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칼’ 삼성 심장 정조준
‘특검 칼’ 삼성 심장 정조준
  • 박지영 기자
  • 입력 2008-02-21 10:20
  • 승인 2008.02.21 10:20
  • 호수 721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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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2인자’ 이학수 부회장 전격 소환
삼성특검팀이 지난 1월15일 오후 '삼성그룹 심장' 서울 소곡동 삼성 본관 전략기획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 뒤 굳은 표정으로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삼성 비자금의혹을 수사 중인 특별검사팀의 칼날이 삼성의 심장부를 겨루고 있다. ‘그룹의 2인자’로 통하는 이학수(62) 부회장을 전격소환한데 이어 김인주 사장 등 핵심임원 소환도 이어질 예정이어서 ‘삼성특검’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특검팀은 지난 14일 밤 이 부회장을 소환,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승계 등 의혹 전반에 대해 조사했다. 윤정석 특검보는 이날 “조서를 작성하진 않았지만 특검수사의 전반적 부분에 대해 예비조서를 꾸몄다”면서 “이학수 부회장에 이어 김인주 사장 등 전략기획실 핵심임원들과도 소환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특검팀은 곧 이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될 즈음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전무 등 이 회장일가를 부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의 ‘2인자’ 이학수 부회장이 전격 소환되면서 특검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1차 수사기간 종료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수사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소환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진 ‘의외의’ 소환이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의 핵심 중 핵심.

때문에 재계는 특검팀수사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시점에야 비로소 이 부회장을 소환할 것으로 점쳤다.

이 부회장은 1997년 삼성그룹 비서실장에 이어 1998~2006년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았다.

구조조정본부가 전략기획실로 바뀐 뒤부턴 전략기획실장을 지내는 등 그룹 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학수 부회장 소환 배경

이런 이 부회장의 소환이 예상보다 빨라진 점은 두 가지 가능성을 의미한다.

특검팀이 수사의 밑그림을 완성했던지, 아니면 수사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그 돌파구로 최고위층에 대한 소환조사를 했던 지다.

이와 관련, 삼성특검 주변에선 ‘지금까지 수사 진행상황을 봤을 때 특검팀이 수사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새 카드를 던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국세청 자료 비협조로 인한 계좌추적 난항 △소환자들의 ‘모르쇠’ 해명 △삼성계열사 압수수색 문제점 등에 따라 특검팀이 교착상태에 빠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삼성임원들의 수사비협조도 이 부회장 소환의 배경으로 꼽힌다. 파악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 특검에 나온 참고인이나 피의자들은 상당수가 ‘잘 모른다’거나 ‘지시를 받았을 뿐’이라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해당 사안들을 가장 잘 알고 있거나 지시를 했을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의 직접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이 부회장 소환으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인주 사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 부회장을 불러들인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심문은 비자금조성과 관리 뿐 아니라 경영권 불법승계의혹과 정·관계로비 등 삼성특검의 수사대상 전반에 대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이 실장이 4시간이란 비교적 짧은 조사만을 받고 귀가한 점으로 미뤄볼 때 앞으로도
추가 소환될 가능성도 크다.

이 부회장 소환 직후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을 상대로 전반적 의혹사항에 대해 기초조사를 했다. (특검 사무실에) 많이 나와야 한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재소환 방침이 세워졌음을 암시했다.

결국 손에 잡힌 혐의점이 있어서 이 부회장을 불러 조사 했다기보다는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확인 작업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융단폭격에 무너진 이학수

