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두고 지난달 27일 서울 혜화역에서 맞불집회가 열렸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사법부를 비판하는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이하 당당위)’와 이들의 주장이 해당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반박하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집회를 연 것. 첨예한 공방이 성대결 양상으로까지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부른 첨예한 공방···‘미투’ 아닌 ‘힘투’는 무엇?
당당위는 지난달 27일 오후 1시 서울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헌법 수호 유죄 추정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힘투(HimToo‧그도 당했다)’ 집회다.
이날 집회는 음식점에서 여성을 강제 추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실형을 선고한 사법부를 비판하는 취지에서 열렸다. 성추행의 증거나 정황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유죄 추정 원칙’을 적용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성대결’ 프레임으로 비춰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포스터에 ‘본 시위는 성별문제가 아닌, 올바르지 못한 사법부의 법 집행을 규탄하는 집회이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그러나 집회 현장에서는 여성단체에 비해 남성단체는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강력 발언과 성차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발언들이 일부 나와 성대결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참가자들은 “사법부가 성폭력 혐의를 받는 남성들에 대해 유죄 추정을 해 여성의 일방적 증언만 듣고 실형을 선고하고 있다”면서 “(유죄추정으로 인해) 개인이 쉽게 범죄자가 되며 결백을 위해 자살까지 하는 사회”라고 비판했다.
김재준 당당위 대표는 “사법부가 유죄 추정을 하기 시작하면 소시민들이 개인적으로 공권력에 맞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사법부가 하루 빨리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세라비 작가는 남함페 등 페미니즘 단체를 겨냥해 “특정 정당 소속이 주도하고 뒷 배경이 있다”면서 “우릴 도와준 단체가 어디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는 영화 촬영 중 상대 여배우를 추행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된 배우 조덕제(50)씨도 참여했다.
조 씨는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것”이라며 “제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사법부는 각성하라’, ‘날림재판 필요 없다’, ‘원칙을 준수하라’, ‘유죄 추정 그만두고 지켜내자 무죄 추정’ 등의 구호를 연신 외쳤다.
당당위 포스터
불태우기도
같은 시간 반대편인 혜화역 1번 출구에서는 남함페가 집회를 열고 당당위 시위 자체가 ‘2차 가해’라며 반발했다. 또 자유발언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 속 성차별 현실 등에 대해 비판하는 시간을 가졌다. 집회에는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참여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이슈화된 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오직 가해자 입장만 대변하는 청와대 청원 글이 수없이 공유되며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이 유포되는 등 2차 피해가 양산됐다”며 “여기에 당당위라는 커뮤니티는 사법부가 성폭력 사건에서 증거도 없이 여성의 눈물만 믿고 남성에게만 편파적으로 유죄 추정을 한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 진술에는 어떤 의혹도 제기하지 않고 피해자 진술만을 집요하게 문제 삼으며 더 많은 구체적 증거를 요구하는 모습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어온 2차 피해를 그대로 재생산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이날 남함페 집회에서는 2차 가해 댓글을 시위 참여자들의 응원 메모로 덮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또 2차 가해 댓글을 인쇄해 찢거나 당당위 측의 시위 포스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이날 남함페 집회 참가자들은 ‘꽃뱀 추정 중단하라’, ‘2차 가해 규탄한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집회 참가자 저조
조롱 이어져
앞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지난해 11월 부산의 한 곰탕집에서 남성 A씨가 여성 B씨의 신체를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개월 실형을 받은 사건이다.
A씨의 아내가 1심 선고 직후인 지난 9월초 온라인 커뮤니티와 청와대 청원게시판 등 인터넷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A씨의 아내는 해당 글에 ‘법원이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 남편에게 실형을 선고했다’는 주장을 담았다.
이후 B씨 진술의 구체성, 사건 발생 후 반응 등을 근거로 내려진 해당 재판 판결문 내용, 신발장에 가려져 A씨가 B씨의 신체를 만지는 장면이 명확하지 않은 CC(폐쇄회로)TV까지 공개되자 남성들의 반발이 확산됐다.
일부 남성 누리꾼들은 성추행으로 몰린 억울한 사례를 서로 공유하며 여성이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양측 집회 참가 인원은 예상보다 저조했다. 당당위는 수천여 명, 남함페는 수백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봤으나 실제로는 각각 300여명, 100여명에 그쳤다. 경찰은 두 집회 참가자들 간의 갈등을 우려해 9개 중대 약 72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특히 국내 힘투 집회를 처음 연 당당위 측의 참가 인원이 저조하자 여성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조롱이 이어졌다.
그러자 당당위 카페에서는 반 페미니즘 단체와 연대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올라오는 등 카페 노선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당당위 측은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카페의 목적 등을 재정비 한 뒤 11월 또는 12월에 2차 집회를 열 계획이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