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왕자’ 잡으면 재계순위 바뀐다

기업 인수ㆍ합병(M&A)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시장에는 입맛 돋우는 매물들로 하나 가득이다. 실제 대우조선해양ㆍ현대건설ㆍ하이닉스반도체 등 ‘대어(大魚)’가 한꺼번에 새 주인을 찾는다. 한 곳만 사들여도 재계 판도를 뒤집기엔 시간문제다. 성장에 목마른 기업들은 너도 나도 돈 보따리를 풀 태세다. 올해 최대어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에는 포스코ㆍGS그룹ㆍ한화그룹·두산그룹 등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당초 예상됐던 매각금액은 6조~7조원에서 10조원으로 불어났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쟁이 예상되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각 그룹사들의 ‘비밀병기’를 미리 엿봤다.
포스코
막강한 자금력↑ 높은 외국인 지분 부담↓
“공동인수라도…” 경영진 의지 확고
포스코는 대우조선해양을 노리는 주요 경쟁자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다.
포스코의 최대 강점은 자금력. 동원할 수 있는 내부유보금만 해도 22조원에 달한다. 단기간에 현금화할 수 있는 당좌자산도 5조6000억원이다.
경영진의 인수 의지도 어느 후보 못지않다. 아직 별도의 팀을 구성하진 않았지만 기존 재무라인을 중심으로 철저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실무 총책임은 기획재무 부문장인 이동희 부사장이 맡게 될 전망이다. 이 부사장은 포스코 내에 최고 ‘재무통’으로 통한다. 주요경력도 예산실장, 자금관리실장, 자금재무담당상무, 자금재무담당전무 등 모두 재무 쪽이다.
이번 M&A를 직접 담당하는 부서는 경영기획실내 전략기획그룹. 경영기획실은 기획통인 이영훈 상무가 이끌고 있다.
이 밖에 재무를 맡고 있는 박기홍 상무도 지원 사격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포스코가 다른 기업과 힘을 합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구택 회장은 최근 “컨소시엄 구성도 생각하고 있다”며 “꼭 포스코 혼자서 한다는 고집은 없다”고 말했다.
‘최선(단독 인수)’을 추구하다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 것보다는 ‘차선(공동 인수)’의 카드를 사용해 당첨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이렇듯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포스코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외국인 지분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글로벌 철강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철강 외의 사업 부문에 역량을 배분하는 것은 철강업계 M&A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를 살 수 있다.
여기에 철강 생산자가 철강 소비자인 조선·중공업 기업을 인수한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STX조선의 반발도 거세다.
GS
시너지 효과 기대↑ 보수적 베팅성향 발목↓
“중공업 진출 기회” 치밀한 계획
GS그룹은 2005년 출범 당시부터 3년간 치밀하게 인수를 위한 정지 작업을 해왔다.
GS는 현재 조선업과 해양플랜트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국내외 다수 SI(전략적 투자자)들과 공동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투자 수익만을 기대하는 FI(재무적 투자자)보다는 대우조선해양과의 사업적인 시너지 효과 창출과 대우조선해양의 글로벌 성장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또 GS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원유와 가스를 시추ㆍ생산하는 장비를 리스하는 등의 신규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특히 GS계열사인 GS칼텍스는 대우조선해양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에너지 관련 선박의 주요 고객인 중동 산유국 정부 및 석유 메이저 기업들과의 오랜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업 확대에 힘을 보탤 방침이다.
현재 GS는 지주회사인 GS홀딩스의 직원을 주축으로 30여명의 전담팀을 구성해 국내외 전문기관 및 전략 컨설팅업체 등과 인수 전략을 조율하고 있다.
인수추진팀의 수장은 서경석 GS홀딩스 사장으로, 자금 등 전체 인수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GS홀딩스의 사업지원팀장을 맡고 있는 임병용 부사장도 상임 법률고문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M&A를 통한 신규 사업 추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여기에 20%대의 낮은 부채비율 또한 GS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풍부한 자금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인 ‘베팅’에 약해 성공을 확신하긴 무리가 있다.
GS그룹은 하이마트에 이어 대한통운 인수전에서도 막판에 머뭇거린 탓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한화
플래트 등 동반성장↑ 높은 부채비율 한계↓
김승연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
뒤늦게 인수전에 가세한 한화의 강점은 김승연 회장의 ‘한다면 한다’는 강력한 추진의지다. 그룹 총수가 인수하겠다고 팔을 걷어 부친 마당에 공격적인 가격을 쓸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끝내 이루고야 마는 김 회장의 성격을 잘 아는 한화그룹 임ㆍ직원들은 김 회장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선언 후 눈ㆍ코 뜰 새가 없다.
