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은 양날의 칼인가?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갈수록 양날의 칼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중반부터 미국에서 불거기지 시작한 서브프라임 파문은 씨티그룹 등 세계적 금융기관을 멍들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시아, 중동국가에겐 월가지분참여의 기회가 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에 음과 양이 있고, 흥하는 자가 있으면 망하는 자가 있는 것처럼 서브프라임도 예외가 아니다. 씨티그룹,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 세계적 금융기관들이 고전하는 것과 달리 아시아와 중동국가는 이들 금융기관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신이 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부실 등에 따른 상각금액이 100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집계 됐다고 보도했다.
1000억 달러는 월가의 투자은행, 증권사 등 주요 금융기관의 모기지 론과 관련된 손실을 더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서브프라임 손실이 3000억 달러(약 3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을 내기도 했다. WSJ보다 3배나 손실이 더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OECD보고는 액수가 너무 크니 일단 제쳐놓고 WSJ보도를 보자. WSJ는 메릴린치가 모기지 부실로 146억 달러를 상각하는 등 3분기에 이어 지금까지 224억 달러를 상각했다고 보도했다.
씨티그룹은 4분기에 181억 달러의 자산을 상각한 것을 비롯해 상각금액 규모가 199억 달러에 이른다. 이 뿐이 아니다. 유럽의 대표적 투자은행 UBS는 144억 달러를 상각했다. 미국의 모건스탠리도 94억 달러를 상각했다.
WSJ은 이밖에 △홍콩의 HSBC는 75억 달러 △도이치뱅크는 32억 달러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는 30억 달러를 상각했다고 보도했다.
WSJ보도는 미국과 유럽 등의 유명 은행과 투자기관 대부분이 서브프라임 파문에 걸려 대규모 상각의 칼날을 피할 수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대규모 상각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 최대금융그룹인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이 이렇게 무더기로 대규모 상각에 나선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브프라임 고통이 얼마나 큰지 숫자가 말해준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위험하게 돌아가자 월가 금융기관들은 지금까지 위험한 고수익상품에 집중 투자했던 방침을 바꿔 안전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수익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안전한 게 최고란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투자은행, 투자유치로 위기 넘겨
존 테인 메릴린치 회장은 최근 주식과 채권판매의 중요성을 강조, 눈길을 끌었다. 고수익을 따라 위험상품 투자에 주력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주식과 채권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한 마디로 서브프라임 같은 위험상품에 대한 투자를 줄이겠다는 것.
테인 회장은 메릴린치가 고객자산을 관리하는 사업에 명성이 있지만 지금은 그런 열정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것도 결국은 주식, 채권 등 본래 사업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미국과 유럽의 세계적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 손실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아시아·중동국가들은 오히려 기회를 잡고 있다.
씨티그룹은 2007년 11월부터 올 1월까지 3개월 동안 215억 달러를 수혈 받았다.
씨티그룹에 돈을 넣은 곳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투자청이 75억 달러, 쿠웨이트투자청이 72억 달러, 싱가포르투자청 (GIC)가 68억8000만 달러 등이다.
씨티그룹은 199억 달러를 상각했다. 결국 수혈 분을 다 털어 넣은 것과 마찬가지다.
메릴린치도 130억 달러를 긴급수혈 받았다. 구체적으로 싱가포르의 테마섹 62억 달러, 쿠웨이트투자청 34억 달러, 우리나라의 한국투자공사(KIC) 20억 달러, 일본 미즈호금융그룹 13억 달러 등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두 달 사이에 이뤄진 거래다.
갈수록 커지는 아시아·중동 목소리
유럽투자은행인 UBS는 싱가포르GIC로부터 115억 달러를 투자유치했다. 모건스탠리는 중국투자공사로부터 50억 달러를 지원 받았다.
결국 아부다투자청, 쿠웨이트투자청, 싱가포르투자청, 중국투자공사, 한국투자공사는 이들 세계적 은행과 투자기관에 큰 투자를 통해 말발을 세울 수 있게 된 셈이다. 쉬운 말로 ‘너의 아픔이 나의 기쁨’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중동 국가들의 월가에 대한 지분참여가 얼마만큼의 수익을 안겨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말한다. 자금을 받는 쪽의 적자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익은 보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솔직히 씨티그룹이나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UBS 등이 잘 나간다면 그들이 아시아, 중동국가에 투자해달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목에 힘을 주고, ‘갑’의 위치에 서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투자를 요청했다. 입장도 많이 바뀐 것이다. 그 범인은 바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파문이다.
서브프라임 파문이 빨리 가라앉지 않을 경우 월가금융기관들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질 것이다.
반대로 수천억 달러의 외환을 갖고 있는 아ㆍ중동국가들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돈 있는 사람이 큰 소리 치는 것은 세상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 미국, 1450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에도…
약발 안 먹혀, 주가 계속 떨어져 고민
미국이 1450달러의 세금을 환급해준다.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어느 정도의 약발이 먹힐지는 모르지만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145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세금 환급을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부양책의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회에 대해 부양책을 조속히 통과시켜주도록 협조를 부탁했다. 1450억 달러는 현재 미국 GDP의 1% 정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부시 대통령은 경기 부양에 기대감을 표시하면서 대규모 세금 환급이 경제성장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는 미국 경제는 기초가 튼튼하지만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의회 지도자들과의 논의를 통해 경제성장 유지하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미국 경제가 성장은 하고 있지만 위험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세금을 어떻게 환급할지는 현재 논의 중인데 대략 1인당 300달러나 800달러, 혹은 가구당 최대 1600 달러까지 환급하는 방안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부시의 이 같은 의욕적인 감세 방안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반응이 썰렁했다. 주식시장이 상승기류를 타지 못하고 있다. 세금 문제만을 가지고는 침체의 늪으로 향하고 있는 경제의 흐름을 돌리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세금 환급을 통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서브프라임 파문이 눌러버린 셈이다. 연일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미국의 주가폭락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국의 주가를 크게 끌어내리고 있다.
정우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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