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앞 1인 시위’ 배용호씨 자살 5대 의혹
‘팬택 앞 1인 시위’ 배용호씨 자살 5대 의혹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8-03-24 13:29
  • 승인 2008.03.24 13:29
  • 호수 49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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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배씨를 죽였나?
석연치 않은 배용호씨의 죽음에 망연자실해 있는 형수 백민경(사진 왼쪽)씨와 형 배정호씨(맨위) · 고인이 평소 일기처럼 끄적였던 것으로 보이는 노트. 그 곳엔 팬택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가운데) · 고 배용호씨가 1인 시위 때 입었던 옷가지

지난 3월 14일 오전 11시쯤 기자에게 발신번호가 확인되지 않는 의문의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숱한 광고전화의 하나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왠지 꼭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직감은 적중했다. 지난해 말 <팬택 ‘돌아온 중국집 요리사’에 긴장한 내막>이란 기사의 주인공인 배용호(28)씨가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용호씨의 친형 정호(30)씨였다. 그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번 자살사건에 의문이 많다는 데 이목이 집중됐다. 배씨의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의문점들을 추적해봤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날은 신문 마감 날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기사를 ‘뽑아내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온갖 잡생각을 하다 배용호씨를 처음 본 날을 되새겨봤다.

그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지난해 12월 중순. 배씨와 팬택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취재하면서 그를 인터뷰한 게 계기가 됐다.

배씨와 팬택의 ‘악연’은 2006년 4월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그해 팬택이 야심차게 내놓은 스카이 ‘IM8500’모델을 배씨가 구입하면서부터다.

자기 월급의 25%를 ‘뚝’ 떼어 50만원 상당의 팬택휴대폰을 산 배씨는 값비싼 제품에 흠집이라도 날까 애지중지 써왔다. 그러나 그의 핸드폰은 산지 일주일도 안 돼 제구실을 못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배씨와 팬택 간 ‘한판 전쟁’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배씨는 팬택계열 박병엽 부회장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교도소에 1년간 수감되기도 했다.

<일요서울> 사옥으로 직접 찾아와 그간에 있었던 억울함을 쉴 새 없이 내뱉던 용호씨.

그는 이날 보랏빛이 살짝 감도는 안경과 둔탁한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배씨가 입고 있던 쥐색 오리털 점퍼는 주인의 사이즈도 모르는 지 몸과 옷이 따로 노는 듯 했다. 그동안 팬택과 맞서오면서 배씨가 겪었던 그간의 힘든 여정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지난 18일 유족과 연락을 취한 뒤 배씨가 자살직전까지 묵었던 그의 형 집으로 찾아갔다. 7호선 장승배기역에서 내려 12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마중 나온 형 정호씨를 따라 고인이 묵었던 집으로 향했다. 정호씨 집은 그곳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 정호씨의 부인 백민경(30)씨가 기자를 맞이했다. 그녀는 ‘손님’을 위해 정성껏 딸기를 씻고 있는 중이었다.

우선 고인의 방을 살펴보기로 했다. 직사각형으로 긴 방은 침대 하나와, 장롱, 3층으로 된 서랍장과 컴퓨터가 보였다. 그 옆으론 옷가지를 걸어놓는 행거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옷이 있었다. 옷에 출처에 대해 묻자 형수 민경씨는 “우리 용호 생일날 저희부부가 사준 생일선물”이라며 “고이고이 모셔두고 입지 않더니 결국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겸연쩍은 마음에 기자는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한권의 노트가 보였다.

노트를 훑어보던 중 ‘의미심장’한 글귀가 보였다. 빨간 볼펜으로 휘갈겨 써놓은 글귀엔 “이 글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팀이라면 지위 고하를 망라하고 회장이든 아니든 감사팀 역할에 충실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적혀 있었다. 당시 그의 심경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다.


의문1. 연고도 없는 충북 제천까지 가서 자살?

유족과의 인터뷰는 안방에서 이뤄졌다. 그들에 따르면 지난 3월 3일 저녁께 집을 나선 용호씨는 그 뒤로 연락이 ‘뚝’ 끊겼다. 그도 그럴 것이 팬택 휴대폰 때문에 교도소까지 다녀온 그였다. 개인휴대폰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로부터 보름 뒤 배씨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형 정호씨는 “집을 나가기 전 용호가 ‘팬택이 취업 자리를 알아봐 주기로 했다. 조만간 연락이 올 것’이라고 해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용호 또한 늘 밝은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들 부부에 따르면 용호씨 시신은 지난 3월 13일 충북 제천의 한 야산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또 유해 밑에는 다 마신 맥주 4캔과 소주 1병이 나뒹굴고 있었다고 한다.

