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계열사 ‘보험 먹이사슬’
대기업-계열사 ‘보험 먹이사슬’
  • 정혜영 기자
  • 입력 2008-07-02 09:38
  • 승인 2008.07.02 09:38
  • 호수 63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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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손보사들 ‘손해’는 절대 없다

재벌 기업들의 계열사에 보험료 ‘몰아주기’가 사실로 드러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삼성과 한화, 동부그룹 등이 기업보험의 90% 이상을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방식으로 그룹 내 손해보험사에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는 금감원 분석자료를 통해 문제점을 살펴보고, 업계 주장과 시민단체, 사법부의 동일한 판례들을 짚어봤다.

그 동안 재벌그룹들의 계열사 몰아주기는 기업보험뿐 아니라 계열사 간에 상품을 되팔아 주기식의 방법을 동원한다. 이러한 재벌그룹들의 수 십 년 간 관행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손보사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집단(삼성, 한화, 동부그룹 등)소속 계열사들은 기업보험의 90% 이상을 입찰에 의한 경쟁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동일 기업집단 소속 손보사에 물량을 지원하고 있다.


“LG그룹 계열분리된 후에도 90% 이상”

삼성그룹의 경우 2006년 회계연도에 4190억원에 달하는 계열사의 보험료 중 97.8%인 4099억원을 삼성화재에 납입했다. 사실상 삼성화재에 전체 계약을 가입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손보사가 대규모집단에서 계열분리 된 현대 및 LG그룹의 경우에도 옛 그룹사였던 현대해상과 LIG손해보험에 계열사 보험계약의 거의 대부분을 수의계약으로 올인하고 있다.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하이닉스는 계열분리 이후 경쟁입찰 방식으로 기업보험을 체결해 최근 3년간 보험료 규모를 57.5%를 절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부당지원에 대해 공정위차원에서 강력하게 직권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2007년 1월25일 선고, 사건번호 2004두 7610)를 살펴보면 “현저한 규모로 자금을 제공하는 경우는 그 자체만으로도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것도 현행법 제23조 제1항 제7호에서 규정하는 소정의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의 하나로 해당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쉽게 말해서 “현실적인 관점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유동성의 확보 자체가 긴요한 경우가 적지 않음에 비추어 현저한 규모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저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가 될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해석으로 풀이하고 있다.

한편 경쟁을 통해 보험에 가입함으로써 막대한 비용을 절감한 하이닉스 사례는 본보기다. 수의계약방식으로 동일계열 또는 관계 손보사에 재벌그룹들이 물량을 몰아주는 행위가 부당지원임을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 기업보험 시장의 경쟁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은 짜고 치는 방식이다. 시장 아닌 이상한 시장으로 추락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공정위가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한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의 물류회사인 글로비스에 물량 몰아주기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의 계열사가 집단적으로 특정계열사에 물량을 몰아주는 행위는 분명 기업경영의 윤리적으로 볼 때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글로비스로 물량몰아주기 사례와 유사한 사례가 기업보험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업들이 자사 사업장에 대한 화재보험, 기계와 장비 등에 대한 책임보험, 수출과 관련된 보험들을 계열손해보험사에 가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보험을 동일 기업집단에 손해보험사에 공정한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가입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기업보험시장이 손보사 간 경쟁 시
스템에 의하지 않고 기업집단 손보사에 노골적으로 물량 몰아주기로 부당지원을 일삼고 있다.

최근 각 보험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3년(2003년~2006년까지)동안의 회계연도(FY)에서 삼성그룹 등 10개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동일 계열 손해보험사에 가입한 기업보험금 내역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삼성화재에 몰아주기 비율=2003년 96.2%, 2004년 95.2%, 2005년 97.0%, 2006년 97.8%로 거래규모는 2003년 3058억, 2004년 3530억, 2005년 3560억, 2006년 4099억원.

▲한화그룹 계열사가 한화손보에 지원 비율=2003년 39.6%, 2004년 44.4%, 2005년 27.4%, 2006년 68.9%. ▲동부그룹 계열사가 동부화재에 지원 비율=2003년 89.2%, 2004년 86.3%, 2005년 86.3%. 2006년 96.7%.