비록 오래전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분석 작업을 해왔지만 최근 김 회장이 직접 M&A를 진두지휘하고 나서 그 압박감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박시장의 ‘큰 손’인 그리스와의 친분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스 땅에서 한화의 영향력은 큰 편이다. 지난 1992년 그리스 금융당국으로부터 은행영업 허가를 취득, 아테네 은행을 사 들인 게 단적인 예다. 김승연 회장은 김종희 창업주에 이어 2대째 주한 그리스 명예 총영사를 맡고 있다.
한화가 그리스와 함께 강조하는 두 번째 카드는 해외자원개발 분야의 시너지 효과다.
한화는 지난해 석유 가스전을 비롯해 우라늄 유연탄 등 국외 광산 지분 매입에 나섰고 올해도 6~7개 광구 개발에 참여할 계획이다.
작년부터는 해외 플랜트 시장에도 본격 뛰어들었다.
작년 12월과 올 1월 라즈아즈자우르 주베일 등 사우디아라비아 2곳에서 사업을 따냈고 지난 2월에는 사우디에서 5억4000만달러짜리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그러나 문제는 200%가 넘는 부채비율 등 취약한 재무구조다.
연결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해도 현금성 자산은 1조2000억원 수준이다. 포스코 등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보군 기업 중 자금 동원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도 이때문이다.
두산
대형 M&A 경험 풍부↑ 노조와 불화 우려↓
‘월척 낚은 노하우’ M&A 드림팀
두산은 대형 M&A에 수차례 성공한 경험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 최고경영진부터 재무담당 임원, M&A담당 실무자들까지 대부분이 이 분야 베테랑이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도 박용성 회장이 전체적인 그림을 만들고, 박용만 회장이 직접 인수전을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박용만 회장은 소비재와 서비스 중심의 두산을 중공업그룹으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굵직굵직한 M&A를 통해서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코닥, 네슬레, 코카콜라, OB맥주 등을 처분하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밥켓 등을 인수하는 과정이 모두 박 회장의 손을 거쳤다.
그룹 M&A를 전담하는 기업금융 프로젝트(CFP)팀은 이상훈 두산 부사장과 이상하 두산인프라코어 전무가 총괄 지휘한다.
이상훈 두산 부사장은 컨설팅사인 맥킨지 출신으로 그룹내 M&A 업무를 주도하고 있다. 이번 인수전에서도 ‘키맨’역할을 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M&A 실무를 전담하는 CFP팀은 10여명의 소수정예로 구성돼 있다.
수많은 M&A를 동일한 멤버가 동일한 팀워크로 일해와 상대방의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업계에서는 ‘드림팀’으로 불린다.
그러나 두산은 합병한 회사의 노조와 번번이 불화를 겪어 조직융화엔 소질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자금력 한계도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두산에도 ‘실탄’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M&A 하겠다고 선뜻 내놓을 게 못된다. 그룹 사옥으로 쓰이는 동대문 두타 건물과 주류사업 등이 바로 그 ‘실탄’이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에 사활 건 까닭
지난 3월 20일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해서는 몸집을 가볍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분을 떠안게 된 회사들의 지분을 매각한다는 신호였다.
산업은행이 지분을 가진 주요 회사로는 △대우조선해양(산은 지분율 31.26%) △대우증권(39.09%) △현대건설(14.69%) △하이닉스(7.1%) 등이 있다.
전 위원장의 발언이 있고 딱 일주일 만에 산업은행은 우선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절차부터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대형 매물이 시장에 나온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인수 예상 가격만 7조원대가 넘는다. 이제까지 국내 최대 M&A인 신한지주의 LG카드 지분 인수액(6조6000억원)을 넘길 초대형 빅딜이다.
매물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구애’를 보내는 기업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당장 포스코, GS, 한화, 두산 등 대형 그룹들이 관심을 보이며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국내 유수 그룹들이 대우조선해양에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신성장 동력 확보다.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2010년 매출액 11조원, 영업이익 1조원의 알짜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기술력도 매력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3위의 조선업체로 시추설비에서 생산설비에 이르는 해양자원개발 설비를 모두 건조할 수 있는 유일한 업체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종 중심의 상선 부문과 군함, 잠수함 등 국가방위산업, 그리고 성장가능성이 큰 해양플랜트 부문 등 사업 포트폴리오도 탄탄하다.
더구나 자산 8조원의 대우조선을 품에 안을 경우 재계 판도까지 바꿀 수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자산총액은 8조7000억원으로 이미 재계 22위(공기업 제외)에 올라 있다.
현재 6위인 포스코(자산액 38조5000억원)가 인수하는 경우 롯데(43조7000억원)를 제치고 5위로 올라서게 된다.
7위의 GS(31조1000억원)는 포스코를 제치고 6위로 올라서게 된다.
12위의 한화(20조6000억원)는 KT, 금호아시아나, 한진 등을 제치고 9위에 오르게 되고, 13위의 두산(17조원)은 한화를 제치고 12위에 올라 한진을 추격하는 형세가 된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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