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 거대통신업체에 장단 맞추나?”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IPTV) 사업의 근간이 되는 IPTV법 시행령을 앞두고 ‘콘텐츠 동등 접근권(PAR: Program Access Rule)’이 최대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미디어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사업 허가권자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PAR를 IPTV에 제공되는 콘텐츠 중 ‘주요 방송 프로그램’으로 지정된 경우 모든 IPTV 사업자가 같은 조건으로 공급받는다는 것을 시행령에 담으려 했다. 그러나 지상파와 케이블채널(PP)들은 주요 채널을 통째로 IPTV 사업자에게 강제 공급하는 독소 조항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IPTV법과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졸속 추진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IPTV 시행령 제정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콘텐츠 동등 접근권’을 둘러싼 방송계와 통신업계의 논란이 거세 개선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달 열린 IPTV 시행령 공청회에서 방송업계와 통신업계 진영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열띤 공방을 벌였다.
케이블TV방송계는 “시행령에 명시된 ‘콘텐츠 동등 접근권’은 케이블TV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독소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통신업계는 “진입장벽 완화와 이용자 편익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콘텐츠 동등 접근권이 과연 케이블TV가 장악하고 있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거대 통신자본을 등에 업은 KT 등 IPTV 업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애물단지 조항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대해 IPTV 시행령을 제정하는 방통위는 “콘텐츠 동등접근은 유료방송 시장의 공정경쟁 차원에서 도입하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방송 vs 통신사업자 평행대립
IPTV 사업을 희망하는 통신업체들은 “새로운 IPTV 사업자에게 기존 방송의 콘텐츠가 의무전송돼야 시청자가 늘어 사업이 조기에 안착할 수 있다”며 PAR의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방통위도 시행령 초안에 이 규정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IPTV법에 ‘기존 채널(PP)들이 IPTV 사업자가 되지 않겠다며 신고를 하지 않으면 PAR를 적용받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어 방통위가 무리수를 둔다는 비판도 뒤따르고 있다.
케이블TV와 지상파 업계는 “PAR 조항 삽입 주장은 공공 콘텐츠와 민간 콘텐츠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됐다”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사업자간 자유계약 및 영업의 기회를 제한하는 데다 콘텐츠 사업자의 사유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아울러 ‘주요 프로그램’ 지정 조건도 ‘보편적 접근권(UAR)’ 개념까지 혼재돼 문제투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KT 미디어본부 심주교 상무는 “PAR가 적용되는 주요 프로그램은 전체의 10% 안팎이다. 현행 시행령 초안으로는 사업 추진을 잘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CJ미디어 강석희 대표는 “PP 사업자가 선택권을 갖고 자유계약을 통해 제값을 받고 공급해야 콘텐츠 산업이 발전한다”고 반박했다.
거대 통신업체 시장지배 위험수위
케이블TV업계는 ‘콘텐츠 동등 접근권’ 조항이 불공정할뿐아니라 결국 업계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격양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성관 MBN 이사는 “소규모 사업자를 보호하려는 콘텐츠 동등 접근권을 IPTV 산업에 적응하는 것은 올챙이가 노는데 황소개구리가 덤비는 격”이라며 “거대 통신기업들이 시장지배력 전이 방지 조항을 어겼을 때 벌칙조항이 없어 이것도 보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덕선 큐릭스 대표도 “IPTV 도입명분으로 콘텐츠 다양성을 얘기하면서 콘텐츠 동등 접근권을 통해 케이블TV사업자의 콘텐츠를 모두 IPTV에 제공토록 하고 있다”며 “케이블TV와 IPTV의 콘텐츠가 100% 동일하면 남는 건 가격경쟁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익명을 요구하는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거대기업 편에 서는 것이 어찌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 방통위(구 정통부) 인적구성에 문제가 많다”며 “옛 정통부 직원이 명퇴나 퇴직 후 KT, SK그룹 등으로 가서 거액 연봉자로 있다 보니 결국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이같은 주장에 반박한다. 방통위 관계자는 “사실무근이고 법령의 기본 원칙은 사업자간 자율협상이지만 모든 채널을 사업자간 자율에 의존한다면 소비자들의 기본 시청권이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콘텐츠 동등접근’조항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사업자들도 현행 시행령으로도 IPTV사업 추진에 난항이 많아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이상헌 하나로텔레콤 상무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지배를 받고 있는 채널사용사업자(PP)들이 과연 IPTV 콘텐츠사업자로 신고·등록할지 의문”이라며 “처벌 규정도 없어 강제할 수 없기에 시장진출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을 따지고 보면 ‘콘텐츠 동등접근’ 조항은 케이블TV업계만의 불만이 아니다. 케이블TV업계가 가장 위협을 느끼고 있고 불만스러운 대목은
법으로 KT IPTV사업을 자회사로 분리시키지 않고 회계분리 규정만 둔다는 점이다.
한국케이블협회 유세준 회장은 “시행령에서 자회사 분리를 명시해야만 KT 같은 거대기업의 기존 전화가입망 등을 통해 지배력 전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방통위 입장은 난감하다. 이미 IPTV 법에 KT의 IPTV 사업조건을 ‘자회사 분리’로 명문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령 규제수위를 더 강화할 수 없는 탓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시행령에서 회계분리를 규정했기에 자회사 분리를 하지 않아도 고시를 통해 회계분리를 강력히 규제할 방침”이라고 답했다.
