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확장? 집안싸움? 현대가 ‘세포분열’ 어디까지…

범현대가(家)가 집안끼리 순위다툼을 벌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그룹 등 현대라는 같은 뿌리에서 탄생했으나 2004년 계열분리 뒤 증권, 건설사 등을 앞 다퉈 세워 밥그릇 싸움이 한창이다. 같은 업종에서 맞부딪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이미 오래 전부터 현대증권으로 증권가에 자리 잡았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지난 1월 신흥증권을 인수해 증권업에 진출했다. 현대중공업은 CJ증권을 인수했다. 범현대가(家)의 그룹사들이 최근 잇따라 사업영역을 키우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현대가의 ‘적통 승계’를 둘러싸고 현대건설 인수전 등 난타전을 벌이고 있어 끊임없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범현대가가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입지는 탄탄하다. 정주영 창업주 사망 이후 2004년 세 갈래로 나뉜 뒤 각자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자산 기준으로 재계 서열 3위까지 올랐다. 현대중공업도 조선업 호황세를 맞아 지난 2005년 주가가 5만원대에서 지난연말 55만원대까지 오르는 등 성장세를 이어왔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계열사의 현금보유액은 무려 8조원에 달한다.
시너지 없는 심각한 집안싸움 지적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 올해가 최적기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증권업의 미래 성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그룹과의 시너지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이다. 자연스럽게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성장동력을 다각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금융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인수합병(M&A), 자금조달 등 투자금융(IB) 업무를 강화해 증권사를 그룹 내 핵심사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현금자산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그룹이 시중금리로 자금을 운용한다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5~6%의 시중금리로 8조원에 달하는 현금자산을 운용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기에 증권사는 물론 적절한 자산운용사도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대형 M&A를 앞둔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도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증권사를 갖고 있으면 M&A를 위한 자본조달이 쉽다. 특히 이번 증권사 인수는 ‘현대건설’ 인수전을 의식한 ‘사전포석’이라는 애기도 흘러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모태이기 때문에 현대건설을 되찾는 것은 현대그룹 정통성 회복을 의미한다”며 “금전적 가치를 넘어 적통승계를 위해 신경전이 치열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그룹도 증권업계에 진출한 이유는 충분하다. 신흥증권에서 이름이 바뀐 HMC투자증권은 지난 4월 사업 운영전략을 발표하면서 현대차그룹 관련 시너지를 최대한 활용해 특화된 사업모델 개발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자통법 이후 금융업을 성장동력 중 하나로 보고, 기존 현대차그룹의 금융사와 지점망을 이용하면 초기 투자비용 대비 단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차원에서도 확보된 황금어장을 남에게 주기 아까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계열사인 엠코 등 비상장사의 상장 물량도 충분하고 그룹사와 연계한 주식매매 물량도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HMC증권 울산지점 3곳 동시개점
현대차그룹의 인하우스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의 성장속도는 거침없다. 설립 이듬해인 2006년 단숨에 3위로 뛰어올랐다. 이노션이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 물량을 취급하는 규모는 연간 2000억원이 넘는다.
서로간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현대·기아차는 신흥증권 인수하고 사명을 ‘현대IB증권’으로 했다가 ‘현대차IB증권’으로 바꿨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현대증권으로부터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신청 소송까지 당한 뒤 다시 ‘HMC증권’으로 바꾸며 ‘현대’란 간판을 내려야 했다.
현대중공업도 앞의 소송을 관망한터라 CJ투자증권의 사명을 바꾸며 ‘현대’라는 명칭을 쓰기 어려울 듯해 고민하는 모습이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2조2600억원의 자기자본을 확보하며 업계 3위로 부상했다. 반면 현대차의 HMC투자증권과 현대중공업의 CJ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각각 1708억원, 1969억원 정도로 아직은 열세다. 점포수도(현대증권 130, HMC투자증권 17개, CJ투자증권 46개) 비교조차 어렵다.
그러나 강력한 스폰서를 등에 업고 있는 HMC투자증권과 CJ투자증권의 성장 잠재력도 만만치 않다. 울산에서의 3사 간 전쟁은 향후 얼마나 경쟁이 치열할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현대증권이 울산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현대광역시’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현대’라는 간판만 걸어도 자연스럽게 장사가 된다.
