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광고대행사 ‘부적절한 근친교배’
대기업-광고대행사 ‘부적절한 근친교배’
  • 김종훈 기자
  • 입력 2008-04-16 09:49
  • 승인 2008.04.16 09:49
  • 호수 52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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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LG…자체 광고회사 인하우스(in-house) 설립 기지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매각한 ‘인 하우스(기업 내)’ 광고대행사를 속속 다시 설립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광고업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광고업계의 위상은 전체적인 재계판도와 관련이 깊다. 주요 그룹 계열·관계사인 광고대행사들은 계열·관계사 광고만으로도 업계 순위를 뒤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그룹들이 계열 광고회사인 인하우스(in-house) 대행사들을 만들고 있어 광고업계 판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계열사 몰아주기로 인한 시장질서 훼손과 비전문가 오너일가가 진출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광고단체연합회에 따르면 대상그룹 계열의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지난해 국내외 광고 취급액 순위는 10위다.

2006년 25위에 비해 가파른 상승세다. 지난해 취급액은 전년보다 무려 80.5%나 늘어났다. ‘톱 10’의 평균(7.0%)을 훨씬 웃돈다.

상암이 10위권에 진입한 것은 지난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인 대우건설의 광고(400억원대)를 가져간 게 주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상암이 대상그룹 계열사 광고를 취급한 규모는 300억원대다.


이노션, 현대·기아차 광고연간 2000억

상암의 대주주는 대상홀딩스다. 대상홀딩스 지분은 대상 박현주 부회장 일가가 가지고 있다.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부인인 박현주 대표가 지난 1993년부터 종합광고대행사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를 맡아 대상그룹의 마케팅과 광고전략을 전담해 왔다.

박 부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막내딸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여동생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장모다.

2006년 대우건설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편입된 뒤 광고대행사는 웰콤에서 상암으로 바뀌었다. 외국계인 웰콤은 대우건설 물량이 빠지면서 지난해 순위는 7위로 전년보다 한 단계 떨어졌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의 성장속도는 거침없다. 설립 이듬해인 2006년에 3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이노션의 대주주는 정몽구 회장(20%)과 정 회장의 맏딸 정성이 이사(40%), 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40%)이다. 이노션이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 물량을 취급하는 규모는 연간 2000억원이 넘는다.

제일기획은 삼성그룹 계열사로 1973년 설립 이후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주요 대그룹들이 외환위기 이후 광고대행사를 처분하면서 그동안 상승세였던 외국계의 입지는 좁아지게 됐다.

SK에너지와 SK텔레콤이 절반씩 출자해 만든 마케팅 전문회사인 SK마케팅&컴퍼니가 정식 출범했다. 장기적으로 광고 제작·대행을 한다는 게 SK그룹 측의 입장이다. SK는 1998년 자회사였던 태광멀티애드를 다국적 광고기업인 TBWA에 넘기면서 광고에서 손을 떼고 광고의 대부분을 TBWA코리아에 맡겼다. TBWA코리아의 경우 2006년과 2007년 광고업계에서의 순위는 4위였으나 SK그룹이 계열사 광고를 하면 취급액이 줄어들 전망이다.


TBWA·LG애드는 ‘위기’

또 최근 사명을 HS애드로 바꾼 LG애드도 앞으로 LG계열사의 광고물량을 계속 취급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LG그룹이 지난 2002년 LG애드를 WPP에 매각하면서 맺었던 ‘경쟁사업 진출 금지’ 약정이 지난해 말 끝났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인 구본천 LG벤처투자 사장이 지난해 말 광고회사 엘베스트를 설립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그룹이 광고를 계열사에 맡기면 계열사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쟁 없이 광고를 계열사에 무조건 몰아주면 광고의 질이 낮아지고 계열사 챙기기로 시장질서가 흐트러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광고회사 현주소
오너일가 부인이나 딸 등 인척 관여 파행

시장경제가 성숙되면서 효율을 높이기 위한 광고대행사 출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때로는 계열사 간 상호 권력과 금력 때문에 비판받기도 한다. 광고 회사는 광고주를 위해 광고물을 전문적으로 창조하고 매체 전략에 기여하면서 매체 구매대금의 일부수수료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실 광고회사는 광고전문가인 사람이 주체인 조직체다. 사실상 인력이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광고회사는 하청기업이 아니다. 창조적 동반자 조직이다. 당연히 튀는 발상과 크리에이티브의 기업문화가 중시된다.

그런데 한국의 광고기업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이상하게 창조보다 순종이 미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와 광고주 사이의 시장을 더욱 왜곡하고 있다.

대부분의 광고회사가 재벌과 대기업의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로라고 할 수 없는 오너의 부인이나 딸 등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러니 광고 품질로 승부하기보다 모기업에 기대고 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이 세계적인 광고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참담하다. 대기업이 인하우스 대행사를 설립하면 경쟁 프리젠테이션(PT) 한번 없이 광고주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시장의 현실이기도 하다.


##■ 인하우스 광고대행사란?

특정 그룹이나 대기업이 광고대행사를 그룹 계열사로 자체 보유해 광고를 제작하고 광고 집행을 전담하는 구조. 삼성그룹은 제일기획, 현대차그룹은 이노션, 롯데그룹은 대홍기획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방식이다.

김종훈 기자 fu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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