형수 백씨는 “경찰이 하는 말이 그곳을 산책 중이던 동네 주민에 의해 용호가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왜 연고도 없는 충북까지 내려가 자살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의아해했다. 형수는 이어 “우리가 모르는 친구가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호의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제천
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의문2. 술도 약한데 술과 안주 왜 많이 샀나?

유족들의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고도 없는 제천에서 죽었다는 건 접어두더라도 자살할 생각이었다면 먹지도 않을 안주를 왜 그리 많이 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고인의 유품에서 발견된 영수증을 살펴보면 용호씨는 지난 3월 9일 충북 제천시 중앙로2가에 소재한 D쇼핑에서 ▲자몽 1개를 비롯, ▲쇠고기육포(30g) 1개 ▲참이슬후레쉬 1병 ▲카스캔 2개 ▲하이트캔 2개 ▲동원옥수수수염차 1개 ▲천하장사소시지 3개를 샀다. 총액은 1만 1310원으로 그는 1만 2000원을 내고 690원을 거슬러 받았다.

유족에 따르면 그중에서 그가 먹은 거라곤 쇠고기육포 조금과 천하장사소시지 1개 그리고 주류가 전부였다.

이와 관련 유족 측은 “살아생전 처음 가본 곳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술을 전혀 못하는 용호가 맥주 4캔에 소주 한 병을 다
마셨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 부부에 따르면 용호씨의 주량은 맥주 2캔이 치사량이다.


의문3. 닿지도 않는 나무에 어떻게 목매?

배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용호씨가 목을 맨 나무 또한 혼자 밧줄을 옳아 매 자살을 하기엔 너무 높았다.

이와 관련, 형수 민경씨는 “경찰이 사건현장을 찍어놓은 사진을 보여줬는데 용호가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목을 맨 채 축 쳐져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니 혼자 목을 매기엔 그 높이가 어마어마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유족 쪽은 경찰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담당형사가 “그 전날 제천에 눈이 많이 와 땅이 질퍽했다. 나무 밑을 잘 살펴보면 흙더미가 있는데 아마도 여기를 밟고 올라가 목을 맨 게 아닌가 싶다”며 사진을 보고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경찰의 말대로 눈이 많이 와 땅이 질퍽한 상태였고, 그 진흙덩어리를 밟고 나무 위로 올라가 목을 맸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질퍽한 진흙덩어리가 건장한 성인남성의 무게를 견뎌낼 리 만무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의문4. 소지하고 있던유품은 대체 어디?

유족이 경찰 쪽으로부터 건네받은 유품은 사건 당일 날 배씨가 들고 간 가방과 그 안에 들어있던 흰색 티셔츠 한 개, 그리고 영수증이 다였다.

자살 당시 배씨가 입고 있던 옷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또 특이한 점은 유품으로 건네받은 티셔츠다.

형수는 “지금은 불태워 없어졌지만 가방안에 티가 한 장 있었는데 거기에 구타를 당한 듯 한 흔적이 보였다. 작대기 같은 긴 막대기로 맞은 듯한 자국도 있고 밟힌 듯한 자국도 곳곳에서 발견됐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의문5. 자살이라면서 부검까지 한 이유?

배용호씨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의 사망원인은 자살로 발표됐다.

그러나 여기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시신을 수거한 제천경찰서는 분명 유족 측에게 배씨의 사망원인을 ‘자살’이라고 했다. 유족 측 또한 팬택과의 전쟁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용호가 자살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경찰과 유족은 13일 배씨의 사망원인을 자살이라고 잠정 결론짓고, 그 다음날 시신을 화장키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은 검찰이 “부검을 하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배씨의 부모는 “아들을 두 번 죽일 순 없다”며 이를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검찰 쪽도 양보치 않았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으니 이대로 시신을 화장할 수 없다”며 예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유족은 검찰 쪽의 강경한 입장에 “혹시 우리 용호가 타살된 게 아닌가” 싶어졌다. 이에 유족은 검찰 쪽 입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부검을 끝낸 후 유족 측은 “대단한 게 나온 거냐, 우리 용호가 타살된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어이없게도 “자살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유족 측은 “검찰한테 왜 우리 용호를 부검해야 하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그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할 뿐 대답을 회피했다. 부검이 끝난 이후에도 몇 번이나 뭐가 나왔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경찰 결과가 맞는 것 같다는 것일 뿐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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