영세 PP 고사 위기
IPTV 사업은 당장 독자적인 방송사업으로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업 희망주체들마다 ‘TPS(TV+초고속인터넷+집전화)’나 ‘QPS(TV+초고속인터넷+집전화+이동전화)’를 수익 모델로 설정하고 있다.
시행령에 PAR가 적용돼 IPTV 사업이 시작되면 방통위의 논리대로 초기부터 IPTV 업체 간 요금인하 경쟁을 벌여 이용자들은 싼 값에 복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80개에 달하는 PP 가운데 주요 PP에 들지 못한 영세한 PP들은 고사될 우려가 크다.
업체 간 요금인하 경쟁 심화로 사업체의 수익성이 저하, 주요 PP들조차 제값을 받기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방송 콘텐츠는 지상파와 CJ 등의 자체제작 콘텐츠를 제외하면 대부분 해외서 수입한 영상물이기 때문에 IPTV용으로 들여올 경우 수입 가격이 치솟아 PP업체들의 부담이 늘게 된다. 왜냐하면 해외제작사들이 케이블TV 방영 저작권료와 별도로 IPTV 저작권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부담은 소비자 몫이다. 비싼 IPTV 단말기를 샀던 소비자들도 나중에는 불만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서울산업대 매체공학과 최성진 교수는 “IPTV라는 새 매체를 도입하면 사업자들에게 골고루 사업권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국민(소비자)에게도 기여하는 것인데, 과거 이동통신 사례를 보면 왜곡이 많이 일어났다. 그동안 네트워크와 단말기는 가치사슬을 형성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콘텐츠 시장은 거의 없다.
결국 지금처럼 거대업체가 흡수하는 식으로 흘러가면 거대업체간 가격경쟁이 과열되고 자꾸 값을 내리면 결국 콘텐츠(PP)의 질은 저하될 것이다. 많은 사업자가 참여하려면 현 거대업체 통신망도 개방(임대)하고 콘텐츠 사업도 법적인 구조 속에 넣어서 발전시켜야만 사업의 성공이 가능하다.”고 시장의 왜곡현상에 대해 꼬집었다.
#방송-통신 융합시대 선결과제
케이블TV업계가 방송·통신 융합을 활성화하기 위해 규제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이 통신사업자와의 대등한 경쟁을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케이블사업자들은 공정경쟁 기반 마련을 통한 케이블과 통신사업자와의 경쟁 활성화를 통해 가계통신비 인하 및 서비스 고도화 등 소비자 권익이 증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활성화 차원에서도 케이블의 규제를 완화할 경우, 투자도 활발해질 뿐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케이블TV 사업자들은 기존 MSO 권역 제한을 대폭 완화하는 한편, 지역 민방과 SO의 겸영을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현 유료방송의 가격 상한제를 폐지하는 한편, 사업자간 출혈 가격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수립도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기술규제 완화차원에서는, 올 하반기 IPTV와 전면전을 앞두고 디지털 셋톱박스의 케이블카드 장착 의무화 폐지를 지적하고 있다.
“통신업계도 진입 장벽 낮춰라”
컨버전스 서비스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케이블TV 업계는 유·무선 융합서비스로 보다 확대하기 위해 이동통신 시장의 진입 장벽이 완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선시장을 대표하는 KT의 경우 자회사인 KTF와 와이브로 사업을 통해 유·무선 융합 서비스를 실현하고 있고, SK텔레콤 역시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통해 서비스 간 결합을 확대하는 반면, 케이블사업자들은 이통시장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 서비스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제도의 조속한 도입과 케이블사업자의 이동통신시장 진출을 위한 주파수 자원 배분에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 케이블 업계의 주장이다.
통신사업자와 동등한 경쟁기반 요구
방통위가 추진 중인 IPTV법 시행령과 관련, 케이블TV 업계는 “방송사업자들의 규제가 전혀 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종 매체인 IPTV의 시장 활성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공정경쟁 원칙에 어긋난다”며, “시장 지배적 사업자는 별도법인으로 IPTV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조항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융합서비스 하에서는 특정사업자의 독점이 가속화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IPTV 활성화에 나서되, 사업자의 자율적 시장경쟁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특정사업자의 지배력 전이를 확실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외에, 인터넷전화와 관련한 규제완화 및 번호이동성 제도의 개선, 상호간 접속료의 합리적 산정 등이 공정경쟁 기반을 위한 제도 개선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디지털콘텐츠 활성화, 정부가 나서야
규제 개선차원은 아니지만, 케이블TV 업계는 디지털콘텐츠 활성화를 위해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은 한미 FTA 방송 개방에 따른 해외 콘텐츠의 대량 유입과 국내 디지털방송콘텐츠의 산업 경쟁력 부재로 붕괴 우려가 있는데다, 방·통 융합에 따른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방송 콘텐츠 개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케이블업계는 PP협의회를 중심으로 디지털 방송콘텐츠 진흥에 관한 특별법안’ 제정을 건의한 상황으로, 진흥법안의 핵심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방송콘텐츠진흥위원회 구성 ▲방송콘텐츠진흥 기본계획 수립 ▲실질적인 방송콘텐츠사업 지원책 마련 ▲방송콘텐츠 진흥기금 조성·운영 등이다.
실질적 지원책으로는 공동제작센터 및 방송콘텐츠 집적단지 설립을 통한 전문방송 콘텐츠 제작기반 조성, 디지털 전환 촉진, 국내·해외 유통 활성화 방안 마련, 콘텐츠 포맷 개발 및 국내외 공동제작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종훈 기자 f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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