업계 “사업기밀 상 계열사 가입 불가피”

여기서 한화그룹과 동부그룹의 비율을 보면 같은 기업집단 소속 손보사에 입찰 없이 물량을 몰아주는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 과거 현대그룹에 기업집단으로 소속된 계열사들과 과거 LG그룹에 소속됐던 LG그룹과 GS그룹, LS그룹은 계열 분리된 이후에도 현대해상, LIG에 보험계약 90% 이상을 몰아주고 있다. (참고로 계열이 분리된 시기는 현대차가 2000년 8월, 현대중공업 2002년 2월, LG, GS, LS는 2005년 1월)

그러나 한진그룹과 메리츠화재와 같이 계열분리 과정에서 분쟁의 당사자였던 기업집단의 경우는 한진그룹 계열사가 과거 동일 집단에 소속됐던 메리츠화재에 계열사 보험을 계약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드러냈다. (한진그룹의 메리츠화재에 지원 비율=2004년 45.2%, 2005년 37.6%, 2006년 12.3%)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하이닉스는 2001년 계열분리 이후 경쟁입찰 방식으로 기업보험을 체결함으로써 보험료 규모로 57.5%의 절감 (2003년 23억, 2004년 20억,2005년 14억, 2006년 10억)했다.


시민단체 “직권조사로 부당지원 조사”

통상적으로 공개 입찰을 통해 계약을 체결할 경우 기업 간 경쟁으로 인한 보험료 인하 또는 보험료 책정의 적정성 여부의 검증이 가능하나, 수의계약의 경우는 이러한 절차가 전무해 과중한 보험료 부담이 소비자 및 해당 기업의 주주들에게 전가시키고 기업경쟁력 약화에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다른 업종 사례와 비교해보면 손해보험 시장에서의 그룹계열사에 물량 지원하기의 문제점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주식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삼성전자의 경우 휴대폰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삼성반도체는 물론 하이닉스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텔레매틱스 시장에서 현대와 기아자동차는 현대 오토넷과 LG전자 단말기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각 기업들이 ‘같은 식구’라 하더라도 경쟁력이 하락하면 과감히 거래처를 바꾸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기업 손해보험시장에서는 과거 관행이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현대그룹의 글로비스 물량 몰아주기 사례에서 알수 있듯이 계열사 지원하기 폐해는 그룹이 존속하는 한 몰아주기를 받는 기업은 커다란 리스크 없이 지속적으로 수익창출이 가능 하다는 것.

이로 인해 기업의 성패가 결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아닌 재벌과의 관계(소속된 협력 관계)에 따라 좌우되어 전체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 재야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손해보험 시장에서 재벌계열 보험사는 꿩 먹고 알 먹는 식으로 쉽게 매출과 수익을 창출한다.

상대적으로 계열사가 취약한 중소보험사의 경우는 경영이 둔화되고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

계열사에 물량 몰아주기식의 기업경영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모 경제학자는 “그런 비윤리적 경영방식은 해당기업의 경영진이 기업과 주주들에게 형사상 ‘배임’을 저지르는 행위”라고 지적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되는 것이고, 손보사 간 경쟁을 통한 경쟁력 향상을 저해함으로써 시장발전에도 크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의 한 간부도 “이번 결과에 대해 경제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는 강력한 직권조사를 실시해 계열사간 상호 지원을 통한 시장교란 행위를 전격 차단해 시장기능을 제고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결과에 대해 업계 측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그룹과 LG그룹의 공통된 주장은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은 신규 투자 및 사업 확장 등 기밀사업에 대한 정보 보안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자기계열 손보사에 보험을 가입하고 있다”면서 “손바닥 보듯이 빤한 투명한 경영 사회로 이뤄지고 있는 시대에서 계열 손보사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탈법이나 불법, 편법 행위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불쾌한 반응이다.

업계 주장과 관련 김영주 전 의원은 “반도체등 첨단산업을 논거로 자기계열 손보사에 보험을 가입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대규모기업집단 전계열사가 손보사에 지원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다”면서 “예를 들어 재계순위 부동의 1위인 삼성그룹에도 사업기밀 보안성이 비교적 덜 요구되는 계열사가 수도 없이 많다”고 반박했다.

그는 “기업들이 손보사에 가입하는 보험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단체상해보험 등 보안성이 전혀 인정될 수 없는 분야에까지 자기계열 손보사에 수의계약 방식으로 물량을 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업보안성을 이유로 주장하는 것은 택도 없는 주장”이라면서 “만약 사업기밀성을 이유로 자기계열 손보사에 물량을 몰아줄 수 밖에 없다면, 손보사가 유치한 타 계열 기업의 정보는 유출될수 있다는 논리도 될 수 있는데, 대외신인도가 생명인 금융산업에서 고객(회사)의 정보를 유출한다면 시장에서 즉시 퇴출될 것이며, 가입보험 내용의 보안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금융기관으로서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하이닉스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경쟁에 의한 보험 가입은 기업의 부담을 낮추고, 적정 보험료로 수렴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정상적인 시장의 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정혜영 기자 jhy@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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