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신문에 광고하기 겁난다”

일부 네티즌들과 정부의 ‘쇠고기 전쟁’이 전방위로 번져가고 있다. 최근 네티즌들은 촛불시위에 배후가 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대표 보수신문을 공격하고 나섰다. 방법도 쉽고 지능적이다. 문제의 신문에 광고를 게재한 광고주에 “더 이상 조·중·동에 광고하지 마라”며 압박을 넣는 것이다.
실제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는 ‘○월 ○일자 조·중·동에 실린 광고업체 리스트’가 매일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보수신문에 광고를 중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네티즌들의 광고 중단 요구로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에 광고를 철회하거나 자제하겠다고 밝힌 업체는 19일 현재 10곳을 넘어섰다. 네티즌들 공격의 표적이 된 기업들의 실태를 알아봤다.
지난 6월 10일 조선일보 1면 하단에 입시설명회 광고를 냈던 송파청솔학원 홈페이지는 이날 방문자가 폭주하면서 서버가 일시 다운됐다. 하루 종일 걸려온 항의전화만도 100여통이 넘었다.
이에 따라 학원측은 이날 오후 홈페이지를 통해 “조선일보 광고 게재를 사과드린다”며 민심을 수습하려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수백 개의 비난성 글이 홈페이지를 가득 매운 것은 물론, 항의전화도 빗발쳤다.
이뿐만 아니다. 문제의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도 “조선일보에 계속 광고를 내면 아이를 다른 학원으로 옮기겠다”고 들고 일어났다.
이와 관련 학원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예정돼 있던 거라 바꾸지 않고 나간 건데 이렇게 반발이 거셀 줄 몰랐다”며 “이래서야 겁나서 조중동에 광고하겠느냐”고 성토했다.
광고 중단 요구에 곤혹
보수언론에 광고했다가 된서리를 맞은 기업은 이뿐만 아니다. 지난 11일에도 두 개의 기업이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었다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11일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케이티여행사는 이날 끊이지 않는 네티즌 항의전화에 업무가 마비돼 서둘러 임직원 일동 명의로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케이티여행사는 이날 팝업 공지문을 통해 “금일 조선일보 광고에 대해서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며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는 광고를 내지 않겠으니 이 점 참고해 주시고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공지했다.
요진건설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 요진건설은 자사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이번 광고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수립된 마케팅 계획에 의거하여 집행된 것으로써 여러분들이 지적하신 특정 언론매체뿐만이 아니라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국민일보, 한국일보, 경제신문, 기타 지방신문 등 매우 다양한 매체에 분산되어 계획돼 있다”며 “향후 언론매체의 광고를 집행함에 있어서는 당사 영업에 다소 지장이 초래되더라도 국민 정서를 고려하여 더욱 신중을 기하도록 할 것”이라고 사과문을 올렸다.
홈페이지에 팝업을 띄우지는 않았으나 향후 조·중·동에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한 기업들도 잇따랐다.
모 그룹의 정유회사는 네티즌이 보낸 이메일 답변을 통해 “조선일보 광고는 10일까지만 게재되며 더 이상 광고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국민 여러분이 심정적으로 성원하고 있는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으로 광고 게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 그룹의 카드회사도 “조선일보에 당사 광고가 나간 것은 한 달 전에 이미 계약된 것이며 당분간은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할 계획이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라고 답신 메일을 보냈다.
실제 광고업계에서는 최근 “조중동에 광고하기가 겁난다”는 얘기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와 관련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도 굳이 욕까지 들어먹으면서까지 광고할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며 “어차피 제품판매 광고라면 모를까 기업 이미지 광고의 경우 광고게재로 비난을 산다면 그것은 광고를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고국 “못 살겠다”
광고주들의 잇따른 광고 중단 결정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조선·중앙·동아일보다.
실제로 한 광고국 관계자는 “조중동에 주로 실리는 분양 광고의 경우 광고가 게재된 날 독자들로부터 몇 통의 문의 전화가 오느냐가 관건인 곳인데, 광고가 나가면 항의전화가 쇄도할까 봐 하지 않겠다고 번복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기업체들이 시민들의 항의 전화와 불매 운동을 의식해 ‘약정한 광고비는 줄 테니 지면에 싣지 말아 달라’고 할 정도”라며 “주요 광고주들마저 이런 상황이다 보니 광고국 분위기가 거의 패닉 상태”라고 전했다.
한편 19일 현재 조선·중앙·동아일보에 광고게재 중단을 선언한 기업은 광동제약을 비롯해 명인제약, 농협목우촌, 르까프, 신선설농탕, 보령제약, 삼양통상, 신일제약, BBQ, 서울척병원, 천재문화, 유천칡냉면, 오마샤리프화장품, 고려이스쿨 등이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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