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한恨 풀겠다” 또 경제 대통령 꿈

지난 2002년 12월 18일 밤 10시 30분, 대통령 선거를 불과 90여 분 앞두고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한 배를 탔던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한나라당 의원)이 노 후보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이유는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라고 말한 노 후보의 명동 유세 발언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여론은 노 후보가 ‘차차기 대통령감’을 거론하면서 정 의원의 심기를 건드린 게 원인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가 이끌던 국민통합21은 해산됐다. 선거일 90분 전에 ‘대반란 역적’이라는 괘씸죄에 걸려 노 대통령의 집권기간 동안 숨죽여 살 수 밖에 없었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이 선친인 고 정주영 회장의 못다 이룬 대권의 정치 한을 풀기 위해서,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현대가의 결집을 위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이제 권력은 기업으로 넘어갔다”는 변화의 물결 속 한복판에 선 것이다.
권력은 기업으로 넘어갔다
그는 이명박 후보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원(GSI)을 벤치마킹한 아산정책연구원을 창립해 정치적 세력의 집결을 노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자 한나라당 최고의원인 현대중공업 고문 MJ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최근 TV와 신문에 고 정주영 회장의 어록 열풍이 불고 있다. 그가 했던 말들을 모아 만든 현대중공업 기업 CF가 수없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현대중공업 이미지 CF이지만, 달리 보면 현대그룹 CF를 연상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고 정주영 회장을 추모하는 형식이다.
이 모든 CF의 총 연출자는 바로 MJ다. “이봐 해봤어”라는 신문광고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건 백사장과 설계 도면뿐이었지만 해외에 나가 당당하게 수주를 했다”는 TV 광고를 통해 현대중공업의 힘겨운 창업과정을 소개하는 광고다. 그러나 정 고문은 CF 한 편
으로 여러 가지 실익을 계산했다. 작게는 자신이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후계자임을 강조했고, 크게는 왕회장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자는 포석이었다. 또한 무소속에서 한나라당으로 입당한 정치적인 행보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 같기도 하다. 이렇듯 그의 머릿속에는 사업도, 축구도 아닌 오로지 정치에 대한 집념으로 가득 찼다. 이를 반영하듯 그의 행보는 빨라졌다.
지난 11일 아버지의 아호를 딴 아산정책연구원을 출범시켰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이홍구 전 총리가 발기인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지주인 한승주 전 외무장관이 이사장을 맡았다.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국내외 지명도가 높고 3조 6000억원의 자산가로 기업과 정치를 아우르는 후견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비전 때문이다. 또한 현대라는 거대한 백그라운드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라는 이름으로 뭉치는 ‘현대 맨 파워’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 탄생이 차지하는 무게와 좌표는 향후 대권가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버지 뜻 잇는 3조 자산가
아울러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이제 권력은 기업으로 넘어갔다. 이념과 세대, 그리고 지역의 파워게임을 통한 대권창출은 어려워 보인다.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국민들의 시대적 여망을 풀 적임자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인이라는 것이다.
기업과 대권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다 평탄치 않은 삶을 마감한 정주영 회장과 그의 행적을 쏙 빼닮은 리틀 왕회장 MJ의 심상찮은 행보. 그의 정치경제적 여정이 이제부터 시작됐다. 정주영 회장의 성공담처럼 그도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도전정신과 정치적 청사진 뿐 이었다”는 성공의 회고를 할 수 있을런지 MJ의 바쁜 발걸음에 재계와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백은영 기자 about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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