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광주 YWCA가 운영하는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학대 행위와 보조금 유용 의혹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리가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 YWCA 사회복지법인과 해당 시설, 행정기관의 미흡한 관리‧감독 체계와 책임 회피성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 인권은 누가 보장하나…이사회 심의 결과 주목
최근 광주 동구와 YWCA 등에 따르면 YWCA 산하 사회복지법인 내 한 아동양육시설 원장 등 11명은 청소년‧아동을 학대하거나 이를 방치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 등)로 경찰에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시설 원장은 지난 2014년부터 최근까지 청소년들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거나 입원시키려 한 혐의를 받는다.
동부경찰서는 이들의 학대 정황을 살피고 있다. 정신병원 입원 강제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원장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조사에서 정신병원 입원, 강제 퇴소 등을 명목으로 아동‧청소년들에게 인권 침해성 발언과 폭언을 수차례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시설 생활 규정에 ‘일시 귀가 조처’를 징계 방법으로 명시해 놓고 학교에 가지 않거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아동에 대해 동의 없이 원 가정으로 일정 기간 돌려보내는 등 위협을 주며 통제하는 방식을 이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시설 생활지도원들이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적장애가 의심되거나 고아인 유아 2명(3살‧4살)을 학대하거나 성희롱‧폭언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았다.
광주시와 동구는 지난 12~13일 사회복지사업법 5조, 시설 전수조사 결과, 경찰 수사 내용 등을 토대로 원장 직무 정지를 권고하는 공문을 YWCA에 보냈다.
동구는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시설에서 특별 감사를 벌였다. 일부 부적절한 보조금‧후원금 관리‧집행 정황과 설립 취지에 어긋난 운영위원회(시설의 민주‧투명성을 제고하는 견제 기구) 행태 등을 적발, 행정 처분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동구는 지난 22일 ‘시설 생활지도원 2명이 아동들에 대한 신체‧정서적 학대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빛고을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전수조사 결과를 통보받고 해당 지도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직무 정지 처분도 권고했다.
“허울뿐인 견제 기구”
이 시설은 지난 2013년 동구 감사에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아동생계비 일부로 물품을 구매한 것처럼 속여 빼돌린 뒤 지인의 통장에 재입금, 보조금 8415만 원을 후원금으로 둔갑시켜 법인전입금으로 유용한 정황이 적발됐다.
또 지난 2005년부터 2년여 간 사무국장‧생활지도원들이 아동들에 대한 신체‧정서적 학대 행위를 반복해 벌금형을 선고받거나 시설장‧직원이 대거 교체되는 등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시설은 사회복지사업법 등에 따른 여러 견제‧보완‧감독 기구를 갖추고 있으나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YWCA 사회복지법인, 시설 상임‧운영위원회 등은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직원‧아동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안을 심의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하지만 법인‧시설 전‧현직 종사‧거주자들은 “허울뿐인 견제 기구”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07년 9월 28일 위원 11명으로 꾸려진 운영위원회는 분기별로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있지만 시설 종사‧거주자의 인권 보호‧권익 증진과 생활환경 개선 등에 대한 논의는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관할 지자체인 동구 공무원은 운영위 발족 1년가량만 회의에 참석했으며 직원‧아동 또한 초기 몇 차례만 회의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법에는 이들 모두 위원으로 규정하고 있고,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도록 권고하고 있는 상황. 운영위가 후원회 성격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시설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위원 10여 명으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도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 관계자는 “한 달에 1차례 시설 운영 현황 보고를 받고 있는데 회의를 생략하고 식사 자리만 갖는다거나 부적절한 행위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다. 사실상 친목 단체와 같다”고 지적했다.
YWCA 회원들이 산하 기관 수십여 곳의 상임위원을 맡고 있는데 주로 친분 관계에 따른 인선이 많아 적격자 검증 또한 미흡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실질적인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YWCA 사회복지법인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인에는 YWCA 사내이사 30명 중 5명과 사외이사 2명이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일부는 시설 원장과의 학연‧친분 등으로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며 비리 발생 시 보고 누락, 내부 고발자 색출 등으로 책무를 저버린 행위를 반복했다고 시설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징계 절차 미뤄” 비난
법인 측은 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 19일 원장 중징계와 대책 마련을 권고했으나 9월 10일에서야 YWCA 이사회에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
인권위가 지난 2월부터 조사를 했고 7월 중순경 YWCA에 인권 침해 결정문을 보냈지만 YWCA에서 운영하는 다른 보육‧부속시설 관계자들은 두 달가량 전혀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공유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YWCA 이사회는 징계 절차도 미루고 있다는 비난도 받아왔다.
이는 YWCA 이사들 간 파벌과 전문성 부족, 책임 회피성 대처 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시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YWCA 이사의 자질‧전문성을 검증하는 체계가 미흡하며 친분이 있는 이들을 이사로 끌어들여 인기 투표식 선임 절차를 밟거나 인사권을 빌미로 직원들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파벌이 형성됐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시설 예산 집행 내역을 매 달 사무총장 결재 뒤 이사회에 보고하는데 면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보조금 유용과 마구잡이식 집행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시설 운영 기관과 행정기관 모두 아동과 직원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이어진다.
동구 관계자는 “그동안 관리·감독에 소홀했다. 개선책을 내놓겠다”며 “이번 감사에서 법인 이사회 회의록을 살피는 등 구조적 문제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4일 광주 YWCA와 광주시‧동구‧동부경찰서에 따르면 광주 YWCA 산하 사회복지법인 이사회는 25일 해당 시설 원장에 대한 직무 정지‧징계 안건을 상정해 심의하고 있다.
인권위와 행정기관의 원장 중징계 권고 이후 열리는 첫 이사회로 심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