진 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두산가 원수보다 못해

올해 창립 112년째를 맞는 두산그룹 또한 ‘형제의 난’을 피해갈 순 없었다. 겉으론 4대를 이어오며 알콩달콩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속내를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평화롭던 두산그룹에 ‘형제의 난’이 터진 것은 2005년 7월 18일. 박용오(차남) 전 회장이 큰 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종용을 받고 그룹 회장직을 박용성(3남) 회장에서 넘길 것을 요구받으면서부터다.

여기에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정원씨를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반면 박용오 전 회장 일가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던 것 또한 문제가 됐다. 즉 철저하게 박용오 전 회장측을 배제한 것.

이에 반발한 박용오 전 회장은 7월 21일 오전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 등의 진정서를 검찰과 모방송사에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박용성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일가가 20년간 17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800억원대 회삿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내용을 비롯해 메가톤급 의혹들이 포함됐었다.

이 일로 박용오 전 회장과 두 아들 경원, 중원씨는 가문에서 영원히 축출됐다.

실제 두산은 현재 오너가 3세 형제들(박용성·용현·용만)이 나란히 주력계열사인 중공업·건설·인프라코어를 맡아 최고위층을 형성하고 있고 박용오 전 회장 부자만 그룹 경영에서 빠져 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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