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정치후원금 편법지원 백태
고액 정치자금을 제공하면서 신원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 명단 공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소지에 ‘서울 양천구 목1동 ○○○번지’라고 적고, 직업란에는 ‘기업인’이라고 기재해 기부자가 누군지 쉽게 알 수 없도록 하는 식이다. 특히 여야 후보 중 누가 뽑힐지 몰라 ‘분산투자’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기업인들의 정치후원금 편법지원 백태를 고발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정보공개 청구에 따라 언론에 공개한 <2007년도 12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에 따르면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여야 의원에게 후원금을 고루 납입했다. 여·야 모두에 ‘보험’을 들어 놓은 셈이다.
백 회장은 통합민주당 김종인 의원에게 500만원을,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에겐 250만원을 후원했다. 직업란에는 각각 ‘사업가’와 ‘회사원’으로 적혀있다.
영안모자 관계자에 따르면 백 회장과 김종인 의원은 20년 이상 알고 지낸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여야 분산투자가 기본?
이와 달리 현대백화점의 경우 두 고위임원이 여야에 따로 후원금을 지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동호 현대백화점 부사장은 통합민주당의 △노영민 △변재일 △이계안 △이시종 △오제세 △최재천 △홍재형 의원에게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후원금을 전달했다.
반면 경청호 현대백화점 부회장은 한나라당 소속 이종구·정병국 의원에게 각각 200만원씩 후원했다.
LG와 계열 분리한 LS그룹의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구자열 LS전선 부회장은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에게, 구자균 LS산전 사장은 통합민주당 문석호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씩 투자했다.
또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안택수 한나라당 의원에게 200만원을 김한길 통합민주당 의원에게 300만원을 기부했다. 장 회장은 아직까지도 의원들과 폭넓은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밖에 전남을 기반으로 하는 보해양조 임건우 회장은 통합민주당 △김성곤 △우윤근 △최재천 의원에게 200만원을, △무소속 이상렬 의원에겐 500만원을 후원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또한 통합민주당 김한길 의원과 대통합민주신당 김재윤 의원에게 각각 300만원을, 대통합민주신당 강봉균 의원에게는 이보다 적은 200만원을 지원했다.
속보이는 기부 여전
같은 당 여러 의원에게 후원금을 쪼개 낸 기업인도 적잖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통합민주당 △김현미 △우상호 △우제창 △노웅래 의원에 매달 20만원씩 꼬박꼬박 냈다.
학고재 관계자에 따르면 우 대표는 우상호·우제창 의원을 같은 종씨로 알게 됐고, 노웅래 의원은 노 의원이 MBC 기자 시절에 인연을 맺었다. 또 김현미 의원과는 같은 고향(전북 부안) 출신이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도 통합민주당 △김근태 △김진표 △정세균 의원에 각각 500만원씩 후원했다.
윤 회장은 김진표 의원과 수원중학교 선·후배 관계며, 정세균 의원과는 어려웠을 때 서로 돕던 지인이다.
한편 윤 회장은 후원금 모두를 개인 돈으로 지불했으며 당시 영수증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역색이 강한 주류업계는 회사 연고지가 지역구인 의원들에게 후원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대구에 뿌리를 둔 금복주의 김홍식 회장과 김동주 대표는 한나라당 주성영·주호영 대구지역 의원에게 200만원을 후원했다. 또 같은 당 △이상득 △이해봉 △박종근 의원에게도 각각 500만원씩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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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 중에서는 직업란에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경우도 여전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대표이사는 통합민주당 김효석·정동채 의원과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씩 지원하면서 직업란엔 ‘동원그룹 대표이사’ ‘기업인’ ‘회사원’ 등 모두 다르게 적어냈다.
SBS 윤세영 회장은 한나라당 맹형규 의원에게 300만원을 기부하면서 ‘기업인’으로 적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후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
박상호 삼성생명 부사장은 자신과 부인, 딸 두 명의 이름으로 김양수 한나라당 의원에게 모두 1300만원, 전재희 의원에게 200만원, 김혁규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에게 800만원을 냈다.
김양수 의원에 대한 기록에는 4명의 주소지가 모두 삼성생명으로 돼 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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