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를 위한 경제는 없다”

참여정부 시절 기업 인수합병을 연달아 성사하며 덩치를 불려온 그룹들이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비롯해 이랜드·유진그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그룹들은 총수의 강력한 의지와 치밀한 전략으로 일약 ‘M&A 강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기존 계열사들과의 시너지 창출 및 인수자금조달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M&A 빛과 그림자, 참여정부에서 잘 나가던 기업들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금호아시아나, 이랜드, 유진그룹의 공통점은?
모두 최근 수년 동안 대형 M&A를 성사시키면서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밖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차입금이 급증하면서 무거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랜드그룹의 차입매수(LBO) 방식을 이용한 까르푸 인수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홈에버 매각으로 이랜드그룹은 2년도 채 안 돼 대형마트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됐다. 이랜드가 LBO 인수로 인한 자금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백기를 든 셈이다.
이랜드 홈에버 2년 만에 되팔아
LBO는 매입대상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해서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기법을 말한다.
하지만 거액의 차입금 때문에 인수 후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져 신용위험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이랜드 외에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유진그룹 등이 LBO 인수로 인한 후유증을 톡톡히 겪고 있다. 금호와 유진 모두 높은 유동성 위기로 인해 자금조달시장에서 경쟁사에 비해 낮은 신용등급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두 그룹은 비록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이랜드처럼 코너에 몰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다면 이랜드가 두 그룹과 달리 불과 2년 만에 백기를 든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이랜드가 까르푸 인수 때 지나치게 낮은 자기자금으로 무리한 LBO를 추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랜드가 까르푸 인수대금으로 지불한 비용은 1조7100억원. 이중 자기자금은 고작 2800억원으로 인수대금 중 자기자본 비율이 16.3%에 불과했다.
금호와 유진이 대우건설과 하이마트를 인수할 당시 각각 45%, 30.7%의 자기자본을 투입한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즉 출발부터 무리할 정도로 차입금이 많았기 때문에 자금 부담을 이기지 못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또 다른 이유로 이랜드그룹의 운영 미숙을 들 수 있다.
재무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 LBO 방식의 인수가 활발한 것은 인수 후 차입금과 그 지불이자에 대한 세액공제로 절세효과가 생겨 현금흐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수 후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창출이 일정 수준만 받쳐준다면 무리 없이 인수기업을 운영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랜드는 인수 후 1년 만에 비정규직 노조와의 갈등으로 1년 넘게 개점 휴업상태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이랜드리테일은 지난해 1조5767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649억원의 영업손실, 193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수익 창출은 고사하고 매달 갚아야 할 금융비용조차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할 당시 고용문제에서 좋은 조건을 내걸어 가산점을 받은 사실에 비춰보면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결국 노조문제를 합리적으로 조기에 풀지 못한 경영진의 운영 미숙과 관리력 부재가 재무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촉매제가 된 셈이다.
금호아시아나 재무건전성 악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시름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
대우건설의 저조한 실적이 그룹 전체의 재무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을 재계서열(공기업 제외) 7위로 끌어올린 대우건설이 졸지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대우건설의 올 1분기 성적은 그야말로 낙제점에 가깝다. 2006년 말 6조원이라는 막대한 인수자금을 쏟아 부어 사들인 것치고는 이름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 대우건설은 국내 ‘빅5’ 건설사 중 유일하게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대우건설의 1/4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떨어진 1조3027억원. 영업이익도 53%나 줄어든 597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여기에 주가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다. 이는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전 투자자들에게 했던 약속 때문이다.
당시 박삼구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대우건설 주가가 2009년 12월 14일까지 1주당 3만3085원을 밑돌 경우엔 되사주기로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대우건설의 주가는 현재 되사주기로 한 가격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올 1분기 내내 대우건설 주가는 주로 2만원 밑에서 형성되고 있다.
5월16일 기준, 대우건설 1주 주가는 1만7950원 선이다.
증권전문가들은 대우건설의 약세 이유를 두 가지로 꼽았다. 그룹 내 기존 계열사와 대우건설간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지 못했다는 점과 무리한 인수자금조달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금호아시아나는 대한통운을 인수할 당시 대우건설을 통해 5460억원의 교환사채를 발행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대우건설의 부채비율은 현재 180%로 껑충 뛴 상태다.
유진그룹 신용등급 BBB- ‘강등’
M&A 후유증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게만 찾아온 게 아니다. 지난해 말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 역시 무리한 몸집 부풀리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통적인 레미콘 산업의 강자로 군림해 온 유진그룹은 지난해 그 어느 때보다 M&A에 전력을 쏟았다.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을 전격 사들이며 금융업에 진출했고, 로젠택배와 한국통운을 통해 물류산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특히 지난해 말엔 ‘대어 중 대어’로 꼽혔던 하이마트를 2조원(내부자금 6000억원+차입금 1조4000억원)에 인수하며 ‘M&A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유진그룹을 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송송’ 구멍이 나있는 상태다.
현재 유진그룹의 신용등급은 위태위태한 상태까지 왔다. 지난 5월 2일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는 유진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유진기업과 고려시멘트, 기초소재의 기업신용등급을 ‘BBB-’로, 신용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BBB-’는 투자등급의 최하위로 그 바로 아래가 ‘투기등급’이다. 또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등급을 내릴 가능성이 반대의 경우보다 높다는 뜻이다.
이러한 등급을 매기게 된 배경에 대해 한국기업평가는 “하이마트의 사업경쟁력과 영업현금창출력이 양호하고 인수가도 적정하지만 차입인수에 따른 재무적 부담이 과중하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유진그룹은 매년 400억원 규모의 이자비용을 내고 있다.
한편 LG경제연구원 오상준 연구위원은 ‘M&A의 유혹과 함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업의 전략 실행을 위해서 M&A가 꼭 필요한 것인지, 다른 대안에 비해서 우월한 지를 면밀하게 검토해 M&A 수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인수합병을 잘 활용하면 득이 될 수 있지만 도구를 활용할 줄 모른다면 몸에 상처를 주고 심할 경우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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