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여비서’ 박명경, 삼성의 숨은 실세
조준웅 삼성특검팀이 지난 17일로 ‘99일간의 마라톤 수사’를 마무리 했다. 1월 10일 출범한 특검팀은 주말에도 거의 쉬지 않고 강행군을 펼쳤다. 수사기간 중 소환된 사람만도 모두 225명. 삼성 총수일가를 비롯해 △이학수 전략기획실 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이기태 삼성전자 부
회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현명관 삼성물산 전 회장 △박명경 삼성전자 상무 등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박명경(47·여) 상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3월 28일 삼성특검에 소환된 박 상무에게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혹자들은 박 상무를 그룹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 회장과 삼성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의상에서부터 스케줄까지 생활의 대부분을 일일이 챙길 정도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삼성그룹 내에서도 ‘숨은 실력자’로 유명한 박명경 상무의 모든 것을 알아봤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왕비서’ 박명경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비서1팀 상무는 그룹 내에서 ‘엠케이(MK)’로 불린다.
이름을 딴 ‘영문 이니셜’은 대부분 재벌총수나 그 일가에만 사용한다.
예컨데, 이 회장은 그룹 내에서 영어 알파벳 첫 글자인 ‘에이(A)’로, 부인 홍라희 여사가 ‘에이다시(A-)’로 아들 이재용 전무가 ‘제이와이(JY)’로 불린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박 상무의 그룹 내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박명경 상무는 누구?
그러나 박 상무는 유명세(?)에 비해 공식적으로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이 회장의 의전과 경호를 담당하는 삼성전자 회장실 1팀 소속으로 독신이며, 경희호텔전문대 일어과를 졸업한 뒤 1985년부터 이 회장의 비서업무를 담당해왔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비서팀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숨은 측근’ 정도로 재계인사들 사이에 소문이 나 있던 박 상무가 처음 화제에 오른 것은 지난 2005년 1월 삼성그룹 정기인사 때였다.
박 상무는 당시 오빠인 박명동 상무(무선 전략마케팅팀 담당 임원)와 함께 삼성전자 상무 승진 명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여성 임원을 뽑지 않기로 유명한 삼성이 전문대 출신 여성을 승진시켰다는 점에서였다.
삼성전자 전체임원 650여명 중 여성은 박 상무를 포함해 고작 2명뿐이다.
그의 이력만큼이나 베일에 쌓여 있는게 바로 그의 행보다.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28층 회장실 1팀에 개인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박 상무의 얼굴을 봤다는 삼성그룹 직원도 많지 않다.
또한 박 상무의 얼굴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으며 그룹 내 전산망에도 그의 사진은 올라와 있지 않다.
‘왕비서’ 역할 톡톡
박 상무가 또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5년 안기부 도청문건파문 때다.
당시 그는 미국·일본으로 이어진 이 회장의 도피성 외유를 대부분 함께 하면서 ‘왕비서’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실제 이 회장은 사건이 터진 2005년 9월 4일부터 이듬해인 2월 4일까지 일본·미국 등을 돌며 153일간 해외에 체류했다. 그때 당시 박 상무는 회장의 출입국을 도우며 함께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외국에 체류한 153일 가운데 118일을 지근거리에서 그림자처럼 보필했다는 게 재계 호사가들의 전언이다.
이에 비해 이학수 부회장이 이 회장과 동선을 같이한 시간은 24일, 아들 이재용 전무는 11일에 불과했다. 이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 부회장이나 아들 이 전무보다 미국·일본에 더 자주 드나든 것이다.
박 상무의 이름은 지난해 11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자금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다시 거론됐다.
김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전략기획실 내부자료라며 공개한 ‘JY(이재용 전무)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 문건에 이름이 오른 것이다.
문건에 따르면 박 상무는 이재용 전무와 함께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CB)를 인수, 엄청난 시세차익을 올리게 된다.
타워팰리스 2채 보유
실제 그는 1996년 11월 서울통신기술 주식을 주당 5000원에 사 2000년 4월 노비타에 주당 7만원에 되팔았다. 이 과정에서 박 상무는 무려 6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1996년 당시 30대 과장에 불과하던 박 상무가 그룹 후계자와 나란히 ‘주식 재테크’에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 회장의 각별한 신임이 깔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상무가 보유한 서울 도곡동 소재 타워팰리스 타워팰리스 409㎡(124평)형 아파트 역시 그의 위상을 가늠케 해준다.
박 상무 명의로 된 이 아파트는 타워팰리스 내 ‘펜트하우스’로 불리는 맨 꼭대기 층에 있다. 그는 현재 펜트하우스 두 채를 사 한 채로 만들어 살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보유한 삼성 인사들은 이학수 부회장과 윤종용 부회장, 김인주 사장 정도다. 박 상무의 사실상 지위가 이들 임원들에 뒤지지 않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박 상무는 삼성이 지은 시가 100억원 상당의 서울 수서동 소재 아파트도 한 채 갖고 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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