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 ‘초상집’
우리금융지주 ‘초상집’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8-05-28 10:32
  • 승인 2008.05.28 10:32
  • 호수 735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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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등 전격교체 경영공백 불 보듯
박병원 · 박해춘

지난 5월 7일 금융위원회 등이 발표한 금융공기업 기관장 재신임 결과에 해당 기관의 희비가 뚜렷이 갈렸다. 충격이 가장 큰 곳은 우리금융지주. 박병원 회장을 비롯해 박해춘 우리은행장, 정태석 광주은행장, 정경득 경남은행장 등 우리금융 수장들이 모두 중도하차하게 된 까닭이다. 특히 박해춘 행장의 경우 재신임 될 것이란 모두들의 예상을 깨고 보기 좋게 낙선해 충격을 더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우리금융지주를 들여다봤다.

우리금융지주가 충격에 빠졌다. 박병원 회장과 박해춘 우리은행장 등 4명의 최고경영자가 동시에 물러나게 된 것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금융위원회 발표가 있던 지난 7일, 우리금융지주는 그야말로 ‘초상집’을 연상케 했다.

당초 우리금융 내부에선 박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CEO들은 재신임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히 재신임 가능성이 높아보였던 박해춘 행장의 교체 통보는 우리금융 직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제 박 행장은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 방미 수행단에 포함되는 등 새 정부 신임을 받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부 반대세력에 부딪히면서 박 행장의 재연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와 관련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박 행장의 경우 민간 금융 전문가 출신이라는 이력과 구정권 코드 인사라는 평가가 엇갈려 막판까지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웠다”고 귀띔했다.


박해춘 우리은행장도 ‘탈락’

또 박병원 회장의 경우 관료 출신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꼽혔다. 참여정부 코드 인사로 분류하긴 어렵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세금폭탄’으로 원성을 샀던 게 문제가 됐다.

이에 우리금융 일부에서는 “재신임 기준이 뭐냐”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박해춘 우리은행장이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보여준 양호한 경영 실적도 정부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실제 우리은행은 박 행장 재임기간에 미국발 금융부실(서브프라임) 사태란 악조건에서도 분기마다 수천억원의 순이익을 냈고, 신용카드 부문의 시장점유율도 2.9%포인트 높였다.

이와 관련 우리은행의 한 간부는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정부가 대주주라고 하지만 공모 절차를 거쳐 선임된 CEO를 뚜렷한 명분 없이 교체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가에서 떠도는 얘길 듣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CEO 4명이 일제히 그것도 갑작스럽게 교체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면서 “환율 상승과 경기 침체 등 지금처럼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경영의 연속성이 얼마나 유지될 지 걱정스러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탓인지 최근 금융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유임과 교체 결정 기준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공기업 기관장 재신임 결과’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금융위가 교체 기준에 대해 추상적 설명만 했을 뿐 별도의 브리핑이나 설명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계 한 인사에 따르면 이날 금융위는 A4 두 장짜리 보도 자료만 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각종 억측과 해석이 금융계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간부는 박해춘 행장 교체 결정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우리은행장을 원한다는 말이 금융가에서 파다하게 나돌았다”면서 “측근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박 행장을 무리하게 밀어낸 게 아니냐”고 조심스레 귀띔했다.

그러나 우리금융지주로선 길게 낙심할 때가 아니다. 4명의 CEO들이 모두 중도하차함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그 빈자리를 메꿀 후임자를 선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수석부회장 및 수석부행장 제도가 폐지되면서 업무를 총괄하는 임원이 현재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등기임원도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박 회장 혼자뿐이다.

상황은 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은행의 경우 이순우 개인고객그룹 부행장이 등기임원으로 등제돼있지만 총괄 부행장이 아닌 까닭에 직무대행을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박증환 경남은행 감사를 제외하곤 감사 역시 모두 교체됨에 따라 사실상 내부통제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경영진들이 없다.

쉽게 말해 후임자 선정 때까지 책임자 없이 시스템에 의존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금융위에 불만 경영공백 불가피

그렇다고 후임자 선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먼저 후임자 선정을 위해선 사외이사 3인, 외부전문가 3인, 주주대표 1인으로 구성된 후보추천위가 출범해야 한다.

이후 추천위에서 공고를 내고 지원서를 접수, 서류심사를 통해 후임자를 선정하게 된다. 우리금융 산하인 우리·경남·광주은행장 선임도 이 같은 과정을 거친 후 이사회에서 확정한다.

하지만 업계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데만도 한 달 이상은 족히 걸린다고 입을 모았다.

또 적합한 후임자가 나타나더라도 초기 업무 파악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업무공백은 두 달 이상 지체될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전언이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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