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윤종용 무게중심 이동?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전격 퇴진하고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온 전략기획실마저 해체키로 결정되면서 그 대안으로 구성될 ‘사장단협의회’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기존 삼성그룹 사장단 모임은 크게 ‘수요회’와 ‘9인회’로 나뉘어 운영돼 왔다. 그러나 이는 겉치레일 뿐 그룹의 실질적 경영계획은 전략기획실이 이끄는 ‘9인회’가 도맡아 결정했다. 때문에 ‘수요회’는 ‘티타임’ 성격의 정기모임 정도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9인회’의 좌장격인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 사퇴의사를 밝힘으로써 모임의 무게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삼성의 새 조타수로 떠오른 ‘수요회’를 전격 해부했다.
그동안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는 크게 두 개 모임으로 구성돼 왔다.
하나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으로 구성된 ‘수요회’다.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하는 회의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98년부터 수요일 오전에 모임을 하기 때문에 ‘수요회’란 별칭이 붙었다.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에서 열리는 수요회의는 규모가 작거나 손자회사 성격의 계열사 사장들을 제외한 주요 계열사 사장 38명만이 참석한다.
사장이 해외출장을 비롯한 용무 때문에 불참하더라도 부사장이 대리 참석할 수 없는 그야말로 최고경영자들의 모임이다.
‘수요회’와 ‘9인회’ 다른 점
또 다른 하나는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을 주재로 한 이른바 ‘9인회’다. 공식 명칭은 전략기획위원회로 삼성의 최고의사결정기구다.
현재 멤버는 ▲윤종용 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 팀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 ▲김순택 삼성SDI 사장 등이다. 당초 이종왕 전 법무실 사장까지 포함해 ‘9인회’였으나 특검 시작 전에 퇴임해 8명만 남았다.
그러나 지난 4월 22일 전략기획실 해체가 공식화되면서 사실상 이 모임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사장단협의회를 누가 주도하게 될 지다. 그동안 삼성의 ‘수요회’와 ‘9인회’는 모임의 성격과 논의 내용이 판이하게 달랐다. ‘수요회’는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반면 ‘9인회’는 그룹 전반의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 기능을 해왔다.
하지만 ‘9인회’를 이끌어왔던 이학수 실장과 김인주 팀장이 퇴진 의사를 밝히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은 퇴진 대상에서 빠졌지만 특검으로부터 기소당해 운신 폭이 크지 않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새 조타수인 사장단협의회는 ‘수요회+α(알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명강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계열사 사장이 돌아가며 주제발표를 하는 모임이었던 수요회가 9인회 기능을 일부 물려받아 사장단협의회로 재편된 셈이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사장단협의회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협의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그룹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할 유일한 공식기구라는 점에서 무게가 실린다.
멤버는 앞으로 삼성그룹을 대외적으로 대표하게 될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을 비롯해 윤종용 부회장 등 전자·금융·화학·서비스 등 계열사의 핵심임원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협의회 구성과 운영방식 등을 협의 중에 있다”며 “수요회 멤버에 몇 개 계열사 사장들이 추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장단협의회는 어떤 모임?
사장단협의회는 계열사 간 업종에 따라 분화돼 운영된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한 전자계열 △삼성생명을 주축으로 한 금융계열 △삼성토탈 삼성중공업 등 중화학·기계 부문 △삼성물산 제일기획 에버랜드 등 기타 서비스부문 등 4개 소그룹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삼성전기·삼성SDI와 같은 전자계열사의 투자계획과 사업조정에 대해서는 전자 관련 계열사 사장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식이다.
모임 방식은 사장단협의회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수요회처럼 주1회 정기 모임을 유지하고 사안별 또는 업종별로 모여 비정기 회의를 갖는 형태가 유력하다. 사회는 현행 ‘수요회’와 같이 윤종용 부회장이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요회와 9인회가 따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면서 “두 기구가 통합하고 멤버가 새롭게 구성될 경우 과거보다 효율적인 의사결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 회의가 쇄신안에 나온 사장단협의회로 바뀌는 시점은 6월말 이후가 될 것”이라며 “그 이전까지의 수요회의는 그동안 이어져온 그 형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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