현대증권의 울산 지점은 모두 10개로 부산, 대전 등 다른 광역시 지점 수보다 2배 이상 많다. 울산이 그만큼 핵심 영업지역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HMC투자증권이 현대차그룹 텃밭인 울산 지역에 신규 지점 3곳을 동시에 개설하기로 하면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HMC투자증권이 계열사를 활용해 누릴 만한 시너지효과는 다양하다. 현대차그룹의 판매 채널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HMC투자증권의 점포수는 17개에 불과하다. 2010년까지 전국 점포수를 50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100~150개에 달하는 대형사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하지만 현대차 대리점에 별도 창구를 마련해 현대차 고객 및 개인투자자 대상으로 CMA나 펀드 판매에 나설 경우, 고객과의 접점은 시중은행과 비슷한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대리점 수는 900개 이상으로, 메이저은행과 맞먹는 숫자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투자긍융(IB)에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8조원의 현금을 자기자본투자(PI)나 선박금융, M&A 등에서 다양하게 그룹과 연계할 수 있다. 때문에 최근 2개뿐인 IB팀을 4개로 늘렸고 향후 인원을 더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건설시장도 집안경쟁
현대건설·현대아산·엠코 삼국지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산하 현대아산은 최근 건설 부문 비중을 키우며 종합건설사로 변신 중이다. 금강산·개성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 대북 사업 전문기업으로 알려진 현대아산에서 건설부문 실적도 늘었다.
현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적극적으로 사업 기반을 확대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힌바 있다. 현 회장은 올해 들어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최고경영자(CEO)를 한꺼번에 교체하며 ‘친정 체제’를 구축했고,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강한 의지도 표명했다.
지난해 현대아산 건설부문 매출은 1100억원으로 총 매출액 2600억원의 42.3%를 차지했다. 현대아산은 올해 건설부문 매출 비중을 47%로 올려 잡았고, 아파트 사업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건설 인수·합병(M&A)에 나서기에 앞서 건설업을 각인 시키려는 작업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김성만 현대상선 사장은 “현대아산과 연계하면 시너지효과도 있고, 그룹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현대건설을 반드시 인수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아산의 건설부문 강화는 곧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시너지 효과’라는 협상의 카드가 된다. 현대차그룹의 엠코도 건설부분에서 아성을 떨치며 성장하고 있다. 엠코는 그룹사 물량을 발판으로 설립 5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계열에 속한 기업집단으로부터 물량을 지원받았을 때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엠코는 해외진출도 활발하다. 베트남 하이퐁시 620만㎡ 부지에 2016년까지 골프장과 호텔, 상업시설 등이 어우러진 복합리조트를 건설할 계획이다. 설립 6년째인 엠코는 시공능력 평가순위는 31위다.
하지만 업계가 바라볼 때 엠코는 이미 베테랑 건설사다. 현대家가 분가하면서 정몽구 현 현대차그룹 회장 밑으로 모인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 출신 베테랑 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 엠코는 현재 약 60%의 현대건설 출신들과 25%의 현대산업개발 출신, 그리고 나머지는 KCC 등 범 현대家 건설사 출신들로 임직원들이 구성돼 있다.
현재 국내 건설업계 5위권 건설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두 회사에서 건설밥을 먹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직장은 옛날 직장과 다르지 않았다.
국내외에서 독자적인 사업역량을 키워 오는 2010년 건설업계 톱10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최근 해외에서 합작 해운사를 세우며 해운업에 손을 뻗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나이지리아 국영기업과 액화천연가스(LNG) 운송 합작선사를 설립했고, 지난 4일에는 중국 하이난항공그룹 자회사와 벌크선 해운업을 위해 50:50 비율로 합작 벤처를 세웠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중공업이 해운업에 본격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현대상선까지 관심을 둔 행보가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2006년 대표적인 해운사인 현대상선의 외국인 지분을 대거 사들이며 현대그룹과 대립했다. 현대중공업은 지금도 현대상선 주식 25.95%와 우호세력인 KCC측 지분 6.09%를 확보한 대주주다.
여전히 태풍의 핵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의 덩치와 지분 관계로 볼 때 새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현대가의 판도가 달라지고 증권과 건설, 해운사 명암도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종훈 기자 f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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