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IB증권’ 출범부터 ‘삐걱’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우선 남북 합작사업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최근 북한은 우리 측 개성공단 직원들을 잇달아 추방, 현 회장의 속을 썩이고 있다. 국내사업 부문도 마찬가지다. 최근 현 회장은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회장과 ‘현대’ 상호를 두고 한판 전쟁을 앞두고 있다.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에 빠진 셈이다. 그들의 총성 없는 전쟁터로 들어가 본다.
현대증권과 현대차IB증권(옛 신흥증권) 간 갈등이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최근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증권은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신흥증권이 회사명을 ‘현대차IB증권’으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증권은 지난달 31일 밤 현대차IB증권 상호 사용을 금지해달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출했다.
‘현대’ 간판을 둘러싼 그들의 기싸움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신흥증권을 인수한 올 1월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 이름 쓰지마”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월 신흥증권 인수계약을 체결하면서 신흥의 새 이름을 ‘HYUND AI IB 증권(현대아이비증권)’으로 변경했다.
그러자 현 회장은 유사 사명변경을 허락할 수 없다며 현대증권을 앞세워 지난달 19일 ‘현대IB증권’ 사용금지 가처분을 냈다.
현 회장의 강경한 태도로 ‘현대’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된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한발 물러서 신흥증권의 새 이름을 ‘현대IB증권’에서 ‘현대차IB증권’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현 회장은 “‘현대차IB증권’ 또한 예전과 다름없다”며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변경해 줄 것을 요구했다. 20년 이상 ‘현대’증권을 사용해왔는데 이제와 ‘현대’를 공유하겠다는 건 그간 쌓아온 명성과 노력에 무임승차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소송과 관련 현대증권 관계자는 “신흥증권이 현대IB증권이 아닌 현대차IB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했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여전히 현대증권과 확연히 구분되지 않아 투자자 혼돈의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문 이름이 비슷해 해외 투자자들이 두 회사를 같은 회사로 혼동하거나 계열사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대 쪽 주장이다.
관계자는 또 “현대차그룹은 글로비스, 엠코 등 ‘현대’ 상호를 쓰지 않는 계열사를 두고 있는데 증권업에서 굳이 ‘현대’를 강조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현대증권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상호로 변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차 쪽은 “새 상호에 문제가 없는 만큼 법률적 판단에 따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현대차IB증권 관계자는 “현대증권 쪽에서 가처분 신청서를 냈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며 “소송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법률적 판단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 또한 현대차IB증권과 뜻을 같이 했다. 그룹 관계자는 “현대증권 쪽 입장을 받아들여 이미 사명을 한번 변경했다”며 “현대차에서 ‘현대차’라는 브랜드를 쓸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현대차IB증권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본사를 포함해 전국지점 CI를 전격 교체했다. 또 지상파 방송3사의 TV와 라디오 광고를 통해 ‘현대차IB증권’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상표법상 현대라는 상호를 증권업에 쓸 수 있는 곳은 현대증권뿐이다.
현대가 적통은 누구?
그런데도 정 회장이 ‘현대’를 쓴 것은 그동안 ‘중립모드’에서 ‘공격모드’로 바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대해 현 회장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이렇게 현 회장이 초강수로 법정싸움에서 이기더라도 다툼 과정이 유리하게만 작용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만약 법정싸움에서 진 정몽구 회장이 적통성을 내걸고 범현대가를 결집해 전면전을 펼칠 경우 현 회장은 완전히 코너로 몰리게 된다.
현대가를 둘러싼 이상기류에 대해 재계의 한 고위인사는 “여러 정황상 현 회장을 고사시키기 위해 범현대가가 ‘결집’ 차원을 떠나 ‘실행’에 나섰다”며 “현 회장의 상황은 최악에 직면한 듯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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