하지만 한편으론 이 부회장이 자진해서 소환된 것은 지난 14일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삼성특검의 융단폭격에 따른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날 특검팀은 △이건희 일가의 납세내역 압수수색 영장 발부 △삼성전자 수원 본사 압수수색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 소환조사 등으로 삼성을 압박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지난 14일 국세청과 삼성전자 등에 대한 특검의 파상공세에 못 이겨 갑작스런 자진출두를 결정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국세청이 갖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납세내역자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가 치명타가 됐다는 분석이다. 압수수색 대상엔 이학수 부회장 역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모든 재산내역이 공개되는 것 뿐 아니라 오너일가의 자산내역이 송두리째 벗겨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셈이다. 때문에 출두를 미뤄온 이 부회장이 자진 출두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삼성의 최고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전격 압수수색 역시 출두배경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특검의 맹공으로 자칫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그룹전체가 위기로 내놀리는 상황을 그룹 2인자로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검찰소환과 관련,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소환될 것이란 예상이 여러 군데서 나왔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황당하고 당혹스럽다. 그룹위기가 실감나고 특검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건희 父子소환 신호탄

한편 특검팀이 일찍 이 부회장을 소환조사함에 따라 김인주 사장과 최광해 부사장, 전용배 상무 등 전략기획실 핵심 인사들의 소환조사도 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에 대한 조사는 삼성家의 돈줄을 캐기 위한 검찰의 수순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을 조사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제 사장은 시민단체가 ‘e삼성’고발 때 삼성캐피탈사장으로 몸담고 있었다.

‘e삼성사건’은 2001년 당시 e삼성 대주주였던 이재용 전무가 시작한 가치네트 등 인터넷사업이 실패하자 삼성계열사들이 주식지분을 사들여 그룹에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아 참여연대로부터 이재용 전무 등이 고발된 사건이다.

핵심임원들의 조사이후엔 ‘오너일가’ 조사만 남은 만큼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전무 등에 대한 소환조사도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특검 주변에선 ‘특검팀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매각사건 수사와 관련, 삼성쪽 변호인단과 이 회장 일가의 소환일정을 조율
중’이란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 그룹 2인자들 세계

재벌총수 일가는 저마다 그림자로 불리는 ‘집사’들을 한 명씩 두고 있다. 오너일가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그룹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그룹 ‘2인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그룹 ‘2인자’들은 소수 정예부대와 함께 그룹의 재무·전략·기획 분야는 물론 오너가족의 주식 지분 상속, 경영권 방어에서부터 계열사 간 얽히고설킨 자금구조관리까지 ‘해결사’ 역할을 한다. 특히 총수에 대한 충성심이 ‘본능’에 가까워 각종 비리문제가 터지
면 총수를 대신해 종종 구속 수감되기도 한다. 좋지 않을 경우 목숨도 내놓을 정도라는 게 재계 고위관계자의 전언이다.


무대 뒤의 실세들

기업엔 1인자가 있고 그를 보필하는 2인자가 있다. 겉보기에 2인자들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러나 많은 2인자들은 ‘만인지상’의 영광보다 ‘일인지하’의 그늘을 더 강하게 겪었다. 위기상황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전면에 나서 총수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의 제2인자’인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은 2002년 여야 대선캠프에 385억원의 불법자금을 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2004년 6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최완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법정에서 이 실장은 끝까지 이건희 회장과의 연관을 부인, 결국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불법자금 150억원을 차떼기로 전달한 장본인인 LG그룹 강유식 부회장도 구본무 회장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2인자다.

차떼기 150억원을 전달한 대가로 강 부회장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그러나 이에 따른 그룹 내 강유식 부회장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또 △롯데쇼핑 신동인 사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아시아나 박찬법 사장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대한항공 심이택 회장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두산 이재경 사장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 받았지만 그룹 내 그들의 위치는 더욱 견고해졌다.

일례로 한화의 김연배 부회장은 형 집행을 모두 마치고 현업에 바로 복귀, 현재 한화증권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또 최근 인사이동에서도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을 뿐 아니라 부회장 체제의 강화로 가장 수혜를 보기도 했다. 그룹차원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었
던 탓이다.

이렇듯 총수를 대신해 ‘궂은 일’을 맡은 2인자들은 검찰에 몇 번 출두하고, 언론에 불법자금 전달자로 찍혀 창피를 당하지만 총수의 신임과 함께 그룹 내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비록 몸이 피곤하고 이미지를 버리긴 하나 결론적으로 그들에
겐 ‘남는 장사’인 셈이다.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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